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렌 암스트롱 자서전-마음의 진보
카렌 암스트롱 지음. 이희재 옮김. 교양인 펴냄. 2만원.
카렌 암스트롱 지음. 이희재 옮김. 교양인 펴냄. 2만원.
왜 나한테 이런 불행이 닥칠까, 아프고 두렵고 지치고 서글픈가. 자아를 할퀴는 고통에 새벽잠을 설친다면 여기, 빛을 향해 나아가고자 했으나 어둠 속에서 더듬이가 오그라들었던 열일곱 살 소녀의 ‘나선형 계단’을 따라 치유의 여정을 떠나보자. 그 소녀는 세상의 문이 쾅 닫힐 때마다 상처투성이 내면을 직시하고 한 계단 한 계단 올라 훗날 “기독교와 이슬람교의 다리를 놓은” 최고 권위의 종교학자가 됐다. 바로 카렌 암스트롱이다.
1962년 영국. 남자한테서 이래라 저래라 명령 듣지 않고 고귀한 문제와 씨름하며 살고 싶던 소녀는 신을 찾으러 수녀원에 들어간다. 하지만 지독한 복종만을 강요하는 수녀원의 지옥생활에 지적 호기심이 많던 소녀는 흐리멍텅하게 망가져갔다. 항상 속이 더부룩했고 툭하면 코피를 쏟아냈고 왕왕 기절도 했다. 카렌은 신을 찾는데 실패했고 7년 만에 몸도 마음도 무감각한 돌덩이가 된 채 환속한다. 옥스퍼드 대학에서 영문학에 매진하며 세상과 만나려고 온갖 노력을 하나 쌀쌀한 인간관계에 리듬이 맞춰진 습성이 사랑도 우정도 방해했다. 문학을 한다면서도 시적 감흥과 ‘내 생각’ 없이 남의 생각을 재구성하는 ‘고딕풍의 웅장한 에세이’밖에 쓸 수 없었다. 카렌은 “벽으로 둘러싸인 정원, 뚜껑을 닫은 우물”에서 불안과 공포, 환각과 졸도에 시달리며 세상과 멀어져갔다. 박사 논문마저 탈락하자 증세는 심해져 자신도 의식하지 못한 채 자살기도를 하기에 이른다.
“신앙은 지성의 동의가 아니라 믿겠다는 의지의 행위”라는, 회의와 의심이 거세된 신앙의 길에서 지쳐 신과 갈라서버렸던 그이지만 생의 막다른 길에서 구원처럼 비교종교학을 ‘발견’한다. 기도를 하면서 맛보고 싶었던 환희를 공부에서 찾아내자 생의 무겁고 칙칙한 공기는 걷혀져 갔다. 기독교-이슬람교-유대교가 아브라함에서 세 줄기로 갈라져 나와 본질은 같음을 추적한 <신의 역사>, 서구인에게 이슬람교를 제대로 알리기 위한 <마호메트> 등은 어둠의 체험에서 길어 올린 ‘공감의 종교학’으로 불후의 명저가 됐다. 저 너머에서 신을 찾다 부정하고 마침내 이 세상에 내재한 신성을 찾아 깊은 통찰에 이른 것이다. 그는 말한다. 종교의 맨 앞엔 아픔이 있으며 공감을 통해서 남의 아픔과 만난다고, 또한 공감은 실천으로 표현되어야 한다고.
성장소설적 드라마틱한 요소를 갖춘 <카렌 암스트롱 자서전-마음의 진보>(교양인 펴냄)는 엘리엇, 워즈워드, 콜리지 등 영문학적 알레고리와 종교에 대한 사유가 교직해 지적 영감을 준다. 죽음에서 부활을 꿈꾸는 사순절 첫날을 노래한 엘리엇의 시 ‘재의 수요일’의 “다시 되돌아가리라”는 시구는 돌고 돌아도 제자리인듯 하지만 빛으로 나아가는 ‘나선형 계단’을 품고 있다.
권귀순 기자 gskw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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