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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책&생각] 근대로 향하는 길은 오스만제국의 그늘 아래 있었다

등록 2022-06-03 05:00수정 2022-06-03 10:06

미국 역사학자 앨런 미카일의 근작
15세기 세계사의 주역, 오스만제국

다양한 세력 통치한 제국의 역량
신대륙 발견, 종교개혁 등에도 영향

술탄 셀림
근대 세계를 열어젖힌 오스만제국 최강 군주
앨런 미카일 지음, 이종인 옮김 l 책과함께 l 3만8000원

르네상스로부터 콜럼버스의 신대륙 발견, 마르틴 루터의 종교개혁 같은 기념비적인 사건들을 따라가며 우리는 자연스럽게 근대를 열어젖힌 ‘서구의 부상’을 떠올린다. 그러나 조금만 눈을 돌려 보면, 우리는 그보다 강력한 경쟁자들이 훨씬 더 큰 영향력을 발휘했던 역사를 접하게 된다. 이를테면 20세기 초까지 거의 6세기 동안 존속한 오스만제국은 한때 오늘날의 33개국에 해당하는 영토를 통치한 압도적인 강대국이었으며, 콜럼버스의 신대륙 탐험은 동양과의 무역로를 장악하고 있던 오스만제국을 피하기 위한 모험이었다는 사실은 우리에게 좀처럼 각인되어 있지 않다.

미국의 역사학자 앨런 미카일(예일대 교수)이 쓴 <술탄 셀림>(2020)은 중동 및 중앙아시아의 역사를 온전히 복원하려는 최근 세계 역사학계의 주된 흐름을 집약적으로, 또 대담하게 담고 있는 책이다. 지은이는 ‘정복왕’이라 불렸던 술탄 셀림(1470~1520)을 주인공으로 삼아, 오스만제국 황금기의 역사와 그 그늘에서 몸부림쳤던 서구의 역사를 냉정하게 비교한다. “르네상스와 소위 대탐험의 시기에 유럽 국가들이 문화적으로 크게 부상했다는 전통적인 얘기는 허무맹랑한 소리일 뿐이다.”

무어인(무슬림)에 맞서는 자들의 수호성인, 산티아고 마타모로스.
무어인(무슬림)에 맞서는 자들의 수호성인, 산티아고 마타모로스.

셀림의 술탄 즉위식.
셀림의 술탄 즉위식.

오스만제국 7대 술탄 메흐메트 2세는 1453년 기독교 세계의 동부 수도인 콘스탄티노플을 점령했고, 서방과 동방의 주요 경유지를 손에 넣은 오스만제국은 “온 세상의 정치, 경제, 전쟁의 중심지로 군림”했다. 아버지를 꺾고 술탄의 자리에 오른 메흐메트 2세의 손자 셀림은 동쪽의 사파비제국(지금의 이란 일대), 남쪽의 맘루크제국(지금의 이집트 일대)을 상대로 정복전쟁을 벌여, 세속적 권력(술탄)뿐 아니라 종교적 권력(칼리프)까지 획득해 이슬람 세계의 최고 지도자가 됐다. 더 나아가 알제 등 북아프리카 지역들도 손에 넣으며 세계의 중심인 ‘지중해 동쪽과 지중해’를 완전히 틀어쥐었고, 죽기 직전에는 대서양을 면하고 있는 모로코까지 노렸다.

셀림의 정복은 단지 군홧발이 아니라 교역과 경제 정책을 핵심으로 삼아 다양한 세력들을 통치할 수 있는 ‘전략적 지정학’에 입각한 탁월한 역량 위에 이뤄졌다는 것이 지은이의 평가다. 예컨대 커피는 “셀림이 구세계 전체에 구축한 상업적·제도적·정치적·문화적 관계 덕분에” 전세계로 퍼져나가게 된, “진정한 첫 글로벌 농산품”이었다. “오스만제국은 영토를 장악하는 동안에도 여러 갈등하는 이해관계를 가진 주민들에게서 인정을 받기 위해 정치적·문화적 자치권을 양보했고, 그렇게 함으로써 제국으로서 통치할 자격이 충분하다는 걸 증명했다.”

전쟁을 치르는 셀림의 모습.
전쟁을 치르는 셀림의 모습.

오스만제국의 커피하우스.
오스만제국의 커피하우스.

반면 조각조각 분열된 기독교 세계의 세력들은 모든 면에서 ‘지중해 동쪽과 지중해’를 넘지 못했다. 특히 지은이는 콜럼버스의 신대륙 탐험의 목적이 중국의 ‘대칸’을 기독교로 개종시켜 무슬림 세계를 멸망시키는 것이었을 정도로 이들이 ‘십자군 세계관’ 같은 피해망상에 사로잡혀 있었다고 비판한다. 이들의 피해망상은 신대륙에서도 원주민을 적대시하는 방식으로 나타났는데, 텍사스와 멕시코의 국경에 있는 도시에 생뚱맞게 ‘마타모로스’, 곧 ‘무어인 학살자’란 이름이 붙은 배경이다. 유럽인들이 신대륙을 탐험하러 갈 때 쓰인 항해술, 더 나아가 루터의 종교개혁 등 근대로 향하는 거의 모든 이정표들이 ‘신의 그림자’(이 책의 원제), 곧 오스만제국의 영향력에서 자유롭지 못하다고 주장한다.

최원형 기자 circle@hani.co.kr, 그림 책과함께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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