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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찍으며 기다리는 즐거움 좋아 고1부터 카메라 들었죠”

등록 2022-02-22 19:11수정 2022-02-23 02:00

[짬] 사진가 박옥수씨

“제가 그동안 찍은 사진을 보니 사진은 사람이더군요. 풍경 사진에도 사람이 있어요. 숨 쉬는 사진을 찍어야 한다는 것을 그때는 자각하지 못했을 뿐이죠.” 박옥수 사진가는 지난 17년 동안 주말마다 명동성당에서 결혼식을 마치고 나온 신랑·신부와 하객을 찍고 있다고 했다. “2003년 옛 필름 정리를 하다 1974년 명동성당에서 찍은 결혼식 가족 사진을 보고 같은 구도의 사진을 찍고 있어요. 결혼식 가족 사진은 거의 4대가 나오고 외국인 등 사람들도 다양해요. 옛 사진이 저한테 사진 작업 테마를 준 거죠.”                                                 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제가 그동안 찍은 사진을 보니 사진은 사람이더군요. 풍경 사진에도 사람이 있어요. 숨 쉬는 사진을 찍어야 한다는 것을 그때는 자각하지 못했을 뿐이죠.” 박옥수 사진가는 지난 17년 동안 주말마다 명동성당에서 결혼식을 마치고 나온 신랑·신부와 하객을 찍고 있다고 했다. “2003년 옛 필름 정리를 하다 1974년 명동성당에서 찍은 결혼식 가족 사진을 보고 같은 구도의 사진을 찍고 있어요. 결혼식 가족 사진은 거의 4대가 나오고 외국인 등 사람들도 다양해요. 옛 사진이 저한테 사진 작업 테마를 준 거죠.” 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까까머리 고교생이 (광주에서) 알아주는 광주일고 교복을 입고 사진을 찍으니 다들 저를 이뻐했죠. <전남일보> 사진부장 등 사진을 전문으로 하던 분들도 ‘어, 학생이 사진 좀 찍을 줄 아네’ 하면서 하나라도 더 알려주려고 했어요.”

최근 1965~1980년 흑백 사진을 모아 사진집 <시간여행>(눈빛)을 낸 박옥수 사진가는 고1인 1964년부터 형님의 일제 카메라로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고교 시절 형님이 구독하던 일본 잡지 <마이니치 카메라>를 보고 흉내 낸 사진으로 수차례 사진 공모전에 입상해 광주의 ‘학생 사진가’로도 불렸단다.

한양대 신문학과를 나와 인물 사진 대가인 고 문선호 사진가에게 배운 뒤 광고 사진으로 전향한 그는 82년부터 35년 동안 서울 충무로에서 광고전문 사진 스튜디오를 운영했다. 현대자동차 홍보실에 있던 78년에는 한국 1호 고유 자동차 모델인 ‘포니’의 첫 국외 배경 광고 사진도 찍었다.

지난 15일 서울 공덕동 한겨레신문사에서 작가를 만났다. 그는 오는 5월 4~10일 서울 인사아트프라자에서 이번 사진집 사진으로 생애 두 번째 개인전 <시간여행>을 연다.

<시간여행> 표지
<시간여행> 표지
1965년 고2 때 광주 사직공원 출사 중 카메라 렌즈에 잡힌 ‘학생 사진가’ 박옥수.                                            박옥수 작가 제공
1965년 고2 때 광주 사직공원 출사 중 카메라 렌즈에 잡힌 ‘학생 사진가’ 박옥수. 박옥수 작가 제공
눈빛 출판사 이규상 대표는 ‘박옥수 사진에서 1960~70년대의 산업사회로 진입하는 한국사회의 모습을 볼 수 있다’고 <시간여행>에 썼다. 실제 책에 실린 180매 사진에서 독자들은 관 주도 경제개발을 밀어붙이던 박정희 시대를 살아낸 사람들의 다양한 표정을 시장과 공사판, 거리에서 만날 수 있다. 1970년 서울 서대문 영천 시장에서 만나는 피곤함에 지친 상인들의 환한 미소나 서울 광화문 지하도 입구에서 가판 신문을 들고 행인을 날카롭게 응시하는 55년 전 소년의 표정은 세상이 아무리 험해도 당당히 건너는 힘의 근원을 말하는 듯하다. 만화책 두 권을 두고 아이들 다섯이 목을 빼거나, 신문지에 구멍을 내어 학생 둘이 목에 끼고 누가 찢어지지 않게 힘을 줄 수 있는지 게임을 하는 광경은 요즘은 찾기 힘든 옛 추억이다. 서울 만리동 넝마주이들이 낮잠을 즐기거나 서울 창경원에서 젊은이들이 현란하게 댄스를 하는 모습도 세월의 변화를 절감하게 한다.

1970년 서울 서대문영천시장.   박옥수 작가 제공
1970년 서울 서대문영천시장. 박옥수 작가 제공
1971년 4월 투표를 마치고 나오다 기자와 인터뷰 중인 신민당 김대중 대통령 후보 부부.  박옥수 작가 제공
1971년 4월 투표를 마치고 나오다 기자와 인터뷰 중인 신민당 김대중 대통령 후보 부부. 박옥수 작가 제공
1971년 서울 경복궁.                     박옥수 작가 제공
1971년 서울 경복궁. 박옥수 작가 제공
71년 4월 김대중 대통령 후보의 장충단 공원 유세나 80년 5월 서울역 앞 대규모 시위 등 한국 현대사의 결정적인 순간을 포착한 사진도 있다. 그가 급하게 당구장 2층에 올라 찍었다는 김대중 후보의 유세 직후 가두 행진 사진을 보니 유세장에서 동대문 쪽 도로가 인산인해다. 장기영 당시 <한국일보> 사장이 소형 망원경으로 김대중 후보 연설 장면을 지켜보는 사진도 흥미롭다. “대학을 졸업하고 군대 가기 5개월 전 장충단 공원 유세가 있었어요. 그때 분위기는 김대중 출마로 세상이 바뀌는 것 같았어요. 그래서 박정희 후보의 한강 백사장 유세는 가지 않고 장충단 공원에 갔죠. 기자들은 주로 장충단 연단에서 사진을 찍어 가두행진 사진은 드물어요. 제가 김 후보 자택과 가까운 신촌에서 살아 투표를 마친 뒤 김 후보 모습도 승용차 바로 건너편에서 찍을 수 있었죠. 당시 <동아일보> 김대중 전담 사진기자 김용택씨가 광주 후배라고 저를 이뻐해 도움을 많이 받았어요.”

1970년 서울 국군의 날 시청앞.            박옥수 작가 제공
1970년 서울 국군의 날 시청앞. 박옥수 작가 제공
80년 5월 서울역 앞 시위 사진은 운이 작용했단다. “스튜디오 개설을 준비하다 마침 현 세브란스 병원 자리에 있던 현대자동차 남대문영업소에 약속이 있어 갔는데 시위가 있더군요. 건물에서 가장 높은 10층 비상계단에 올라 찍었죠. 행사 사진은 늘 가장 높은 곳을 찾아 찍어요. 그래야 사진이 힘이 있죠.”

1964년 광주일고 들어가 사진 시작
수차례 공모전 수상 ‘학생 사진가’
65~80년 촬영 180매 묶어 사진집
‘산업사회 진입 한국 사회의 모습’
“여군의장대 앞장 사진 기록적 의미”

서울 뚝섬 사진도 묶어 곧 발간

중학생까지 화가를 꿈꿨던 그는 고교 진학 뒤 바로 미술에서 사진으로 돌아섰다. “광주일고 미술반 선생님이 그때 광주의 다른 학교 교장 선생님이었던 아버지와 잘 아는 분이셨어요. 그 때문에 미술반 활동이 꺼려지더군요.”

고교생 박옥수에게 사진의 큰 매력은 ‘기다리는 즐거움’이었단다. “겨우 스무 장 필름 한 통으로 사진을 찍던 시절이었어요. 사진을 찍거나 현상할 때 기대감을 가지고 기다렸죠. 그게 좋았어요. 물론 실망도 많이 했죠.” 사진집에는 그가 고교생 때 목포 유달산이나 홍도에서 열린 촬영대회에 나가 찍은 사진도 있다. “멋쟁이 모델을 초빙해 전국 사진가들이 모여 상견례를 하는 행사였죠. 홍도에서 한 1박2일 대회는 해군 군함까지 동원되고 사진가 가족까지 모두 4백여 명이 왔죠. 이 행사를 주관한 목포 사진단체는 참석자 식대 부담으로 파산 지경에 이르기도 했죠.”

고교생이 어른들과 어울려 사진을 찍으며 어려움은 없었냐고 하자 그는 이렇게 답했다. “다들 저를 이뻐했어요. 제가 처음 사진을 배운 사진 전문점 사장님 등과 주말이면 미군 군무원 사진가가 모는 지프를 타고 촬영을 다녔어요. 그분들한테 배운 게 지나보니 피와 살이 되었죠.” 어떤 가르침일까. “피사체가 가는 방향으로 여유를 둬라, 공간을 채울 수 있는 기다림이 필요하다, 눈을 질끈 감고 사진을 찍으면 바보다, 같은 거죠.”

사진집 사진 중 기록으로 의미가 큰 사진을 꼽아달라고 하자 그는 69년 국군의 날 퍼레이드 장면을 들었다. “여군 의장대가 가장 앞에 있어요. 그 뒤에 제병지휘부 그리고 남자 군악대가 뒤따릅니다. 이런 모습의 사진을 지금껏 본 기억이 없어요. 여군을 꽃으로 봤던 그 시절 시각을 잘 보여주죠. 이전 퍼레이드에서는 여군이 육해공과 해병대 다음이었어요.”

80년대 중반부터 몇 년 도올 김용옥 사진도 전담해 찍은 그는 요즘은 그동안 찍은 사진 정리에 시간을 많이 쓴단다. “대학 때 주로 찍은 뚝섬 사진집이 두 달 뒤 나옵니다. 검정 배경으로 복식을 갖춘 광대나 무당 사진도 많이 찍었는데요. 인물 사진으로 정리해야죠.” 그가 80년대 중반부터 민속학자 심우성(1934~2018) 선생을 만나 찍기 시작한 탈 사진은 최근 <우리나라 탈>(한국민속극박물관 발간)이라는 이름으로 나왔다. “심 선생이 탈을 제품 사진처럼 찍어달라고 하셨죠. 그 후에도 어디서 큰 굿이 있으면 같이 가자는 심 선생 제안에 거절하지 않고 늘 동행했죠.”

박옥수 작가가 15일 오전 서울 마포구 공덕동 한겨레신문사에서 인터뷰하고 있다.                       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박옥수 작가가 15일 오전 서울 마포구 공덕동 한겨레신문사에서 인터뷰하고 있다. 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사진가 시선에서 반세기 전과 지금 가장 크게 달라진 게 뭐냐고 하자 그는 “사람들의 카메라에 대한 의식”이라고 했다. “전에는 지하철에서도 사진을 많이 찍었어요. 엄청 다양한 군상의 모습이 보였거든요. 요즘은 카메라 자체를 사람들에게 대지 못해요. 오죽하면 <다큐 3일>(한국방송) 제작팀이 지나간 곳에서나 카메라를 들이댈 수 있다는 말이 있겠어요. 과거 시장 사진에는 상인들의 환한 표정이 많아요. 요즘은 촬영에 대한 거부감으로 화를 내거나 짜증 섞인 표정이 많아요.”

강성만 선임기자 sungm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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