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BOOK]
색소 과자 냄새가 섞인, 종일 적당한 빛, 잔디를 깔아놓은 마당 마루에 가만히 앉아 있어 여기 있으면 아무것도 서운한 게 없지 감자를 삶기로 해 아직 마음으로만, 소쿠리에 천리향을 꺼내 쪼개놓고 조금 있다가 먹기로 하지, 역시 생각으로만, 담요를 펼치면 잔잔히 여름 바다의 냄새, 지중해산 목욕 소금 알갱이처럼 모래 입자가 묻어 나오는 시간이구나 마루 끝에는 기와지붕에서 떨어지는 또 다른 빛을 지나 사슴 패치워크 원단을 따라 바람, 살랑이는 바람, 나는 마루에 기대 발을 노닥이며 빨랫줄에 매달아놓은, 말라가는 단화를 바라보기도 하지 허브 화분들이 흔들리고 작은 시약병에 담긴 가을빛을 마개로 눌러 담아 차곡차곡 진열해보는 시간, 주인은 돌아오지 않고 이 작은 마당의 오후가 곱게 부풀도록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는 시간.
-박상수 시집 <너를 혼잣말로 두지 않을게>(현대문학)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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