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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석 지음 l 자음과모음(2021) 소설집 < 다른 세계에서도 > 의 수록 단편 ‘부태복’의 화자는 소도시인 케이( K) 시의 시립의료원에서 일하는 내과의사이다 . 근무하던 의사들이 더 나은 조건을 찾아 인근 광역시로 떠나는 바람에 일손이 부족해진 의료원에 어느날 새로운 의사가 오고 , 화자는 이 의사가 북한에서 건너왔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 원래 전문 자격증은 국가 간에 상호 배타적이라 과정을 다시 밟지 않으면 이전 체류국에서 획득했던 자격을 인정해주지 않는데 , 새로 온 의사 ‘ 부태복 ’ 은 정부에서 한시적으로 북한 출신 인력에게 의사면허를 교부해주었던 기간에 면허를 따서 한국에서도 의사로 일할 수 있게 된 케이스다 . 화자는 자신을 “ 작은 소도시에서 자라 자력으로 국립대 의대에 들어갔지만 , 힘 있는 부모를 두지 못한 탓에 규모 있는 대학병원에 들어가지 못하고 중소병원에서 일하고 있는 비주류 의사 ” 라고 반추한다 . 반면 새롭게 동료로 맞은 부태복은 북한에서 가장 출신성분이 좋은 부모를 둔 엘리트 출신으로 , 틈만 나면 자신이 북한에서 얼마나 ‘ 잘 나가는 ’ 인사였는지를 떠벌인다 . 그는 현대화되지 못하고 첨단기기가 부족했던 북한의 병원에서 시스템보다는 직감으로 환자를 진료했던 경험을 바탕으로 문진과 진찰에서 발군의 실력을 드러낸다 . 그런 부태복을 보며 화자는 상반되는 감정을 느낀다 . 문진과 진찰만으로 어려운 질병을 진단해내는 부태복의 실력에 감탄하면서도 , 한편으로는 직감만 믿고 시스템이 정한 사안을 건너뛸 수 없다고 생각하며 경계하는 것이다 . 단 한 번 환자의 발병원인을 진단하는 데 실패한 것 외에는 내내 뛰어난 실력을 보여온 부태복은 어느 날 화자가 담당한 어린 환자를 놓고 화자와 다른 소견을 보인다 . 폐에서 부글부글 끓는 소리가 나는 어린 환자를 급성 감염병 환자라고 주장한 것이다 . 결국 부태복의 주장으로 환자의 담당의가 화자에서 부태복으로 바뀌고 , 부태복은 방호복 차림으로 전염병 환자에게 해야 할 처치를 단행한다 . 그 일로 , 부태복은 병원에서 쫓겨나게 된다 . 어린 환자에게 비용을 부담해줄 보호자가 없었던 점 , 정치권에 줄을 대고 원장 자리를 노리던 과장의 심기를 거스른 점 등 , 복잡하게 얽힌 상황에서 부태복이 병원에서 떨구어져나가는 걸 지켜보는 화자의 마음은 편치 않다 . 부태복이 떠난 뒤 , 음압병실에서 중환자실로 돌아온 어린 환자를 돌보고 있는 화자에게 문자가 들어온다 . 질병관리본부에서 보내온 것으로 , 화자의 눈앞에 누운 어린 환자가 신종 급성 감염병에 걸렸음을 확인해주는 경고문자이다 . 이 소설에는 의사가 아니면 알기 힘든 사안들이 생생하게 담겨 있다 . 직감과 시스템 사이에서 빠르게 결단을 내려야 하는 의사들의 딜레마 , 하루아침에 거주지를 바꾸어야 했던 북한 출신 엘리트 의사와 안정된 체제에서 살아오며 스스로를 ‘ 비주류 의사 ’ 로 인식하는 남한 의사 간의 미묘한 갈등 , 의료 현장에 복병처럼 숨어 있는 감염병의 존재 , 생과 사가 오가는 기로에 서서 기억과 분투해야 하는 의사들의 숙명 . 나열한 요소들만으로도 이미 흥미를 잡아끄는 이 압축적인 소설이 전지구가 코비드( COVID)-19 라는 바이러스에 뒤덮이기 이전에 나왔다는 사실도 눈여겨볼 지점이다 .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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