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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개발 아닌 안보에서 ‘냉전 새마을’의 핵심을 찾다

등록 2022-04-01 05:00수정 2022-04-01 14:03

냉전과 새마을
동아시아 냉전의 연쇄와 분단국가체제
허은 지음 l 창비 l 2만8000원

박정희 정부가 몰두했던 ‘새마을’은 “잘살아 보세”를 외친 ‘새마을운동’, 곧 개발영역에서의 근대화와 관련이 깊은 것으로만 주로 인식된다. 한국사학자 허은 고려대 교수가 펴낸 <냉전과 새마을>은 1970년대 박정희 정부가 추진한 농촌 재편정책을 단지 ‘새마을운동’ 중심으로 파악해온 한계를 지적한다. 안보영역으로까지 시야를 확장하면, ‘냉전·분단국가체제’의 기반으로서 새마을의 더 깊은 의미가 드러난다. 책은 ‘동아시아-한반도-한국사회’라는 중층적인 공간과 1930~1970년대를 관통하는 냉전의 시간대에서 새마을이란 과연 무엇이었는지 입체적으로 조명하려고 시도한다.

과거 식민제국은 식민지 건설을 위한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해 저항세력과 민간인을 분리하는 강제이주와 집단수용 정책을 폈고, 이것의 복잡한 연쇄와 상호 학습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동아시아 지역에서 ‘냉전의 새마을’이 등장하는 토양을 제공했다. 지은이는 “정치세력의 권력투쟁뿐 아니라 민중이 삶을 영위하는 공간의 지배와 재편을 놓고 벌어지는 전쟁의 연속”이라는 점에서 동아시아에서 냉전은 ‘밑으로부터의 냉전’이었으며, 내부의 위협 요소를 뿌리뽑기 위한 농촌 지배 전략의 핵심이 ‘냉전의 새마을’이었다고 본다. ‘유격대국가’든 ‘대유격대국가’든, 마을에서 민중을 동원하는 총력전이 ‘밑으로부터의 냉전’의 본질인 셈이다.

1968년 ‘표준방위촌’으로 선정된 충청북도 청주시 미원면의 모습. 박정희 정부는 전국 각 도에 한 곳씩 ‘표준방위촌’을 선정했으며, 주민들은 강도 높은 대공 훈련을 받아야 했다. 그 뒤 ‘대공전략촌’ 건설로도 연결된 이런 흐름은 박정희 정부가 추진한 ‘냉전의 새마을’을 기반으로 한 ‘분단국가체제’의 성격을 잘 보여준다. 창비 제공
1968년 ‘표준방위촌’으로 선정된 충청북도 청주시 미원면의 모습. 박정희 정부는 전국 각 도에 한 곳씩 ‘표준방위촌’을 선정했으며, 주민들은 강도 높은 대공 훈련을 받아야 했다. 그 뒤 ‘대공전략촌’ 건설로도 연결된 이런 흐름은 박정희 정부가 추진한 ‘냉전의 새마을’을 기반으로 한 ‘분단국가체제’의 성격을 잘 보여준다. 창비 제공

1930년대 만주국과 일제 관동군이 농민을 강제로 이주시켜 건설한 집단부락은 ‘냉전의 새마을’의 원형으로 꼽힌다. 경찰·군인으로서 항일무장투쟁세력을 토벌하는 한편 농촌 사회를 재편하고 감시하고 건설하는 일을 수행한 ‘방공전사’들은, 한반도 분단 과정에서 제주도·지리산 등에 파견되어 자신들의 경험을 퍼뜨리는 ‘냉전전사’로 거듭났다. 동아시아 차원에서도 이런 경험은 다양한 갈래로 공유되며 ‘연쇄와 환류’를 일으켰다. 예컨대 말라야(1948~1963년 말레이 반도에 존속했던 연방국가)에서 펼쳐진 ‘대반란전’을 주도한 영국의 로버트 톰슨은 남베트남 응오딘지엠 정부의 ‘전략촌’ 건설 전략에 개입했다. 한국군의 베트남전 참전은 “군사적 소탕작전에서부터 농촌개발까지 포괄하는 농촌 평정계획을 실습하며 냉전에 규정된 근대화의 원리를 체득하는 과정이었다.”

박정희와 그 친위세력이 만들고자 했던 ‘1972년 분단국가체제’는 이러한 ‘냉전의 새마을’로 이뤄진 체제라고 지은이는 규정한다. 새로운 마을을 건설하는 차원은 아니지만, 기존 마을에 공동체 및 자율 영역을 배제하는 한편 개발과 안보를 긴밀하게 묶는 지배 체제를 심어서 ‘총력안보체제’를 구축하려 했다는 것이다. 전국의 이·동장에게 ‘대공요원’의 지위를 부여해 전국의 마을을 ‘대공(對共)새마을’로 만들려 했던 조처, 국가와 민중이 만나는 최말단 조직으로서 ‘반’(班)과 ‘반상회’를 활성화하려 했던 시도 등이 이를 잘 보여준다. 그럼에도 지역사회와 민초는 국가권력에 의해 일방적으로 통제·동원되지 않았고, 풀뿌리 민주주의를 추구하는 운동이 끊임없이 이어지면서 분단국가체제는 끝내 밑으로부터 붕괴했다고 지은이는 진단한다.

최원형 기자 circl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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