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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정책’과 ‘시민’ 안 보이는 한국 정치 보도

등록 2022-02-04 05:00수정 2022-02-04 09:51

정치인 의존도 높고 취재원 다양성 부족해
정책 기사보다 갈등 중심 정무 기사 위주
“시민 관심사, 정책으로 입안되도록 역할해야”
지난달 21일 서울 조계사에서 열린 ‘종교편향 불교왜곡 근절과 한국불교 자주권 수호를 위한 전국승려대회’ 뒤 송영길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전통 사찰에 대한 문화재 관람료 징수를 ‘봉이 김선달’에 비유한 정청래 민주당 의원의 발언 등과 관련하여 취재진 앞에서 사과문을 읽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달 21일 서울 조계사에서 열린 ‘종교편향 불교왜곡 근절과 한국불교 자주권 수호를 위한 전국승려대회’ 뒤 송영길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전통 사찰에 대한 문화재 관람료 징수를 ‘봉이 김선달’에 비유한 정청래 민주당 의원의 발언 등과 관련하여 취재진 앞에서 사과문을 읽고 있다. 연합뉴스

한국의 정치 보도
좋은 저널리즘 연구회 기획, 김준형 등 10명 지음 l 이화여자대학교출판문화원 l 3만원

민주주의 사회에서 언론의 가치는 민주주의 증진에 얼마나 기여하느냐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언론의 핵심 역할은 권력을 감시·비판하고 시민사회가 공론장을 형성할 수 있도록 적절하고 충분한 정보를 제공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한국의 정치 기사들은 이런 기준에 비춰 얼마나 충실하게 역할을 수행하고 있을까? <한국의 정치 보도>는 언론학자, 언론인 들이 한국 정치 기사와 정치 보도 현장을 다각도로 연구·분석하며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을 시도한다.

‘한국의 정치 뉴스 현황: 대통령·국회 보도 내용 분석을 중심으로’(김지현 연세대 커뮤니케이션연구소 전문연구원 등)는 2019년 9월1일~2020년 8월31일 보도된 국내 6개 신문사(<경향신문> <동아일보> <조선일보> <중앙일보> <한겨레> <한국일보>)의 정치 기사 973건과 미국 <뉴욕 타임스>의 정치 기사 113건을 비교 분석해 한국 정치 보도의 특징을 규명하려는 연구다.

한국 정치 기사의 두드러진 특징 중 하나는 정치인 취재원에 대한 과도한 의존이었다. 일단 취재원 수(3.55건)가 <뉴욕 타임스>(7.60건)의 절반 정도였고, 이 중에서도 비정치인 취재원 비중은 더 낮았다. <뉴욕 타임스>는 기사 1건당 평균 4.17(전체 취재원의 54.8%)개의 비정치인 취재원을 포함했지만, 국내 기사는 평균 0.77개(21.6%)에 그쳤다. 또한 사안에 대해 다양한 견해와 주장을 담고 있는지를 ‘복합 관점’, ‘대체로 단일 관점’, ‘완전히 단일 관점’으로 분류해보니, 국내 기사는 ‘복합 관점’이 29.9%에 그친 반면 <뉴욕 타임스>는 48.7%에 달했다. 이외에도 국내 기사는 <뉴욕 타임스>에 비해 익명취재원 비율이 높고, 기사 길이가 짧으며, ‘분석·해설 기사’ 비중이 사실정보 위주의 ‘객관 기사’보다 낮았다.

빈약한 정책 보도도 문제로 지적됐다. ‘정치 없는 정치 보도: 한·미 신문의 입법부 보도 비교 연구’(문영은 언론중재위원회 해외통신원)는 2019년 1월1일~12월31일 보도된 <조선일보>와 <뉴욕 타임스>의 입법부 보도 기사 각각 95건과 22건을 비교했다. 분석 결과, <뉴욕 타임스> 정치면이 행정부 감시 기능을 토대로 법안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각 기관의 각축전, 법안의 실효성과 영향력에 대한 해석 등이 중심인 반면 한국 보도는 정당 계파 싸움이나 정치인의 사적 행보를 기록하는 데 치중하고 있고, “맥락과 법안이 사라진 기사” 위주였다.

‘디지털 시대의 정치 기사 취재 관행’(김창숙 이화여대 커뮤니케이션미디어연구소 연구교수)은 실제 현장에서 한국 정치부 기자들이 어떤 방식으로 취재하고 기사를 생산하는지 들여다본 작업이다. 2020년 11~12월 <경향신문> <동아일보> <조선일보> <중앙일보> <한겨레> <한국일보>의 정치부 소속 국회 출입기자 6명을 심층 인터뷰했다.

우선 취재 대상은 ‘정무’와의 관련성을 핵심 기준으로 삼아 극히 일부 정치인으로 제한됐다. 국회 출입기자들이 꼽은 주요 취재원은 전체 국회의원 중 10% 정도인 당 대표, 원내대표 등 당 지도부 20~30여 명이었다. 나머지 국회의원, 정책 관련 이해관계자, 전문가, 시민 등은 거의 취재되지 않고 있다. 온라인을 통한 취재가 일반화한 점도 눈에 띈다. 대부분 취재가 전화, 카카오톡·텔레그램을 이용한 채팅, 단체 채팅방을 통한 정보 공유, 인터넷과 에스엔에스 검색, 텔레비전 중계방송 등을 통해 이뤄진다. 또한 국회 보도는 사실 확인이 부족한 경향을 보였다. 에스엔에스에 올려진 정치인의 글을 별도 검증 없이 기사화하는 것이 대표적이다. 정치인 발언의 파급력이 큰데다, 포털에 빨리 올려야 더 많이 읽히기 때문에 사실 확인이나 좀 더 종합적인 보도를 위한 취재가 생략되는 것이다.

이런 방식으로 취재한 기사는 어떤 특성을 가지고 있을까? 정무 중심으로 취재원이 제한되다 보니 기사 역시 이들의 발언을 중심으로 한 정무 기사가 주로 생산된다. 특히 공격적인 발언 중심의, 갈등구조가 선명한 기사가 주가 된다. “대립각을 세워야 주목도가 높아지니까. 여야가 됐든, 당내가 됐든 간에 합의 지점이 있는데, 이 합의 지점을 일부러 안 보고 양극단이 대립하는 걸로만 기사를 작성해 갈등을 부추기는…”(한 기자). 다른 기자는 “그런 기사(정책 기사) 허구한 날 열심히 써봤자 중요해도 사람들이 안 봐요”라고 말한다. 또한 한 사건의 맥락과 의미를 종합적으로 설명하는 기사보다, 특정 이슈와 관련된 사실을 단편적으로 다루거나 정치인 발언을 중계하는 비슷한 기사가 대량생산되고 있다.

이런 현실은 주요 정치인 중심의 한국 정치, 뉴스메이커를 쫓는 방식의 취재 관행, 온라인 뉴스 유통 시스템으로 인한 트래픽 경쟁 등에서 야기된 것으로 분석된다. 논문은 인터뷰한 모든 기자들이 “긴 호흡의 기사, 정책 중심의 심도 있는 기사, 맥락이 포함된 기사, 그리고 한 이슈에 대해 정치권과 부처, 시민의 의견을 종합적으로 다룬 기사를 쓰고 싶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하지만 “매일 기사를 양산해야 하는 ‘하루살이’ 삶, 기사의 효용 가치와 영향력이 피브이(PV·온라인에서 읽힌 횟수) 숫자로 표현되는 현실”이 이를 가로막고 있다고 덧붙였다.

논문은 이에 따라 현재 한국 정치 뉴스가 “정치를 ‘그들만의 리그’로 만들면서 시민을 정치에서 소외되게 만들고 정치에 대한 냉소를 확산하며 언론과 정치에 대한 신뢰를 모두 파괴하는 방식으로 작동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재경 이화여대 커뮤니케이션·미디어학부 교수는 마무리글에서 “정치인 혹은 정당의 눈이 아니라 시민의 시선으로 접근하는 기사가 주류가 돼야 한다”며 “시민의 관심사와 의견을 정치가 인식하고 수용해서 정책으로 입안되도록 하는 역할을 정치 보도가 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안선희 기자 sh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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