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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여린듯 강강 포근한듯 냉철…정신과전문의 정혜신의 통찰

등록 2006-02-16 17:01수정 2006-02-17 16:49

최성일/도서평론가
최성일/도서평론가
최성일의 찬찬히 읽기
삼색공감-사람, 관계, 세상에 관한 단상들/
정혜신 지음. 개마고원 펴냄

신문 스크랩이 취미라고 하면, 의아한 표정을 짓거나 측은한 눈길로 바라본다. 당연히 칼럼도 오린다. 그러나 건강을 생각하여 <한겨레>를 제외한 나머지 신문은 거의 안 본다. 칼럼은 더 그러한데 <한겨레> 칼럼조차 때로는 제목만 훑고 지나간다. 박노자와 정혜신의 글은 꼭 읽는다. 이제는 박노자 글의 결론이 얼추 짐작된다는 내 주변의 여론에 동의하지 않지만 그의 글이 좀 답답할 때가 있다. 그가 1970년대와 80년대 이 땅의 현실을 몸소 겪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쉽다. 하지만 옥에 티일 따름이다.

박노자처럼 칼럼니스트 정혜신은 독자에게 큰 축복이 아닐 수 없다. 정혜신의 글은 늘 새롭다. 그러면서도 낯설지 않다. 또 흔히 하는 말로 여린 듯 강강하다. 날카로우면서도 부드럽고 포근하면서도 냉철하다. 번번이 사안의 핵심을 찌르며 독자의 마음을 정화시킨다. <삼색공감>은 칼럼 모음이다. 눈에 익은 글이 더러 있으나 이마저 신선하다. 한꺼번에 읽어서일까?

따로따로 볼 적에는 미처 파악하지 못한 정혜신 칼럼의 특징 하나가 눈에 띈다. 정신의학적 접근이다. 그가 정신과 전문의라는 점을 감안하면 유별날 게 없다 할 수도 있지만 실제는 그렇지 않다. 심리학·정신과 용어를 가져와 쓰기는 하여도 거기에 파묻히지 않아서다. ‘지적 권위주의’의 흔적은 찾아볼 수도 없다. ‘심리적 객관화’, ‘자아팽창’, ‘절제의 과잉’, ‘중독’, ‘반동형성’, ‘양가감정’, ‘동조’, ‘자기 통제력’, ‘초현실적 권위’, ‘합일화’, ‘역공포반응’, ‘마술적 사고’ 등의 개념을, 정혜신은 단지 그가 다루는 시사 현안에 다가서는 매개로 사용한다. 정혜신은 쉬운 개념 풀이로 독자를 배려하는 것을 잊지 않는다. ‘본질적 신뢰’는 나 자신이 보호받는다는 무의식적 느낌쯤 된다. 개념은 독자를 피안에 닿게 하는 나룻배 구실을 한다. 이렇게 말이다. “장애인 문제에 관한 한 우리 사회는 집단적 정신분열증을 앓고 있는지도 모른다. ‘본질적 신뢰’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나는 정혜신의 주장에 공감한다. 서명숙의 <흡연여성 잔혹사>에 대한 독후감은 감탄을 자아낸다. 나 역시 “개인의 특별한 경험을 아주 쉽게 일반화해버리는 사람들이 미덥지 않다.” 가정폭력을 일삼은 아버지를 죽인 “아이에게 죄를 묻지 말라”는 그의 호소는 가슴이 찡하다. “한 인간이 감내할 수 있는 고통의 정도가 어디까지인지 혹은 인간이 자신을 조절하고 통제할 수 있는 자유의지의 작동이 어느 선까지 가능한지에 대한 의학·철학적 명제에 대한 고민에 더 집중해야 마땅하다.”

나는 정혜신의 의견과 처방에 전적으로 공감한다. 인간을 정서적 깨달음에 의해 변화하는 존재로 보는 정신의학의 관점이나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영향력의 대부분이 비언어적 요소라는 널리 알려진 바와는 다르게, 정혜신의 공감력은 탄탄한 논리와 문장에 있다. 따라서 이 책은 논술 교재로도 딱이다. 무엇보다 뛰어난 분별력은 그의 장점이다. “내가 보기에 오랜 세월 동안 대한민국은 국민들의 결핍감을 증폭시켜 병적인 애국심을 얻어왔던 나라였다.” 국가보안법과 관련된 영역에서 “대한민국의 공권력은 ‘사이코패스’와 다를 바 없다.”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5공화국과 관련하여 괴기스럽고 ‘리얼판타스틱’한 발언을 내뱉는 이들은 그 입을 다물라.” 제발 좀 그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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