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BOOK]
이서수 장편 ‘헬프 미 시스터’
자차배송과 뚜벅이 음식배달
대리운전과 여성편의 서비스 등
앱 기반 노동 나선 가족 그려
이서수 장편 ‘헬프 미 시스터’
자차배송과 뚜벅이 음식배달
대리운전과 여성편의 서비스 등
앱 기반 노동 나선 가족 그려

두 번째 장편 <헬프 미 시스터>에서 플랫폼 노동을 하는 가족의 이야기를 쓴 작가 이서수. “플랫폼(긱) 노동에 대한 인식의 변화와 노동자를 위한 바람직한 제도적 뒷받침이 필요하다는 마음을 담았다”고 ‘작가의 말’에 썼다. 김서해 제공

이서수 지음 l 은행나무 l 1만5000원 “이젠 때가 되었다. 그들 모두 정신을 차릴 때가. 네 명의 성인이 거주하는 집에서 단 한 명도 돈을 벌어오는 사람이 없다니….” 이서수의 두 번째 장편 <헬프 미 시스터> 도입부에서 주인공 수경의 시점으로 서술되는 문장이다. 여기서 언급된 성인 넷이란 수경과 그의 남편 우재, 수경의 부모인 여숙 씨와 양천식 씨를 가리킨다. 15평짜리 낡은 연립주택의 거주자가 이들만도 아니어서, 우재 형인 주재의 두 아들 준후와 지후까지 여섯 식구가 이 좁은 집에서 복작대고 있는 참이다. 예사롭지 않은 가족 구성인 만큼 사연이 없을 수 없다. 양천식 씨는 2년 전 사기를 당하는 바람에 집을 날리고 아내와 함께 큰딸네 신세를 지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주재는 2년째 연락 두절이고 그 무렵 갈라선 그의 아내는 이미 다른 가정을 이루어 자식들을 돌볼 처지가 아니다. 그렇다면 벌이는? 소설이 좀 더 진행된 뒤에 나오는 이런 문장이 그에 대한 설명이 될 듯하다. “양천식 씨는 우재만큼이나 태평한 사람이고, 우재만큼이나 순진한 구석이 있다. 이 집안 여자들은 생활력이 강하고 잘 속지 않는 편이지만, 남자들은 사기를 당하기 쉬운 타입이었다.” 양천식 씨가 사기를 당했다는 말은 앞서 했거니와, 우재 역시 엉터리 사탕발림에 넘어가 멀쩡한 직장을 그만두고 ‘전업투자자’가 된 지 벌써 4년째. 전업투자자라고는 하지만, 돈을 벌지는 못하고 겨우 본전치기에 만족하는 정도다. 여숙 씨는 순대 공장, 식당, 병원 미화원, 해변의 쓰레기 줍기 등의 노동을 닥치는 대로 했지만 지금은 그마저도 여의치 않아 일손을 놓고 있는 형편. 수경이 집안의 유일한 소득원인 셈인데 넉 달 전에 불가피하게 회사를 그만두게 되었고, 그 불가피한 사정이 이 소설의 주제로 연결된다. 수경이 새로운 거래처와 계약을 성사시킨 것을 축하하고자 마련된 회식에서 수경은 정신을 잃었고, 그가 마신 술에 수면제를 탄 옆자리 동료는 수경을 모텔로 데려갔지만 모텔 주인의 신고로 범행은 미수에 그쳤다. 이 사건 뒤 대인기피증과 두려움에 시달리던 수경은 결국 회사에 사직서를 냈고, 팀장과 팀원들은 어쩐지 안도하는 얼굴로 수경을 떠나 보낸다. “극복은 영화에서나 나온다. 현실에선 불가능하다. 극복이 아니라 참는 것이다. 이를 악물고 참는 것이다. 그 일에 매몰되어 생계를 내팽개칠 수 없으니까 잊은 척하는 것이다.” 넉 달의 휴지기를 거쳐 다시 일을 하기로 마음먹으면서 수경이 곱씹는 생각이다. 이번에 수경이 택한 일은 이른바 자차배송. 택배회사에서 배달할 물건을 받아 자기 차를 이용해 배송을 마치면 물량만큼 수당을 받는 방식이다. 사람들과 엮이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이 수경에게는 가장 큰 장점으로 다가온다. 우재 역시 밤에는 대리운전을 뛰며 낮에는 수경의 배송을 돕고, 양천식 씨는 걸어서 하는 음식 배달에 나선다. 요컨대 다들 휴대전화 어플을 활용한 플랫폼 노동 또는 긱 노동에 종사하는 셈이며, 그것은 나중에 수경과 여숙 씨가 하게 되는 여성 전용 편의 서비스 ‘헬프 미 시스터’로 이어진다. 그러니까 이 소설은 플랫폼 노동과 공유경제의 실상을 실감나게 그리되 여성주의적 문제의식을 바탕에 깔고 있는 작품이다. “자차 배송기사의 시급은 본인이 결정한다. 뛰면 시급이 오르고, 걸으면 시급이 내려간다. 요의를 참으면 오르고, 화장실에 자주 들르면 내려간다. 밥을 굶으면 오르고, 밥을 먹으면 내려간다.” 법률상으로는 사업주라지만 실제로는 비정규직 노동자에 지나지 않는 자차 배송기사의 열악한 상황을 작가는 간결하게 요약한다. 여성 커플의 약혼식에 대리 가족으로 참석하기, 맏며느리를 대신해서 시어머니에게 제사 참석 거부 의사 통보하기 등 ‘헬프 미 시스터’의 업무는 때로 유쾌하고 통쾌하기까지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불안정 긱 노동의 본질이 바뀌는 것은 아니다. “그들은 리어카 대신 앱으로, 폐지 대신 일거리를 주울 것이다. 그런 식으로 새로운 계층의 빈곤 노인이 탄생할 것이다. 그들은 폐지 줍는 노인이 아니라 플랫폼 노동하는 노인으로 불릴 것이다. 가난은 그대로인데 형태가 바뀔 뿐이다.” 소설은 주인공인 수경은 물론 그 남편인 우재, 부모인 여숙 씨와 양천식 씨, 조카인 준후와 그 여자친구 은지 등 다양한 인물의 시점을 동원해 사태를 다각도로 바라보게 한다. 이 가운데 여대생 보라의 존재가 특히 든든하다. 그는 수경이 피해를 입고도 그에 대해 강력한 대응을 하지 않은 것을 제 일처럼 안타까워하며 “우리가 노력하면 세상을 바꿀 수 있어”라고 수경을 다그친다. 그 때문에 수경과 보라는 한동안 사이가 틀어지기도 하지만, 수경은 결국 보라의 진심을 이해하게 된다. “어쩌면 그 사건으로 가장 큰 상처를 받은 사람은 보라일 수도 있다. (…) 그들은 모두 이어져 있다. 총체적 가해의 형태를 이해하는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소설은 여러모로 힘겨운 상황에 놓인 이들의 이야기를 들려주지만, 그 어조는 그다지 어둡거나 비관적이지 않다. 그것은 주요 인물들이 대부분 긍정적이고 낙천적인 성격의 소유자이며 서로에 대한 신뢰와 사랑이 크기 때문으로 보인다. 책 말미에서 여섯 식구가 평수와 방 개수는 늘었지만 지상이 아닌 반지하 셋집으로 이사 가기로 하면서 “그들 모두 이렇게 한마음으로 함께 있다는 것이 기적”이라고 안도하는 데에서 소설의 기조를 엿볼 수 있다. 물론 이 이야기는 결코 해피엔딩이 아니고 이들 앞에 어떤 고난과 시험이 도사리고 있을지는 알 수 없지만, 그럼에도 독자가 조금이나마 마음을 놓을 수 있는 것은 보라의 이런 마음을 믿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이곳이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는 사회인지 그것부터 생각해. 매일매일 생각해.” 최재봉 선임기자 b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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