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Book] 한미화의 어린이책 스테디셀러
윤여림 지음, 김유대 그림 l 천개의 바람(2016) “어린이는 어른보다 더 새로운 사람입니다.” 1923년 소파 방정환 선생이 어린이날 행사를 맞아 한 말이다. 대략 백 년 후인 지금도 어린이를 존중하는 어른을 만나기 쉽지 않다. 윤여림의 <콩가면 선생님이 웃었다>를 아끼는 건 건강한 어른을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초동초등학교 3학년 나반 김신형 선생은 어린이를 얕보지 않고, 눈치를 보느라 전전긍긍하지도 않는다. 도리어 아이들이 얼굴이 까맣고 머리가 짧다고 선생에게 ‘콩가면’이라는 별명을 붙이고 좋아한다. 콩가면 선생은 스테레오 타입의 교사는 아니다. 아이들 앞에서 표정 변화도 없고 잘 웃지도 않고 무뚝뚝하다. 권위 있는 교사의 이미지는커녕 지극히 평범해 보인다. 시리즈의 2권인 <콩가면 선생님이 또 웃었다?>에서 선생은 게임방에 갔다가 서정민을 만난다. 정민이는 선생에게 게임방에 간 걸 들켰다고 걱정이지만, 대체 선생은 왜 게임방에 갔겠나! 게다 선생은 웃을 수 없을 만큼 아이들과 함께 보내는 시간이 벅차다. 콩가면 선생과 반 아이들의 이야기는 옴니버스 구성으로 전개된다. 콩가면 선생이 주인공이지만 또 주인공이 아니다. 이 점이 절묘하다. 단편마다 어린이의 사연이 펼쳐진다. 숙제하기 싫어 병에 걸린 동구와 매번 헌 옷을 물려 입는 아린이, 지국이에게 반한 미래의 스타 가빈이, 털손이라 서러운 진우, 돈벌레를 키우고 싶은 서연이가 주인공이다. 아이들이 외롭고, 속상하고 그래서 울고 싶을 때 어디선가 콩가면 선생이 나타난다. 그러곤 대수롭지 않은 척 곤경에 처한 어린이를 돕는 마법을 부린다. 그중에서도 성인이 이야기는 특히 감동적이다. 엄마가 멀리 일하러 간 성인이는 제대로 된 보살핌을 받지 못한다. 옷도 더럽고 말썽만 피우는, ‘내놓은’ 아이다. 아이들은 이런 성인이를 싫어한다. 성인이는 미움을 받을수록 상대를 더 미워하는 거로 갚아준다. 이것밖에 할 줄 아는 게 없었다. 3학년이 되어 만난 콩가면 선생에게는 이 공식이 통하지 않았다. 선생은 급식 시간에 깨끗한 수저를 쓰라고 했지만 성인이는 당연히 말을 듣지 않았다. 야단치는 대신 선생은 성인이에게 자신의 깨끗한 수저를 빌려줬다. 깨끗한 수저로 밥을 먹은 첫날, 성인이는 저도 모르게 웃음이 났다. 더러운 수저를 쓸 때 성인이는 아이들을 괴롭히려고 부러 반찬을 뺏어 먹었다. 깨끗한 수저를 쓰자 그러고 싶지 않았다. 이어 숙제가 신경 쓰였다. 처음으로 숙제를 해 간 날, 콩가면 선생은 볶은 콩을 성인이에게 나눠 주었다. 성인이의 짝꿍이 된 자람이 말대로 성인이는 나쁜 아이도 그렇다고 좋은 아이도 아직은 아니다. 그래서 더더욱 성인이에게 깨끗한 수저를 건네줄 어른이 필요하다. 어린이는 돈도 없고, 권력도 없고, 힘도 세지 않다. 어른의 입장에서 어린이는 구태여 잘 보이려고 애쓸 필요가 없는 대상이다. 그래서 어린이를 대하는 모습을 보면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단박에 알 수 있는 법이다. 초등 3~4. 출판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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