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서련 지음 l 창비 l 1만 4000원 어린 시절엔 누구나 마음속에 ‘마법소녀’ 한명쯤 품고 있었을지 모르겠다. 그러다 어른이 되어가며 일상 저 너머로 잊어버린 경험은 드물지 않을 듯하다. 소설 <마법소녀 은퇴합니다>는 그 존재를 지금 발 딛고 선 현실로 데려온다. 그래서 생경한 조합의 제목이 탄생한다. 마법의 세계에도 ‘은퇴’라는 게 존재하나? 새벽 세 시 마포대교 난간에 기대앉은 ‘나’는 절망에 빠져 있다. 이력서상으론 스물아홉까지 별거 안 하며 살아온 ‘나’에게 남은 건 300만원이 조금 넘는 카드값. 신용카드 리볼빙을 통해 빚이 불어나는 동안 점점 더 가난해진 ‘나’는 삶의 무게에 쪼그라들어 있다. “사람이 살아 있는 데에는 돈이 들어…… 그 단순한 사실을 깨닫는 데 너무 오래 걸린 것 같아.” 300만원 때문에 죽음을 생각하는 게 부끄러워 아무도 자신이 왜 죽었는지 알지 못하길 바라는 ‘나’에게 귀여운 하얀 드레스 차림의 ‘아로아’가 찾아온다. “당신은 마법소녀가 될 운명이에요.” 소설에는 초능력인지 마법인지 모를 능력으로 범죄자를 소탕하고 재난 상황에 처한 시민들을 구하는 마법소녀들이 존재한다. 그들은 ‘전국마법소녀협동조합’이라는 연대체를 만들었는데, “세계가 종말의 세대에 이르렀”기에 “세계멸망의 저지”를 목표로 힘을 모으고 있다. 자기 삶의 끝을 바라보던 ‘나’는 이제 세상의 종말 앞에서 역할을 해내야 하는 상황을 맞닥뜨린다. 아로아가 예언을 통해 ‘나’를 찾아낸 건 그 재앙 앞에서 시간을 통제할 수 있는 마법소녀를 찾아내는 일이 시급했기 때문. 그러나 좀처럼 각성이 되지도 않고, 소중한 물건에 염원을 담아 얻게 된 마법 도구 역시 미심쩍은 형태로 나타나 버렸기에 스스로를 의심하는 ‘나’에겐 반지하 집에 새어드는 빗물을 걸레로 닦아내고 폭우를 뚫고 편의점으로 알바를 나가야만 하는 생활고가 당장 눈앞의 재난으로 닥쳐 있다.
박서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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