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임 시장 프랭크 리조의 생애 따라가며
블루칼라 보수주의 어떻게 형성됐는지 추적
‘법·질서’ 강조…공공주택·할당제 등엔 반대
블루칼라 보수주의 어떻게 형성됐는지 추적
‘법·질서’ 강조…공공주택·할당제 등엔 반대
프랭크 리조(왼쪽)는 1960~70년대 미국 필라델피아시에서 경찰청장과 시장을 역임했다. 그는 자유주의적 민권운동에 반대하고, 법과 질서를 강조했으며, 백인 노동계급의 지지를 받았다. 지은이는 리조 시대가 블루칼라 보수주의의 형성기를 보여준다고 말한다. 2016년 미국 대선 당시 언론들은 그와 도널드 트럼프의 유사점을 부각하는 기사들을 보도했다. 회화나무 제공, <한겨레> 자료사진, 그래픽 장은영 soobin35@hani.co.kr
프랭크 리조의 필라델피아와 포퓰리즘 정치
티모시 J. 롬바르도 지음, 강지영 옮김 l 회화나무 l 2만4000원 지난 2020년 6월2일 미국 필라델피아시 시청 광장에 서 있던 한 남자의 동상이 철거됐다. 아프리카계 미국인 조지 플로이드의 사망에 항의하는 인종차별 반대 시위가 미국 전역에서 벌어지면서, 인종차별을 옹호한 인물들의 동상을 철거하라는 요구가 고조되던 때였다. 이 동상은 1972년부터 1980년까지 필라델피아 시장을 역임한 프랭크 리조(1920~1991)였다. “도널드 트럼프는 다시 태어난 프랭크 리조다” “도널드 트럼프의 프랭크 리조적인 요소―‘숨겨진 표’” “도널드 트럼프는 새로운 프랭크 리조인가”. 지난 2016년 미국 대선 당시 보도된 기사들의 제목이다. 당시 언론은 거친 언사, 백인 노동계급을 향한 호소 등 두 사람의 정치 스타일과 선거 전략의 유사성을 부각시키며 둘을 비교했다. <블루칼라 보수주의>는 1960~70년대 필라델피아시의 상황과 프랭크 리조의 생애를 들여다봄으로써 미국 보수주의의 기원과 특성을 포착하려는 시도다. 역사학자인 지은이는 보수주의에 대해 개념적 설명을 나열하기보다 ‘리조 시대의 필라델피아’라는 특정한 역사의 현장을 세밀하게 묘사하며 보수주의, 특히 블루칼라(노동계급)의 보수주의가 형성되는 과정의 한 단면을 보여준다. 이탈리아 이민자의 아들로 태어난 프랭크 리조는 고등학교를 중퇴하고 아버지의 뒤를 이어 경찰이 됐다. 그는 범죄에 대한 강경한 입장, 위압적인 경찰 전술, 민권활동가들에 대한 공공연한 적대시로 유명했다. 스스로를 ‘미국에서 가장 강인한 경찰’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리조는 빠른 속도로 승진을 거듭해 1967년에는 필라델피아 경찰청장이 됐고, 1971년 시장직에 출마해 당선됐다. 1960~70년대는 미국에서 인권, 반인종차별, 반성차별, 평등, 평화 등을 주창하는 자유주의적 민권운동이 절정에 달했던 때다. 백인·남성·노동계급이라는 정체성을 중시했던 백인 블루칼라는 이런 흐름에 거부감을 가졌고, 민권운동의 발전으로 자신들의 몫이 줄어들고 손해를 보고 있다고 느꼈다. 그들은 민권단체들의 전투적 시위 등에 대한 대응으로 ‘법과 질서’를 요구했다. 리조의 법 집행 보수주의가 이들 사이에서 높은 인기를 누렸던 배경이다. 이들은 또한 당시 확산하고 있던 학교 인종분리 폐지, 공공주택 건설, 적극적 우대조치(소수민족, 여성 등 역사적으로 차별을 받아온 집단에 취업이나 대학 입학 등에서 혜택을 주는 제도) 등의 정책에 대해서도 부정적이었다. 당시 공립학교는 백인 학생이 다니는 학교와 아프리카계 학생이 다니는 학교가 분리돼 있었다. 이를 통합하려는 당국의 시도에, 백인 블루칼라 학부모들은 강하게 반대했다. 이들은 아프리카계 학생들이 유입되는 것을 싫어했지만, 겉으로는 인종차별주의적 동기를 드러내지는 않았다. 반대 시위에 참석한 한 주민은 이미 학교가 초만원이라며 “우리는 흑인이든 백인이든 중국인이든 학생들이 더 많아지는 걸 원치 않는다”고 말했다. 1967년 추진된 ‘필라델피아 계획’은 적극적 우대조치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연방정부의 건설 하청업자들에게 아프리카계 미국인 수습생의 고용 목표와 일정을 수립할 것을 요구한 것이었다. 당시 건설노조는 이 조처로 자격이 없는 노동자들이 공사 현장에 투입되고, 백인들은 취업과 승진이 가로막힐 것이라고 주장했다. 경찰청에 여성채용 할당제를 도입하려는 시도 역시, 백인 남성에 대한 ‘역차별’이라는 비난에 부딪혔다. 1971년 작은 백인 블루칼라 동네인 휘트먼에서는 공공주택 건설에 반대하는 주민들의 시위가 벌어졌다. 한 주민은 “교육을 받지 못한 (그리고 일부는 그저 아주 게으른) 저소득층 수십 명이 필라델피아 지역으로 계속해서 이사를 오고 있습니다. 납세자들이 이런 사람들에게도 집을 마련해줘야 할 책임이 있을까요?”라고 말했다. 주민들의 더 구체적인 두려움은 ‘하류층’이 동네로 이사 오면 집값이 떨어질지 모른다는 것이었다. 그들은 복지에 대한 선별적 거부를 보여주었다. 자신들은 지금의 자리를 얻기 위해 열심히 일했기 때문에 복지혜택을 누릴 자격이 있는 반면, 백인이 아닌 사람들과 가난한 사람들은 단순히 정부 보조금에 의존하고 있기에 자격이 없다는 것이었다. 이들은 ‘근면 vs 공짜’라는 이분법적 렌즈를 통해 ‘자격이 있는 자’와 ‘자격이 없는 자’를 구분했다. 이는 레이건 시대에 본격적으로 시작된 반복지 정책의 전조였다. 리조는 이런 목소리들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여 시장 선거 운동에 이용했고 시장 재임 시에도 자신에 대한 공격의 방패막이로 사용했다. 포퓰리즘 역시 활용했다. 그의 선거 광고는 “보통사람만이 리조를 원한다” 같은 문구를 실었고, 엘리트 자유주의자들과 블루칼라 필라델피아인을 대비시켰다. 리조는 후자의 대리인을 자처했으며 블루칼라들은 리조를 “우리 중 한 명”이라고 불렀다. 리조는 시장을 세 번 연속 할 수 없도록 규정한 시 헌장을 개정하는 데 실패하면서 시장직에서 물러났다. 리조의 그림자는 1980년대 레이건 시대 등을 거쳐 도널드 트럼프에게까지 드리워져 있다. 트럼프는 재력가이면서도 ‘블루칼라 백만장자’라는 수사를 내세우며 블루칼라의 자부심, 전통, 근면을 찬양했다. ‘법과 질서’를 수호하겠다고 선언하고 법의 엄격한 집행을 강조했다. 이런 전략은 트럼프의 대선 승리에 적지 않은 기여를 한 것으로 평가된다. 지은이는 “여기에서 재조명된 이야기들은 20세기 후반 미국의 우경화를 설명해주는 거대한 전체의 일부”라며 “2016년 블루칼라 보수주의는 현대 미국 보수주의의 지배적인 변종이 되었다”고 말한다. 당시 보수주의가 구사했던 언어와 논리는 비단 미국뿐 아니라 지금 한국에서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이 책을 50년 전 미국 도시의 이야기라고만 치부할 수 없는 이유다. 안선희 기자 sh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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