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BOOK]
샌프란시스코 조약 발효 70돌 맞아
체제의 성립·전개·귀결 총체적 분석
전범국 일본, 미국의 파트너로 변신
“동아시아 영토 분쟁도 미국이 의도”
샌프란시스코 조약 발효 70돌 맞아
체제의 성립·전개·귀결 총체적 분석
전범국 일본, 미국의 파트너로 변신
“동아시아 영토 분쟁도 미국이 의도”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 체결 장면. 1951년 9월8일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48개국이 참가해 서명하여 1952년 4월28일에 발효되었다. 이 조약에 의거해 성립한 국제질서를 샌프란시스코 체제라고 한다. 위키미디어 코먼스
동아시아 냉전과 식민지·전쟁범죄의 청산
김영호 외 지음 l 메디치미디어 l 3만8000원 올해는 전후 동아시아 국제질서를 규정한 ‘샌프란시스코 체제’가 구축된 지 70년 되는 해다. 샌프란시스코 체제란 제2차 세계대전 전범국 일본이 미국을 비롯한 전승국과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을 체결함으로써 성립한 체제를 말한다. 이 조약은 1951년 9월 48개국이 서명해 이듬해 4월 발효됐다. <샌프란시스코 체제를 넘어서>는 샌프란시스코 조약 자체에 내장된 문제들과 샌프란시스코 체제가 일으킨 문제들을 낱낱이 밝히는 논문 모음이다. 동북아평화센터(소장 김영호)가 중심이 돼 2016년부터 2019년까지 네 차례 열린 국제회의에서 발표된 논문들과 이 기획에 맞춰 새로 쓴 논문들을 모았다. 샌프란시스코 체제의 성립과 그 체제가 동아시아 질서에 끼친 영향 그리고 동아시아 시민사회의 대응과 관련해 하나같이 중요한 쟁점을 담은 논문들이다. 논문 필자로 한국(김영호, 정병준, 이태진, 이종원, 이장희, 강병근, 김성원, 오시진, 김창록, 백태웅, 노정호), 일본(와다 하루키, 하라 기미에), 중국(쉬융, 후더쿤, 스위안화), 미국(찰스 암스트롱, 알렉시스 더든), 오스트레일리아(개번 매코맥)의 학자 25명이 참여했다. 샌프란시스코 체제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글들은 간간이 나왔지만 이 체제의 성립과 전개와 귀결을 총체적으로 파헤쳐 살핀 저작은 이 책이 처음이다.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은 최종 체결까지 6년이라는 긴 시간이 걸린 조약이다. 김영호 소장은 이 조약이 체결될 때까지 일본에 대한 미국의 태도가 세 단계를 거쳐 바뀌었다고 말한다. 첫 번째 시기(1945~1947)에는 전범국가 일본을 해체하는 데 중점을 두었지만, 두 번째 시기(1948~1949)에 미-소 냉전 체제가 들어서자 소련을 배제한 채 일본과 단독 강화를 맺는 방향으로 돌아섰다. 이어 세 번째 시기(1950~1951)에 중국 본토에 사회주의 체제가 수립되고 한국전쟁이 일어나자 일본을 냉전과 반공의 최전선에 선 파트너로 삼았다. 일본은 최대 전범국의 지위에서 벗어나 미국의 동아시아 전략의 최대 동맹국이 됐다. 그리하여 전쟁범죄자 대다수가 면죄부를 받고 전후 일본 재건의 주역이 됐다. 샌프란시스코 조약 체결 과정에서 불거진 문제는 이것만이 아니다. 주목할 것은 일본의 침략과 지배로 가장 큰 피해를 당한 한국과 중국이 이 조약 체결의 당사자로 참여하지 못했다는 사실이다. 한국은 남북이 분단돼 있어 남한이 참여할 경우 북한도 참여할 것이라는 이유로 배제됐으며, 대만과 본토로 나뉜 중국도 대표성에 문제가 있다는 이유로 제외됐다. 일본 침략의 최대 피해국이 조약의 주역이 되지 못하고 만 것이다. 그런데도 이렇게 성립한 샌프란시스코 체제는 동아시아 질서를 규율하는 틀이 돼 한국을 속박했다. 이를테면 1965년 한-일 국교정상화 때 맺은 ‘청구권 협정’이 샌프란시스코 조약에 의거했다. 그 뒤로 일본은 청구권 협정의 문구를 빌미로 삼아 일제강점기 한국인 피해자들에 대한 배상 책임이 없다고 버티고 있다. 한국이 참여한 적도 없는 조약이 한국의 발목을 잡는 꼴이다. 더 결정적인 것은 샌프란시스코 조약이 역사 문제와 영토 문제를 해결하지 않은 채 묻어버렸다는 사실이다. 일본의 식민지 지배 책임 문제를 불문에 부침으로써 ‘위안부 문제’나 ‘징용자 문제’를 해결할 길을 틀어막은 것이다. 미국은 일본을 반공과 냉전의 파트너로 삼는 데만 골몰했지 아시아 다른 나라들이 일본의 침략으로 입은 피해를 따지고 그 죄를 묻는 데는 관심을 두지 않았다. 이 책에서 미국은 동아시아를 지배하려는 의도 아래 일본과 다른 나라들 사이 영토 문제를 봉합했다는 혐의를 받는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독도다. 애초 미국은 강화조약 준비 초기에 독도를 한국의 영토로 명시했다. 하지만 이 문구는 최종 조약에서 사라지고 말았다. 독도뿐만 아니라 남중국해의 스프래틀리 군도(난사군도)와 파라셀 제도(시사군도)도 처음엔 중국에 귀속될 영토 목록에 들어 있었으나 나중에 모호하게 처리되고 말았다. 이 문제를 지적한 일본 학자 하라 기미에(캐나다 워털루대 교수)는 미국이 냉전 전략에 따라 이 섬들이 한국과 중국에 귀속되는 것을 막으려 했다며 이렇게 말한다. “강화조약의 모호한 자구들은 부주의 탓도 실수 탓도 아니었다. 오히려 그런 문제들은 의도적으로 미해결인 채로 남겨진 것이었다.” 미국이 영토 분쟁과 역사 분쟁을 일으킬 소재를 일부러 남겨둠으로써 동아시아 국가들의 다툼을 부채질하고 ‘분할 지배’에 이용했다는 지적이다. 이렇게 해서 성립한 샌프란시스코 체제는 전후 수십 년 동안 동아시아를 규정하는 국제 관계의 틀이 됐다. 그러나 한국을 비롯한 동아시아 나라들의 민주화와 인권의식 신장은 이 체제에 일대 타격을 가했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과 강제징용 피해자들의 증언과 소송이 잇따랐다. 샌프란시스코 체제가 봉쇄했던 역사 문제가 전면에 등장함으로써 이 체제의 내적 모순이 극심해지고 한-일 관계는 최악의 수준으로 후퇴했다. 샌프란시스코 체제를 넘어서 동아시아에 새로운 공동의 질서를 세워야 할 이유가 한층 더 절실해진 것이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흔들리는 샌프란시스코 체제를 더 큰 차원에서 복원하려는 움직임도 빨라지고 있다. 미국과 일본이 오스트레일리아-인도를 끌어들여 만든 안보 협의체 쿼드(QUAD)가 그런 움직임을 보여준다. 중국 포위를 목표로 하는 이 쿼드 체제를 두고 이종원 교수는 ‘샌프란시스코 체제 2.0’이라고 부른다. 샌프란시스코 체제를 대체하는 더 확장된 판본이라는 얘기다. 주목할 것은 이 쿼드 체제를 주도하고 있는 것이 일본이라는 사실이다. 미국의 보호 속에 성장한 일본 극우세력은 ‘중국 포위’ 명분으로 동아시아를 대결로 몰아넣어 과거의 영광을 되찾을 길을 열고자 한다. 그러므로 지금 동아시아는 샌프란시스코 체제를 넘어서 앞으로 나아가느냐 아니면 과거의 냉전 질서로 역행하느냐 하는 갈림길에 놓여 있다. 일본의 극우세력과 미국의 패권세력이 이끄는 쿼드 체제가 전면화할 경우 남북의 화해와 평화의 길은 더욱 멀어질 수밖에 없다. 필자들은 동아시아 시민·인민이 힘을 합쳐 이 시대 역행의 흐름을 저지하고 ‘동아시아 공동체’를 향해 나아가야 한다고 강조한다. 고명섭 선임기자 michae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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