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BOOK]
기후-생태위기와 인권 악화는 밀접히 연계
‘자연의 권리’ 인정하고 인간 권리 축소해야
시스템 전면 바꾸는 ‘사회-생태 전환’ 시급
기후-생태위기와 인권 악화는 밀접히 연계
‘자연의 권리’ 인정하고 인간 권리 축소해야
시스템 전면 바꾸는 ‘사회-생태 전환’ 시급
그래픽 동혜원 hwd@hani.co.kr, 게티이미지뱅크
조효제 지음 l 창비 l 2만원 2021년 봄 인도 북부 우타라칸드주 난다데비산에서 홍수가 발생했다. 상류 쪽에서 붕괴된 빙하가 계곡으로 부서져 내린 것이다. 기후위기로 빙하가 녹은 것이 한 원인이었다면, 수력발전소·댐 등을 난개발한 것이 또 다른 원인이었다. 이 홍수로 30여명이 희생되고 200여명이 실종됐다. 납 생산·처리의 중심지인 중국 안후이성의 제서우시는 환경과 건강에 해로운 중금속으로 토양과 강물이 극심하게 오염돼 있다. 인근에 사는 아이들은 납중독으로 지적 발달 장애를 겪고 있다. 환경과 인권. 얼핏 별개의 문제처럼 보이지만 실은 뫼비우스의 띠처럼 서로 연결돼 있다. 기후-생태위기가 한쪽에 있다면 다른 한쪽에는 인권 악화와 불평등이 있다. <침묵의 범죄, 에코사이드>는 인권 문제에 천착해온 조효제 성공회대 교수(사회학)가 환경위기와 인권위기의 연계성을 고찰하고 두 위기를 극복할 사회-생태 전환의 길을 제시한 책이다. 전작인 <탄소 사회의 종말>이 주로 기후위기를 인권의 관점에서 다뤘다면, 이번 책은 문제의식을 넓혀 기후위기와 함께 생태위기 전반을 분석한다. 환경-인권 파괴는 다양한 분야에서 찾아볼 수 있다. 흔히 볼 수 있는 유형은 개발과 산업활동이 환경을 훼손하고 그것이 다시 인권을 유린하는 패턴이다. 인도 난다데비산의 홍수, 중국 제서우시의 납중독 등은 모두 여기에 해당한다. 전쟁 역시 대규모 환경파괴와 인권파괴를 동반한다. 한국전쟁도 한 사례다. 한국전쟁은 미 공군의 폭격으로 인명피해와 환경피해가 조직적으로 발생했다. 적어도 38만6000톤 이상의 폭탄이 투여됐고 북한 지역의 경작지 약 3700㎢가 황무지로 변했다. 기후위기는 환경파괴와 인권파괴의 종합판이다. 기후위기로 인한 태풍, 폭염, 가뭄, 감염질환 등으로 인명손실이 발생한다. 토착민들은 삶의 터전을 잃고 공동체를 지키지 못하게 된다. 여성, 소수민족, 어린이, 난민, 작은 섬나라 주민, 장애인, 야외 노동자, 홀몸 노인, 저소득층, 노숙인, 만성질환자 등은 기후위기 때문에 인권이 특히 침해되는 집단이다. 환경-인권 파괴가 극단적으로 치달을 경우 생태계를 대규모로 파괴하는 ‘에코사이드’(생태살해·ecocide)와 인간계를 대규모로 파괴하는 ‘제노사이드’(집단살해·genocide)가 나타난다. 베트남전쟁은 가장 적절한 예일 것이다. 전쟁 당시 미군은 베트남의 논과 숲과 동식물에 제초제인 고엽제를 무차별적으로 살포했다. 숲이 사라지고 논과 밭이 반영구적으로 훼손됐다. 고엽제 때문에 약 40만명이 단기간에 사망했고, 약 300만명이 만성장애에 시달리며 약 15만명의 기형아가 태어났다. 생명윤리학자 아서 갤스턴은 베트남에서 벌어진 자연환경 파괴행위를 ‘에코사이드’라고 이름 붙였다. 이렇게 탄생한 에코사이드 개념은 이제 전쟁 시의 고의적 환경파괴를 지칭하는 것을 넘어 평상시 경제활동에 의한 대규모 환경파괴로까지 확장되어 사용되고 있다. 제노사이드 역시 최근에는 “어떤 집단의 통합적 일체성이 해체되는 문화·환경 조건의 파괴, 즉 사회적 죽음”까지 지칭하는 개념으로 넓혀지고 있다. 지은이는 “기후-생태위기를 맞아 ‘에코사이드와 제노사이드가 얽히면서 인간과 지구행성에 가하는 폭력’이 인권과 환경의 핵심 주제로 떠올랐다”며 이것을 ‘에코사이드-제노사이드 연계’라고 부른다. 브라질에서 이뤄지고 있는 열대우림 파괴와 이로 인한 토착민들의 강제이주와 공동체의 파괴는 이 연계의 표본이라고 할 만하다. 에코사이드-제노사이드 연계를 막으려면 돈벌이를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문제적 기업들에 대한 통제가 필요하다. 또한 에코사이드를 ‘국제적 범죄’로 규정하고 단죄해야 한다. 더 나아가 ‘자연의 권리’를 인정하기 위해 인권 개념을 대대적으로 수정하는 것도 검토돼야 한다. “자연의 권리를 인정한다는 말은 권리의 범위를 비인간 실체로까지 확대하고 인간의 권리 중 일부를 과감하게 축소·조정한다는 뜻이다.” 인간이 자연의 일부이고 자연은 스스로 존재하고 번성할 수 있는 권리가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자는 것이다. 자연의 권리가 인정된다면 도롱뇽과 강물이 인간의 법정에서 인간을 상대로―물론 인간 대리인을 통해야 하지만―법리 공방을 벌이는 일이 가능해진다. 자연이 ‘법인격’을 가진 주체로 나설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이런 논의에 대해 “그래도 우선 인간부터 살고 봐야지”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하지만 지은이는 “인류세에는 자연의 권리와 인간의 권리가 칼로 자르듯 구분되지 않는다. 자연이 어찌되든 인간만 잘 먹고 잘 살 수 있는 그런 세상은―과거에도 없었지만―인류세에는 더더욱 존재하지 않게 되었다. ‘인간과 환경보호의 수렴’ 그리고 ‘자연 자체의 권리 인정’이라는 이중 명제가 더 이상 늦출 수 없는 과제로 떠올랐다”고 강조한다. 결론적으로 지은이는 기후-생태위기를 근본적으로 극복하기 위해서는 사회경제 시스템의 대전환, 즉 ‘사회-생태 전환’이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사회-생태 전환의 목표는 인간이 인간을 지배하지 않고, 인간이 자연을 지배하지 않는 ‘이중적 공존’이라고 할 수 있다. 이를 위해 거시적 구조 차원에서는 사회계의 경우 불평등 해소와 녹색미래 보장을 목표로 해야 한다. 생태계를 위해서는 경제성장, 소비지상주의, 인간중심의 자연지배, 전문적 지식 등의 패러다임을 넘어서야 한다. 미시적 실천의 차원에서는 개인과 집단의 인식변화, 다양한 아이디어 실험, 집단적·정치적 행동이 중요하다. 중간범위 차원에서는 법과 규정을 바꾸고 제도와 정책을 만들어야 한다. 지은이는 “살아 있는 모든 사람이 아직 태어나지 않은 아이 하나씩을 무등 태워 인류세를 건너겠다는 마음가짐을 가져야 한다”며 “새로운 시대와 달라진 조건을 이해하면서 자신의 삶의 양식을 원점에서부터 다시 짚어볼 줄 아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동료 시민들에게 당부한다. 안선희 기자 sh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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