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리한 연명의료, 죽음의 질 저하시켜
병원 임종실 의무화, 호스피스 확대 등 필요
“죽음은 삶의 일부…좋은 죽음에 도전을”
병원 임종실 의무화, 호스피스 확대 등 필요
“죽음은 삶의 일부…좋은 죽음에 도전을”
게티이미지뱅크, 그래픽 장은영 soobin35@hani.co.kr
박중철 지음 l 홍익출판미디어그룹 l 1만6800원 2020년 기준으로, 우리나라 국민의 기대수명은 83년이지만 실제 건강하게 지내는 건강수명은 66년에 그친다. 17년 동안은 신체적, 정신적 기능이 저하되면서 고혈압, 당뇨, 뇌졸중, 폐렴, 낙상에 의한 골절 등으로 병원 신세를 지게 된다. 병이나 장애로 자립이 어려워지면 요양병원이나 요양원에 입원해야 한다. 폐렴, 요로 감염, 뇌경색 등은 요양시설에 있는 노인들에게 흔히 발생한다. 요양시설에서는 종합병원 응급실로 환자를 이송시키고, 이 중 적지 않은 노인들이 중환자실로 옮겨진다. 이 과정에서 사망하는 노인들이 많고, 회복되더라도 이전보다 훨씬 쇠약해진 상태로 다시 요양시설로 가게 된다. 머지않아 또 발열, 호흡곤란, 의식 저하 등이 발생해 응급실로 향해야 한다. 요양시설과 응급실, 중환자실을 오가다 그 어딘가에서 결국 죽음을 맞는다. 오늘날 대한민국에서 가장 많이 볼 수 있는 죽음의 모습이다. <나는 친절한 죽음을 원한다>는 가정의학과 의사이자 호스피스 의사인 지은이가 우리 사회에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맞닥뜨리는 죽음의 현실을 드러내고 ‘좋은 죽음’의 의미와 이에 이르는 길을 모색한 책이다. 집에서 가족들과 함께, 고통 없이 편안한 상태에서, 가족과 주변에 부담을 주지 않고, 행복한 삶을 누리다 죽는 것. 각종 조사에서 나타난 한국인이 생각하는 좋은 죽음이다. 현실은 어떨까. 한국인은 병원에서 죽는다. 핵가족화와 도시화가 가속화하면서 2003년을 기점으로 병원 임종이 주택 임종을 추월했다. 2020년 기준 전체 사망자의 75.6%가 요양병원을 포함한 의료기관에서 사망했다. 병원 임종은 연명의료로 이어진다. ‘연명의료’는 “임종 과정에 있는 환자에게 하는 심폐소생술, 혈액 투석, 항암제 투여, 인공호흡기 착용 등의 의학적 시술로서 치료 효과 없이 임종 과정의 기간만을 연장하는 것”(연명의료결정법)을 이른다. 우리나라에서는 많은 말기 환자가 사망 직전까지 중환자실에서 연명의료를 받는다. 연명의료 없이 고통 경감에 주력하며 죽음의 질을 높이는 역할을 하는 호스피스 완화의료는 시설과 인력이 크게 부족하다. 특히 1997년 중증 환자를 부인의 요청에 따라 집으로 퇴원시켰던 의료진이 형사처벌을 받게 된 ‘보라매병원 사건’ 이후 병원 임종과 연명의료는 새로운 관행으로 자리 잡는다. 그 전까지만 해도 의료진들은 중증 환자, 말기 환자, 고령의 환자에 대해 무리한 치료를 중단하고 퇴원시켜 집에서 임종할 수 있도록 도왔다. “병원에서 기계호흡장치를 달고 인공영양을 받으며 최대한 버티다가 죽음을 맞이하는 모습은 마치 현대 사회 죽음의 통과의례로 자리 잡은 듯하다. 이는 엄밀히 삶의 연장이 아닌 죽음의 연장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관행은 가족들과 분리된 임종, 막대한 치료비 부담 등의 부작용을 낳는다. 연명의료가 경이로운 의학적 발전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의학이 동원 가능한 모든 수단을 소진하고 환자가 ‘최종적이고 불가역적’인 상태에 이를 때까지 개입을 멈추지 않는다면 그 과정에서 환자의 존엄한 죽음은 파괴당할 수밖에 없다고 지은이는 말한다. 병원들은 연명의료에 몰두하면서도 말기 환자들의 고통을 줄이기 위한 마약성 진통제 처방에는 소극적이다. 고통 없는 편안한 죽음에 대한 한국인의 바람과 달리 말기 환자들은 통증과 호흡곤란에 시달리며 죽음을 기다려야 한다. 현대 죽음 문화의 또 다른 특징은 죽음에 대한 외면이다. 과거 전통사회에서는 종교, 예술 등이 죽음의 공포를 극복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다. 하지만 “현대 사회에서 죽음의 공포를 다루는 방식은 개인 차원에서는 철저히 망각하는 것이고, 사회적으로는 일상으로부터 배제하는 억압의 전략을 사용”하는 것이다. 죽음은 삶의 마지막 과정이자 완결이라기보다는 “끝까지 거부해야 하는 재앙”으로 생각된다. 사람들은 자신이 늙는다는 사실을 부정하고 죽음도 피하고 미룰 수 있다고 믿다가, 죽음의 징후가 나타나면 병원과 현대의학에 자신의 마지막을 온전히 내맡긴다. 하지만 병원들 역시 죽음에 무관심하다. 장례식장만 앞다퉈 확장할 뿐 환자가 가족들 옆에서 평화롭게 임종할 수 있는 임종실을 만들지는 않는다. 환자는 끝까지 죽음과 싸워야 하는 중환자실, 하루 수십만원을 내야 하는 1인실, 떠밀리듯 가는 요양병원, 최악의 경우 의료용품이 쌓여 있는 처치실 중 한 군데에서 눈을 감아야 한다. 임종 선언은 레지던트나 인턴 같은 ‘아랫의사’들에게 맡겨진다. 죽음에 대한 경험이 적은 젊은 의사들은 기계적으로 임종 선언을 한 뒤 서둘러 자리를 떠난다.지은이는 죽음을 회피하는 태도를 버리고 죽음을 직시하는 용기를 가져야 한다고 말한다. “죽음은 내 삶의 일부이고, 잘 살아온 삶에 어울리는 좋은 죽음은 우리 스스로가 도전해야 할 삶의 마지막 과제”이기 때문이다. 좋은 죽음을 위해서는 자신이 어떤 죽음을 맞이할지에 대한 계획과 노력이 필요하다. 연명의료에 대한 입장, 생을 마감할 장소, 나의 고통을 배려해줄 병원 등을 미리 생각하고 찾아놓아야 한다. 의학 역시 무의미한 생명 연장보다는 환자가 평온하게 삶을 완성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것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제도적으로는 종합병원 임종실 설치 의무화, 호스피스 완화의료의 적극적 확대, 생애 말기 돌봄에 대한 대책 마련, 의료인을 대상으로 한 죽음에 대한 교육 시행, 연명의료결정법상의 물과 영양 공급 의무 조항(연명의료를 중단할 때에도 물과 영양분은 계속 공급해야 한다는 조항) 삭제 등이 필요하다. 이 책에는 무의미한 연명의료의 범위 등 윤리적 논쟁의 대상이 될 만한 지점들이 없진 않으나, 책장을 덮고 나면 나 자신은 어떻게 죽게 될지, 그리고 어떻게 죽어야 할지에 대해 찬찬히 생각해보게 된다. 안선희 기자 sh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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