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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어두운 저택의 비밀, 고딕 스릴러의 으스스한 매력

등록 2022-02-25 04:59수정 2022-02-25 09:59

[한겨레BOOK] 박현주의 장르문학읽기

회색 여인
엘리자베스 개스켈 지음, 이리나 옮김 l 휴머니스트(2022)

말로 사건을 재구성하는 스토리텔링 쇼가 인기이다. 누군가 직접 경험한 양 조곤조곤 전달해줄 때 사실성은 배가된다. <문화방송>(MBC)에서 방영하는 <심야괴담회>에서처럼 현실과 환상이 구분되지 않는 기이한 사연이라면 특히 더 힘을 얻는다. 여러분은 믿지 않으시겠지만, 내가 겪은 사실이니까요, 라는 말이 사연을 듣기 전에 이미 기묘한 전율을 준다.

고딕 호러 픽션은 대체로 이런 스토리텔링 형식을 취한다. 이 장르의 원류는 18세기에 시작되어 죽음과 초자연적인 힘, 그에 얽힌 사람들의 감정적 관계를 다루는 소설들이지만, 현재에는 일종의 서사 장르 양식으로 고착되었다. 유서 깊은 가문의 몰락한 후손이 살아가는 쓸쓸한 저택, 조상의 기담이 스민 기괴한 초상화, 울음소리와 희뿌연 그림자, 알 수 없는 얼룩 같은 심령 현상, 그리고 이를 후일담으로 전달하는 생존자들이 고딕 호러를 구성하는 요소이다.

휴머니스트 출판사에서 발간한 세계문학 시즌1은 고딕 호러를 현재에 되살리는 기획이다. 여성과 공포라는 테마 아래 여성 작가가 쓴 다섯 권의 고전 작품집이 이에 속한다. 메리 셸리, 엘리자베스 개스켈, 이디스 워튼, 버넌 리, 도러시 매카들이 쓴 공포 소설 작품들이 수록되었다. 여성 작가들이 포착하고자 했던 당대의 사회적 억압이 공포라는 정서로 환원된다.

그중에서도 엘리자베스 개스켈의 <회색 여인>에 수록된 동명의 단편은 스릴러적 플롯이 돋보인다. 작가 본인으로 추정되는 영국 출신의 화자는 여행 중 독일 가정에서 아름다운 여성의 초상화를 발견하고 그림의 주인공인 여성이 딸에게 보내는 편지를 보게 된다. 편지를 쓴 사람은 독일의 제분소 주인의 딸인 아나이다. 그는 원치 않는 결혼을 피하려다 자기 뜻과 다르게 므시외 드 라 투렐이라는 프랑스 신사와 결혼하여 보주산맥에 있는 남편의 성으로 간다. 가스라이팅의 전형인 결혼 생활 중, 푸른 수염을 연상하게 하는 사건이 일어나고, 아나는 40대의 하녀 아망테의 도움을 받아 성을 탈출한다. 금발을 감추려 잿빛으로 물들이고 얼굴도 검게 칠한 아나와 남장한 아망테는 부부로 가장하고 투렐의 추적에서 도망친다.

엘리자베스 개스켈은 <남과 북>에서는 산업화 시대 여성의 각성을 다루었고, <크랜퍼드>에서는 작은 공동체 내의 다양한 인물 군상을 풍자적 스케치로 그려냈다. 그의 소설에 등장하는 결혼 바깥의 여성 인물들은 특히 인상적이다. 1861년 출간된 <회색 여인>은 경험담 서사, 외딴 성의 죽음이라는 고딕적 모티브를 잘 살려낸 동시에, 억압적 제도로부터 탈출하는 것이 미스터리의 해결인 현대적 가정 스릴러의 원형을 보여준다.

여성과 공포, 이 두 단어는 으스스하면서도 익숙한 병치를 이룬다. 공포는 단순히 초자연적인 힘에 대한 두려움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가장 일상적이고 가까운 곳에서 일어나는 위협, 거기서 발생한 무력함이 여성들을 사로잡는다. 과거의 여성 소설가들이 전하는 이야기에서 이런 익숙한 감정을 발견할 때 지금도 여성의 삶을 휩싼 공포는 여전하다는 씁쓸한 사실을 새삼 인식한다. 그렇지만 동시에 과거와 현재를 잇는 연대감도 함께 피어난다. 외딴 성의 어둠에 갇혔을 때도, 우리는 혼자가 아니었다. 작가, 번역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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