덴마크 출신 현상학자 단 자하비. 위키미디어 코먼스
현상학 입문
단 자하비 지음, 김동규 옮김 l 길 l 2만원
단 자하비(55)는 우리 시대 현상학 연구의 최전선에 있는 철학자 가운데 한 사람이다. 덴마크 출신으로 코펜하겐대학교와 옥스퍼드대학교에 동시에 적을 두고 있다. 국내에는 자하비 저서 가운데 <후설의 현상학>(한길사), <현상학적 마음>(비), <자기와 타자>(글항아리)가 출간돼 있는데, 이번에 <현상학 입문>이 네 번째 책으로 번역돼 나왔다.
20세기 철학사는 현상학 운동을 빼놓고 이야기할 수 없다. 에드문트 후설(1859~1938)의 현상학 창시 이후 마르틴 하이데거, 장폴 사르트르, 모리스 메를로퐁티, 에마뉘엘 레비나스 같은 걸출한 철학자들이 현상학의 토대 위에 자신들의 철학을 구축했다. 특히 20세기 후반에 후설의 방대한 유고가 출간되기 시작한 뒤로 현상학 운동이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었고 현상학 르네상스라고 할 만한 사태가 빚어졌다. 현상학은 철학뿐만 아니라 정치학·사회학·심리학·인류학·교육학 같은 여러 학문 분야에 드넓은 영향을 주고 있다.
자하비의 <현상학 입문>은 후설 현상학의 기본 주제에서 시작해 현상학이 응용되는 상황까지를 두루 포괄해 살핀다. ‘입문’이라고는 하지만 내용이 압축적이어서 읽기에 그리 만만한 책은 아니다. 통상의 현상학 안내서가 후설 현상학의 구조를 설명하는 것과 달리, 자하비는 이 책에서 후설의 저작을 바탕으로 삼되 하이데거의 <존재와 시간>, 메를로퐁티의 <지각의 현상학>을 수시로 인용하고 사르트르의 <존재와 무>도 끌어들여 현상학의 쟁점을 파고든다. 특히 현상학에 대한 흔한 오해를 제시한 뒤 그 오해를 털어내는 방식으로 현상학의 본령을 설명하는 데 논의를 집중한다.
현상학 창시자 에드문트 후설(1859~1938). 위키미디어 코먼스
이 책은 현상학의 기본 주제를 이야기하기에 앞서 사르트르의 동반자 시몬 드 보부아르의 자서전에 등장하는 에피소드를 끄집어내 이야기 실마리로 삼는다. 1933년 사르트르의 친구 레몽 아롱이 독일에서 현상학을 연구하고 막 돌아와 레스토랑에서 사르트르, 보부아르와 만났다. 아롱은 자신이 주문한 ‘살구 칵테일’을 가리키며 사르트르에게 말했다. “이보게, 친구! 자네가 현상학자라면, 이 칵테일에 대해서 말할 수 있을 것이네. 그리고 그것이 철학이지!” 이 일화는 현상학이 말하는 ‘현상’이 무엇을 뜻하는지 알려준다. 우리의 의식에 잡히는 일상의 대상들이 현상학이 말하는 현상이다. 그 대상들이 우리의 의식에 현상하는 대로 기술하는 것이 현상학의 가장 기초적인 과제다. 아롱의 얘기에 자극받은 사르트르는 곧바로 현상학 연구에 뛰어들었다.
후설의 현상학에서 핵심이 되는 개념은 ‘지향성’이다. 지향성이란 우리의 마음이 언제나 무언가를 지향하면서 의식한다는 것을 가리키는 말이다. 우리의 의식은 언제나 지향적 의식이다. 아무것도 지향하지 않는 의식이란 없다. 다시 말해 우리는 언제나 무언가를 특정한 지향적 관점에서 보거나 생각하거나 기억하거나 하는 방식으로 의식한다. 그런 지향적 관점 속에서 우리는 우리 바깥의 세계를 의식 속에 구성한다. 여기서 현상학이 ‘실재론인가 관념론인가’ 하는 문제가 불거진다. 세계가 지향적 태도를 통해서 구성된다고 하면, 언뜻 현상학은 관념론인 것처럼 여겨진다. 그러나 외부 세계가 존재한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 실재론이라면 현상학은 실재론이라고 불러야 한다. 동시에 그 외부 세계가 우리의 지향적 의식을 통해서 나타난다는 점에 주목한다면 현상학을 그저 실재론이라고만 부를 수는 없다.
우리의 의식, 우리의 마음과 외부의 세계는 불가분하게 연결돼 있고 얽혀 있다. 그러므로 현상학의 틀에서 보면 세계는 우리 마음과 무관하게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이 사실에만 눈길을 모을 경우 ‘현상학은 외부 세계가 실재함을 부정한다’는 잘못된 견해로 이어질 수 있다. “현상학자로서 나는 내가 레몬을 경험한다고, 레몬이 나타난다고, 마치 내 앞에 레몬이 있는 것처럼 보인다고 주장할 수는 있지만, 나는 현상학자로서 레몬이 실제로 존재한다고 단언할 수는 없다.” 이것이 현상학에 대해 흔히 불거지는 오해다. 레몬이 우리의 지향적 의식 속에서 구성된다고 해서 레몬이 실재하는 것이 아니라고 말할 수는 없다. 레몬은 실재한다. 다만 우리의 지향적 의식을 통과해 어떤 의미를 지닌 레몬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이 대목에서 자하비는 후설이 ‘에포케’(판단 중지)라고 부른 것을 거론한다. 에포케란 우리가 사태 자체를 경험하기에 앞서 수행해야 하는 절차다. 사태를 있는 그대로 이해하는 데 방해가 되는 선입견을 괄호로 묶어서 배제하는 것이 후설이 말하는 에포케다. 더 좁혀서 말하면, 외부 세계에 대한 특정한 독단적 태도, 곧 ‘자연적 태도’를 거부하는 것이 에포케다. 이때 자연적 태도란 “우리가 경험에서 마주하는 세계가 우리와 무관하게 독립적으로 존재한다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는 것”을 뜻한다. 우리가 경험하는 실재는 언제나 우리의 지향성 속에서 경험되는 것일 수밖에 없다. 이런 지향성을 거치지 않은 어떤 경험도 존재할 수 없다. 이런 사실을 알지 못하는 태도가 자연적 태도다. 이 자연적 태도, 다시 말해 세계 인식에 관한 ‘소박한 태도’를 단호하게 물리쳐야만 우리는 ‘사태 자체’를 경험할 수 있다.
자하비는 여기서 현상학이 관심을 두는 것이 ‘존재론’임을 특별히 강조한다. 현상학은 단순히 현상을 올바르게 기술하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다. 판단 중지를 통해 우리의 선입견을 치워버림으로써 세계의 존재 실상이 올바르게 드러나도록 해주는 것이 현상학이다. 자하비는 후설이 이 점을 명료하게 서술하지 않아 오해를 불렀지만, 후속 세대 곧 하이데거와 메를로퐁티를 통해서 현상학의 목표가 존재론임이 분명하게 드러났다고 말한다. 물론 이때의 존재가 우리의 마음과 무관하게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존재는 언제나 지향성과 관계 맺는 가운데 존재로 나타난다. 현상학은 바로 그 존재를 정립한다. 요컨대 현상학은 사태 자체를 탐구하는 방법적 루트를 열어주는 절차이자 그 사태 자체의 존재를 드러내는 것을 목표로 삼는 존재론적 기획이다.
고명섭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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