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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되기, 유흥업소, 아가씨노동
황유나 지음 l 오월의봄 l 1만6000원 “네, 거긴 정-말 손님이 왕이에요.” 소비자의 갑질이 사회문제로 비화하고 이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는 요즘, 어쩌면 유일하게 거리낌없이, 오히려 부추김 속에서 왕 또는 주인 흉내를 낼 수 있는 ‘거기’는 어디일까. 유흥업소 종사자의 인터뷰에 등장하는 ’거기’는 다름아닌 유흥업소의 ‘룸’이다. <남자들의 방>은 여기에서 지어진 제목이다. 하지만 이 남자들의 방은 여성의 존재 없이 성립할 수 없다. 이들이 왕이나 주인으로서 갑질을 할 수 있는 대상은 바로 ‘아가씨’라고 불리는 여성들이어서다. 저자가 성매매 등 행위가 아닌 ‘방’에 주목하는 것은 방이라는 프레임 안에서 성을 착취하는 게 남성들의 놀이문화로 통용되고, 이를 통해 여성 멸시와 혐오를 내면화하는 게 한국사회에서 ‘남자-되기’의 과정으로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여성 멸시와 혐오의 유희는 비단 ‘유흥’ 종사자들에게만 적용되는 게 아니다. 이른바 ‘버닝썬’ 사태로 드러난 클럽의 현실도 크게 다르지 않다. 여성 게스트의 ‘여자다운’ 외모와 꾸밈은 클럽 입장의 조건이 되고 플로어 게스트로 입장했다면 술값에 많은 돈을 지불한 테이블 게스트들이 여성을 대상으로 ‘인형뽑기’를 할 수 있다는 규칙을 따라야 한다. 인형으로 뽑히지 않더라도 “여성 게스트는 클럽 내부에 존재하는 것만으로 클럽의 수익을 만들어내는 상품으로 기능한다.” 저자는 회사 등 공적영역에서는 사실상 퇴출된 ‘아가씨’라는 표현이 유흥업소에서는 소비자뿐 아니라 종사자에게도 선호된다는 점에 착안해 ‘아가씨 노동’이라는 개념을 제시한다. 아가씨 노동은 술을 따르고 담뱃불을 붙여줄 뿐 아니라 대화를 통해 별볼일 없는 남자도 대단한 양 추켜올리고 때로는 ‘썸타는 감정’까지 다정하게 연출해야 하며 노골적인 성추행도 적당히 받아주거나 요령껏 피해야 한다. 고도의 돌봄노동이자 감정노동이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폭력 등의 불상사에서 업주도 경찰도 이들을 보호하지 않는다. 여성의 인권은 ‘남자들의 방’ 밖에서만 존재하기 때문이다. 남자들의 방은 특수하고 고립된 장소가 아니라 한국사회의 일상으로 작동하고 있다. 거침없이 여성을 희롱하고 능욕할 수 있는 온라인상의 단톡방과, 엔(n)번방, ‘벗방’ 등 역시 확장된 남자들의 방이다. 그렇기 때문에 해결책도 간단하게 나오기 쉽지 않다. 저자는 다양한 자리에서 여성들이 목소리를 내고 낙인과 혐오에 맞서 같이 싸우는 실천이 남자들의 방을 무너뜨릴 수 있는 힘이라고 말한다. 김은형 기자 dmsgu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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