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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생각] 2022년 ‘원전 복귀’는 환경운동의 실패인가

등록 2022-05-27 04:59수정 2022-05-27 09:34

1970년대 생태혁명, 원전 논쟁…
“흘러간 역사” 된 환경운동 재평가

모순 가득 환경운동의 숙명·희생
집필 직후 후쿠시마 원전사고 발생

생태의 시대
다시 쓰는 환경 운동의 세계사
요아힘 라트카우 지음, 김희상 옮김 l 열린책들 l 4만5000원

“우리나라에 필요한 것은 원전 사업의 부활이다.”

올해는 세계 주요국가의 원전 정책이 10년 만에 가장 극적으로 회귀하는 해가 될 것이다. 2011년 3월 일본 후쿠시마 원전사고를 전 인류가 목도하고 성찰한 결과이기도 했던 감·탈원전 정책의 유효 기간이다. 이 10년은 거듭 기술 통제 바깥 참혹한 재앙조차 망각되고 마는 감각의 단위라 해도 좋겠다.

선두에 프랑스가 있다. 저 위 발언은 지난 4월 대선 전 마크롱 대통령의 ‘선언’이다. 그간 원전 투자 유보 정책을 폐기하고 6기의 신규 원전 건설을 공약했다. 지난해 급등한 에너지 가격은 경제적 이유가 됐고, 올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탄소중립이란 엄혹한 과제를 진 국제사회에서 자국우선주의가 활개 칠 정치적 명분마저 줬다. 마크롱은 재임에 성공했고 영국도 지난해 말 원전 투자 방침을 공표한 터, ‘원전강국’의 기치를 세운 한국과 함께 2022년은 원전의 르네상스 원년이 되리라.

이상한 나라는 독일이다. 21세기 실상 유럽의 종주국으로 부상한 이 나라는 2011년 17개였던 원전을 줄기차게 폐쇄하더니 이제 3개만 남겨뒀다. 이들 또한 올해 세운다. 로베르트 하베크 연방부총리의 말이다. “(탈원전에 대한) 공감대가 약해진 징후가 전혀 없다.”

참고문헌까지 1천쪽을 넘어서는 <생태의 시대>는 가감없는 현대 환경운동사를 표방한다. 감히 사마천의 “사관의 소명”과 견주긴 어렵겠으나, 환경역사학자로서 저자의 투지는 말 그대로 소명 같다. 이젠 “흘러가 버린 역사가 되어 버렸다”고 얘기되는 환경운동의 숱한 단막들을 쟁점, 이념, 인물, 언론, 전략 등 다채로운 프리즘으로 재평가해 환경위기 시대의 과제도 짚어보고자 한다.

독일의 ‘집요한 탈원전’의 경로부터 정리해보자. 사실 지난해부터 ‘그린 택소노미’(녹색산업 분류체계) 확정을 놓고 독일-프랑스를 대비하는 분석과 보도는 적지 않았다. 전체 생산전력의 70%, 20만개 일자리가 직간접적으로 원전에 결부되는 프랑스의 사정은 프랑스의 대응을 직관시킨다.

그러면 다들 산업적 이해 때문인가. 그렇지 않다. 1950년대까지 독일도 원자력에 열광했으며, 1974년만 해도 원전 관련 기사 1만 꼭지 가운데 비판적 입장은 극소수였다. 환경 역사학의 초석을 놓은 저자 요아힘 라트카우 독일 빌레펠트대 교수가 짚어낸 차이는 이러하다. 원전은 위험하므로 인구밀도가 희박한 지역에 설치하는 게 애초 원칙처럼 자리 잡았다. 프랑스보다 인구밀도가 높은 독일엔 그런 지역이 드물다(책엔 “없다”로 쓰여 있다). 반면 독일은 프랑스보다 석탄 매장량이 많았다. 드골파 민족주의 세력들에게 원전은 프랑스의 새 국력이었으나, 독일의 민족주의는 세계대전 패배와 함께 격납 상태였다. 프랑스에 시민저항이 없지 않았다. 아니, 유럽에서 원전 반대 시위가 처음 격발(1971년)한 나라다. 하지만 중앙집권주의가 더 강했다. 독일 원전업계가 부러워했다는, 68세대 독일 대학생들이 까무러쳤다는 강경시위 진압 방식의 프랑스는, 결국 1973년 석유위기 이후 ‘숨 가쁠 정도의 단호한 대담함’으로 원전 강국에 올라섰다는 게 또 다른 전문가의 진단이다.

독일의 말하자면 ‘원전 아비투스(집단성향)’는 프랑스와 대조만으로 이해되지 않는다. 미국에선 더 앞서 원폭실험 반대 운동이 전개됐고 1960년대 원전 반대 운동으로 이어졌다. 그럼에도 미국 시민은 국가를 견제하리라 전문가 그룹을 신뢰한 반면, 독일은 그 그룹들간 결탁을 더 우려했다는 게 저자의 평가다. 결국 1975년 시민들은 독일 빌에서 전대미문의 반원전 ‘무장봉기’를 벌인다.

원전 격납건물 공극(틈) 등 결함으로 2017년 5월 정지된 한빛원전 4호기가 이르면 오는 10월 재가동될 전망이다. 사진은 2016년 4월8일 전남 영광군 홍농읍 한빛원자력발전소 앞에서 ‘부실부품을 사용하는 원전 3·4호기 정지' 요구 시위를 벌이는 그린피스 활동가들. 한빛원자력발전소에서 발생한 원전사고를 상징하는 십자가 160개로 묘지를 만들었다. 영광/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원전 격납건물 공극(틈) 등 결함으로 2017년 5월 정지된 한빛원전 4호기가 이르면 오는 10월 재가동될 전망이다. 사진은 2016년 4월8일 전남 영광군 홍농읍 한빛원자력발전소 앞에서 ‘부실부품을 사용하는 원전 3·4호기 정지' 요구 시위를 벌이는 그린피스 활동가들. 한빛원자력발전소에서 발생한 원전사고를 상징하는 십자가 160개로 묘지를 만들었다. 영광/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크고 작은 원인들은 흥미롭게 얽혀 독일을 선명히 조명하나 일본 앞에서 조위해진다. 저자 역시 안다. 독일보다 인구밀도는 더 높고 지진도 잦지만 석탄은 또 적다. 게다 원폭이라는 세계사적 트라우마를 지닌 나라 아닌가. “아무래도… 원자 폭탄의 충격이 너무도 커서 일본인들은 창의적으로 소화하지 못하는 모양이다”라는 저자의 ‘독설’은 딜레마와 모순으로 가득한 환경운동의 지난함에 대한 탄식인지 모르겠다.

저자의 구분대로라면 환경운동사, 이르길 생태혁명은 1970년 이전과 이후로 갈린다. 자연보호 운동이 환경운동에 주도권을 넘기고, 그해 선구적인 환경학자 에드워드 맥스 니컬슨이 <환경혁명>을 통해 “세상의 새로운 주인이 되기 위한 가이드”를 제언하고, 1만여명이 한 장소에 운집한 최대의 기획시위 ‘지구의날’이 시작되고, 독일주간지 <슈피겔>은 자국 내 처음으로 환경문제를 표지기사(‘독살된 환경’)로 다룬다. 이듬해 그린피스가 출범하며 위계·조직적 시민저항이 본격화하고, 그 이듬해 생체해부에 반대하는 영국 여성이 분신자살하고, 이어지는 ‘순교’는 더 많다.

이는 ‘땔감 부족’에 따른 민초의 분노가 프랑스 혁명의 한 배경이었다는 분석처럼, 두세기 걸쳐 일상에서 자각되어온 환경 문제의식이 켜켜이 활성화한 결과다. 자연을 숭배한 18세기 낭만주의 풍조까지 운동의 뿌리로 찾는 이유이기도 하다.

책은 ‘세계화와 반세계화 사이의 환경 정책’을 마지막 장으로 덮게 한다. 2011년 출간된 때문이다. 저자가 후기를 쓴 다음 달 후쿠시마 사고가 터졌고, 이후 10년 기후재앙이라 불리는 재해들이 경쟁하듯 인류에게 경고해왔다. 그 시점에 새긴 운동의 교훈들이 이 시점 유효한 까닭이다. 더더욱 인류는 사고 이전으로 시계를 돌리고 있질 않은가.

“우리는 적을 만났다, 그런데 적은 우리다.”

1970년 미국을 대표하는 생태학자이자 환경운동가로 <타임>의 표지 인물이 됐던 배리 커머너가 <원은 닫혀야 한다>(1971)에서 환경문제의 복잡다단성을 관통시킨 말이다. 이 숙명 탓인지, 운동의 혁명이 이어지되 지구환경의 혁명은 이뤄지지 않았다. 지금의 기후위기 감각으로 보면, 환경운동의 대척점에 자주 맞서온 산업자본 분야와 시점상 기후위기가 덜 다뤄졌다는 책의 약점도 아쉬울 수밖에 없겠다.

임인택 기자 imi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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