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문화 책&생각

후끈 파고든 쇠와 고무, 나무 냄새

등록 2022-02-04 04:59수정 2022-02-04 10:37

뭐든지 가뿐하게 드는 여자
정연진 지음 l 달 l 1만4500원

운동회 날이면 ‘열외’를 자처하던 아이가 있었다. 장래희망은 피아니스트. 손이 곧 재산이기에 함부로 들고, 메달리고, 뜀박질 할 수 없었다. 그로부터 20여년 후, 마흔 중반에 접어든 그는 건반을 내리치는 대신 바벨을 들어 올렸다. 그렇게 애지중지했던 섬섬옥수에 사정없이 ‘탄마’(탄산마그네슘, 미끄러움을 방지하기 위해 묻히는 흰 가루)를 바른 채로. <뭐든지 가뿐하게 드는 여자>는 그 거대한 인생의 전환을 ‘가뿐하지만 묵직하게’ 풀어낸 책이다.

지은이 정연진은 독일 유학까지 다녀왔지만 끝내 피아노의 길을 접고 만다. 대신 동시통역사라는 새 길을 간다. 여기 동행한 것이 바로 ‘역도’다. 한풀이 하듯 클라이밍, 크로스핏, 철인 3종 경기까지 섭렵한 지은이는 본능적으로 역도에 스며든다. “카랑카랑한 쇳소리, 문을 열고 들어섰을 때 후끈 파고들었던 쇠와 고무와 나무 냄새 (…) 앞으로 이 장소에 아주 오래 머무르게 될 거라는 예감이 들었다.”

고도의 집중력이 필요한 동시통역. 두뇌의 긴장을 푸는 데는 “뭔가 묵직한 게” 필요하다. 퇴근 뒤 곧장 체육관으로 간다. “클린으로 어깨에 올린 바벨을 깨끗하게 쭉 뻗는다. 쩍(zerk, 어깨에 놓인 바벨을 머리 위로 드는 동작)! 성공! (…) 오늘 실수했던 일을 자책하며 바벨 한 번 패대기.”

자신의 힘을 가늠하고, 스스로 몇 ㎏을 들지 정하고, 그 무게를 들어올린다. 최대한 애써보되, 안 되면 깨끗하게 “손절”하고 다음 시도를 준비한다. 지은이가 바벨을 대하는 원칙을 보고 있노라면, 어느 새 바벨처럼 인생도 가뿐하게 들어올릴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이 차오른다.

최윤아 기자 ah@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문화 많이 보는 기사

‘소방관’ 곽경택 감독 호소 “동생의 투표 불참, 나도 실망했다” 1.

‘소방관’ 곽경택 감독 호소 “동생의 투표 불참, 나도 실망했다”

신라왕실 연못서 나온 백자에 한글 ‘졔쥬’ ‘산디’…무슨 뜻 2.

신라왕실 연못서 나온 백자에 한글 ‘졔쥬’ ‘산디’…무슨 뜻

환갑의 데미 무어, 젊음과 아름다움을 폭력적으로 갈망하다 3.

환갑의 데미 무어, 젊음과 아름다움을 폭력적으로 갈망하다

“내가 정치인이냐? 내가 왜?”… 임영웅 소속사는 아직 침묵 중 4.

“내가 정치인이냐? 내가 왜?”… 임영웅 소속사는 아직 침묵 중

중립 기어 밟는 시대, 가수 이채연의 ‘소신’을 질투하다 5.

중립 기어 밟는 시대, 가수 이채연의 ‘소신’을 질투하다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