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속의 삶, 역사가 된 삶
리처드 J. 에번스 지음, 박원용·이재만 옮김 l 책과함께 l 4만3000원 전체 975쪽. 미주와 찾아보기를 빼면 본문만 800쪽이 훌쩍 넘는 <에릭 홉스봄 평전>은, 그러나 그리 두껍다고 할 수 없다. 이 역사학자의 삶이 곧 20세기 역사 그 자체였다는 점에서 말이다. 1917년 이집트에서 태어난 에릭 홉스봄은 오스트리아 빈에서 자라다 부모를 여읜 뒤 독일 베를린을 거쳐 영국 런던으로 이주한다. 대공황과 파시즘을 경험했고 공산당 운동에 참여했으며 스탈린을 맹비난하고 영국 노동당의 좌경화를 비판하는 한편 혁명기 남미를 방문했고 토니 블레어의 ‘제3의 길’을 초기에는 호의적으로 봤지만 신자유주의 노선이 강화되자 강력히 비판했다. 또한 현실사회주의의 몰락과 9·11 테러, 세계 금융위기 등을 목격하고 2012년 95살로 타계한다. 무엇보다, 프랑스 혁명이 일어난 1789년부터 1914년 1차 세계대전 발발로 막을 내리는 ‘장기 19세기’를 다룬 <혁명의 시대>(1962) <자본의 시대>(1975) <제국의 시대>(1987) 3부작과 1914년부터 소련이 붕괴하는 1991년까지를 뜻하는 ‘단기 20세기’를 설정한 <극단의 시대>(1994) 등 홉스봄의 방대한 저작이 나오게 된 배경이 <에릭 홉스봄 평전>에 상세히 서술돼 있다. 아울러 세계적 역사학자로서뿐 아니라 인간으로서의 ‘진짜 모습’을 만나볼 수 있는 것이 평전의 참맛일 터. 이를테면, 홉스봄은 1963~64년 두 아이가 태어나자 동료 학자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이 책은 전한다. “이제 나는 두 자녀를 둔 유부남이고, 이로 인해 아주 놀랄 정도로 생산성이 떨어지고 있습니다. 나는 한밤중에 아내와 교대로 아기를 먹이는 일 등등을 할 필요가 없었던 빅토리아 시대 남편들의 안락함을 꿈꾸곤 합니다.” 홉스봄은 말년에 “공인된 전기작가가 작업을 끝마칠 때까지 (자신의 미공개) 문서에 대한 모든 학자의 접근을 차단”하겠다고 밝혔다. 그렇기에 이 기록자료를 바탕으로 집필되어 2019년 출간된 <에릭 홉스봄 평전>은 최초로 공인된 홉스봄 전기인 셈이다. 영국 학술원 제안을 받아 런던 그레셤칼리지 학장인 저자가 썼는데, 이 책에 소개된 자료 중 상당 부분은 지금까지 발표되지 않은 것들이다. 번역 역시 박원용 부경대 사학과 교수와 역사를 전공한 이재만 번역가가 힘을 모았다. 지금껏 출간된 홉스봄 저작 일부가 몸살을 앓아온 ‘오역’으로부터 이 책이 자유로우리라고 기대하는 까닭이다. 김진철 기자 nowher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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