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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부초밥 두부와 된장찌개 두부 ‘패러다임’ 달라 다른맛

등록 2006-02-23 19:25수정 2006-02-24 19:07

과학이 만들어낼 미래 사회의 모습. 미국의 과학사학자이자 철학자인 토머스 쿤은 <과학혁명의 구조>에서 ‘한 시대를 지배하는 과학적 인식이나 사고, 관념, 가치관이 결합된 총체적인 틀’을 ‘패러다임’이란 개념으로 정의했다. 쿤은 과학사의 특정 시기에는 항상 전체 과학자 집단이 공유하는 패러다임이 있으며, 이 패러다임은 기존의 자연과학 위에서 혁명적으로 생성되고 쇠퇴하면서 다시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바뀌게 된다고 설명했다.
과학이 만들어낼 미래 사회의 모습. 미국의 과학사학자이자 철학자인 토머스 쿤은 <과학혁명의 구조>에서 ‘한 시대를 지배하는 과학적 인식이나 사고, 관념, 가치관이 결합된 총체적인 틀’을 ‘패러다임’이란 개념으로 정의했다. 쿤은 과학사의 특정 시기에는 항상 전체 과학자 집단이 공유하는 패러다임이 있으며, 이 패러다임은 기존의 자연과학 위에서 혁명적으로 생성되고 쇠퇴하면서 다시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바뀌게 된다고 설명했다.
과학 변화의 역사적 전개는 전과학→정상과학→과학혁명→또다른 정상과학
‘정상과학’이란 패러다임 안의 연구활동 해답 전제한 ‘퍼즐 풀기’에 비유된다
당대 못풀었다면 성공은 후세의 몫 안풀리는 변칙사례 많을 때 ‘과학혁명’

고전 다시읽기/토머스 쿤 ‘과학혁명의 구조’

요즘은 대입 논술시험 덕분에 토머스 쿤의 <과학혁명의 구조>(이하 <구조>)를 들어보지 못하고 대학을 들어오는 학생들이 많지 않지만 나는 대학교에 들어와서야 이 책을 접했다. 대학 교문 앞에서 초등학생처럼 늘어서서 전경들한테 책가방 검사를 당하던 암울한 1980년대에는 이 책을 가지고 있다가 ‘혁명’이라는 말에 화들짝 놀란 사복경찰에게 곤욕을 치룬 친구들의 ‘전설’이 떠돌았다. 아무리 ‘과학’ 혁명이라고 강조해도 당시 시대 분위기에서 ‘혁명’이라는 단어가 들어간 책을 소지한 것은 중대 범죄 행위였다.

이 책이 1962년 출간되었을 때 과학철학자들이 보인 대체적 반응도 사복경찰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쿤은 서문에서 자신이 기존 과학관의 오류를 바로잡을 목적으로 책을 썼다고 천명했고. 책 내용은 충분히 ‘혁명적’이어서 출간 즉시부터 격렬한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논란의 여지가 없는 경험적 증거에 입각해 지극히 합리적인 방식으로 진행되는 과학연구 활동을 비합리적인 대중 선동으로 비유하고 개종하는 이교도처럼 새 이론에 충성을 다짐하는 사람으로 과학자를 묘사한다는 비판이 주였다. 그러나 일부 학자들은 쿤이 과학지식이 사회적으로 구성되는 과정에 대해 좀더 면밀한 연구의 필요성을 처음 제안했다고 높이 평가했다. 하지만 초기 논쟁의 소란스러움이 가라앉고 나자 쿤의 견해가 이 두 극단적 반응 어디에도 속하지 않음이 분명해졌다.

쿤이 <구조>에서 밝힌 점은 무엇보다 과학지식의 성격과 과학연구의 본질에 대한 통상적 견해가 실제 과학연구가 수행되고 과학지식이 얻어지는 방식을 꼼꼼하게 살펴보면 올바르지 않다는 것이다. 물론 어느 누구도 과학의 역사가 항상 과학의 이상적 모습에 일치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져 왔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럼에도 쿤의 주장이 큰 영향력을 발휘한 이유는 플로지스톤이나 주전원처럼 현대 과학에서 부정되는 ‘틀린’ 과학만이 아니라 갈릴레오의 운동학이나 라브와지에의 화학처럼 현대 과학의 선구자로 여겨지는 이론조차 통상적 과학관과 일치하는 않는 방식으로 연구되었으며 그 실제 내용 또한 현대 과학자들이 알고 있는 것과 많이 다르다는 데 있다.

“과학지식 사회적으로 구성된다”


이런 통상적 과학관에 대해 쿤이 대안으로 제시하는 것은 이제는 아주 유명해진 ‘전과학 - 정상과학 - 과학혁명 - 또다른 정상과학’으로 이어지는 과학변화의 역사적 전개였다. 정상과학이란 특정 패러다임에 의해 지배되는 연구활동을 의미한다. 패러다임이란 어떤 문제가 풀만한 문제이고 그 문제에 대한 해답이 어떤 형태로 주어져야만 과학적인 답으로 인정할 수 있는지에 대한 명시적 또는 묵시적 기준과 전형적인 문제 풀이 기법, 그리고 좀더 포괄적인 형이상학적 전제 등의 혼합이다. 이런 패러다임은 과학자가 되기 위한 훈련 과정에서 교육되는데 이런 의미에서 정상과학 시기에는 주도적 패러다임 아래에서 연구활동을 한다는 사실이 곧 과학자임을 규정하게 된다.

쿤은 정상과학 시기의 과학활동을 퍼즐 풀기에 비유하는데 이는 과학연구를 가벼운 여흥거리로 생각해서가 아니라 퍼즐이 가진 여러 특징이 과학연구의 핵심을 잘 포착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선 퍼즐은 해답이 존재한다고 전제되고 그 해답이 어떤 형태를 가질 것인지와 해답을 얻기 위해 허용되는 규칙이 미리 주어져 있다. 1000 조각짜리 조각 맞추기 퍼즐을 풀다가 잘 안되더라도 제조사의 실수로 돌리기보다는 자신의 기억력이나 끈기의 한계를 탓하는 것이 옳다. 절대로 조각을 억지로 끼워 맞추려 해서는 안 된다. 마찬가지로 정상과학 시기의 과학자들은 자신이 연구하던 문제가 잘 해결되지 않을 때는 자신의 능력을 탓해야지 자신의 패러다임이 본질적 한계를 가진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대부분의 경우 이런 전략은 효과적이다. 능력이나 운이 부족했던 과학자들이 풀지 못했던 어려운 문제들이 후세 과학자에 의해 성공적으로 풀려진 예가 수두룩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특정 패러다임 하에서 계속해서 안 풀리는 문제(쿤의 용어로 ‘변칙사례’)가 많이 존재한다고 해서 바로 과학혁명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과학혁명은 오직 기존 패러다임을 대체할 수 있는 대안적 패러다임이 등장할 때만 가능해진다. 패러다임 의존적 연구가 과학의 핵심이기에 과학자들은 결코 무책임하게 대안을 마련해놓지도 않은 채 기존 패러다임을 폐기해버리지는 않는다.

기존 패러다임 대안 찾아야 폐기

통상적 과학관의 근본적 문제는 과학지식에 대해 축적적 성장과 혁명적 변화를 모두 설명해내는 일이 쉽지 않다는 데서 비롯된다. 과학지식이 고대부터 조금씩 자연의 비밀을 밝혀내며 축적적으로 발전해 왔다는 생각과 과학자들이 가끔씩 세계가 어떻게 이루어져 있고 그것이 어떻게 작동하는지에 대한 생각을 전면적으로 바꾼다는 사실은 얼핏 보기에 서로 모순 같다. 이런 모순을 해소하는 손쉬운 방법은 아리스토텔레스 역학에서 뉴턴 역학으로의 혁명적 변화는 아리스토텔레스가 자연에 대해 ‘제대로’ 파악한 부분은 하나도 놓치지 않고 다 보존하되 뉴턴이 거기에 더해 더 많은 현상을 설명할 수 있었다는 식으로 과학지식의 변화를 파악하는 것이다. 간단히 정리하면, ‘우리는 옛날 사람들이 알고 있던 것은 다 알고 있었고 그들보다 더 많이 알고 있다’ 정도가 되겠다.

쿤이 <구조>에서 여러 사례를 통해 주장한 점은 이와 다르다. 과학에서 혁명적 변화가 일어날 때는 대부분의 경우 더 많은 현상이 설명되거나 예측의 정확도가 높아지는 것이 사실이지만 그 전 이론에서는 설명이 되던 부분이 후속 이론에서는 설명이 되지 않거나 아예 설명할 가치조차 없어지는 일이 벌어질 수 있다. 이를 ‘쿤 손실’이라 한다. 쿤 손실이 과학혁명을 통해 존재한다는 사실은 과학지식의 성장이 오직 부분적으로만 축적적이라는 점을 말해준다.

이런 과학지식의 부분적 축적성은 서로 다른 패러다임이 종종 서로 공약불가능하다는 점에 연관된다. 공약불가능하다는 것은 서로 다른 패러다임이 제시하는 개념체계나 세계를 이해하는 방식이 서로 다르다고 간단하게 말할 수 있다. 프랑스 소설을 우리말로 사전만 가지고 기계적으로 번역해서는 그 미묘한 뉘앙스를 완벽하게 살려낼 수 없듯이, 과거 우리와 다른 패러다임 하에서 연구하던 과학자들의 이론을 현재 우리 패러다임의 관점에서 제멋대로 해석해서는 잘못된 결론을 이끌어내기 쉽다는 것이다.

이는 다시 과학자들이 과학혁명이 끝난 후 교과서가 새롭게 쓰여지고 나면 ‘쿤 손실’을 더 이상 보지 못하는 이유와도 관련된다. 과학자들은 흔히 과거 이론에서 현재 이론과 ‘동일한’ 내용이라고 생각하는 부분을 찾아내곤 하지만, 당시 패러다임을 배경으로 보면 결코 동일한 것일 수 없는 경우가 자주 있기 때문이다. 김치찌개에 들어간 두부와 유부초밥에 들어간 두부 모두 동일한 콩을 원료로 만든 것이지만 그 요리 방법이나 다른 재료와의 어울림으로 말미암아 무척 다른 맛을 내는 것처럼 과학이론의 특정 내용은 그것이 어떤 패러다임을 배경으로 논의되는지에 따라 전혀 다른 의미를 갖게 될 수도 있다.

후속이론에서 설명안될때 ‘쿤 손실’

이상욱/한양대 교수·과학철학
이상욱/한양대 교수·과학철학
그러나 한 가지 중요한 점은 공약불가능한 패러다임 사이에 의사소통이 불가능하거나 개별 과학자가 어떤 패러다임이 더 좋은 것인지를 비교하는 일이 불가능한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무리수 √2는 정수 1과 2 모두와 공통된 척도가 없다는 의미에서 공약불가능하지만 비교불가능하지는 않다. √2는 1보다는 크고 2보다는 작기 때문이다.

1922년 미국 신시내티에서 태어나 고등학생 시절 사회주의 학생운동을 활발하게 벌이기도 했던 토머스 쿤은 1949년 고체의 성질에 대한 연구로 하버드 대학교에서 이론물리학 박사학위를 취득한다. 쿤은 매우 우수한 학생이었지만 워낙 지적 야심이 커서 물리학이 어떻게 자연현상을 설명하는지 자체보다 물리학 이론이 어떤 의미에서 세계를 설명한다고 할 수 있는지와 같은 궁극적인 주제에 더 관심을 가졌다고 한다. 학부시절 들었던 과학사와 과학철학 과목이 워낙 따분해서 처음에는 이 분야에 흥미를 갖지 못했던 쿤은 그러나 결국에는 자신의 지적 호기심을 쫒아 20세기 과학사와 과학철학 모두에서 거인이 되었다. dappled@hanyang.ac.kr

서평자 추천 도서

과학혁명의 구조

토머스 새뮤엘 쿤 지음, 김명자 옮김

까치글방 펴냄(2002)

(두 번역본 중 널리 읽힘. 전문학자의 새 번역 필요)

쿤의 주제들: 비판과 대응

조인래 엮음

이화여대출판부 펴냄(1997)

(쿤이 <구조> 출간 이후 발표한 주요 논문을 모아 번역한 책)

토머스 쿤

루퍼트 리드, 웨슬리 샤록 지음, 김해진 옮김

사이언스북스 펴냄(2005)

(쿤 철학에 대한 해설서)

50자 서평

◇ 평범한여대생(인터넷서점 알라딘 마이리뷰에서) “쿤의 이론은 학계에 신선한 바람을 불러일으켰다. 어쩌면 그것은 과학을 한다고 이야기하는 학자들 안에 잠재되어 있는 보수성에 대한 논의였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 승주나무(〃) “정상과학은 닻이다. 세상의 대해에서 길을 잃지 않으려고 표시하는 부표이며, 나의 오늘을 잊지 않으려는 비망록이다. 그것은 새로운 것을 전제로 쓰여지므로 항상 새로운 패러다임을 맞을 준비를 하고 있다.”

◇ kstone(〃) “핵심을 집어내면 이렇다. 정상과학→ 퍼즐 풀이→ 이상현상→ 위기→ 새로운 패러다임/세계관. 과학은 혁명적으로 발전한다는 것이며, 지식이 누적되며 점차 발전하는 선형적·축적적 과정이 아니라는 것이다.”

◇ 박강성주(경남대 북한대학원 석사) “‘정상과학’으로는 설명이 안 되는 ‘위기’ 현상의 출현. 이는 과거청산과 관련해 중요한 해석을 낳을 수 있다. ‘국가권력’의 수사·재판으로는 설명될 수 없는 수많은 ‘의혹’사건들. 진실혁명은 가능할까.”

▽ 다음주 이후 고전 <금오신화>, <파시즘의 대중심리>, <나는 고발한다>의 50자 서평에 참여해주세요. 전자우편 cheolwo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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