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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계인도 읽든 우리만 읽든, 1년에 4번 써야 할 이야기

등록 2022-01-14 11:15수정 2022-01-14 14:13

SF 계간지 <어션 테일즈> 창간
소설·시·칼럼·그래픽노블 등 풍성
과학소설 중심 해외에서 한국으로
“한국 SF의 시대 위해 잡지 필수”
과학소설(SF) 전문 계간지 &lt;어션 테일즈&gt;(약칭 E.T.)가 창간됐다. 지구인이 지구에서 만드는 잡지지만 외계인의 투고도 받는다. 바로 당신이 도전하면 된다. “너는 지구인이니까. 네가 이곳에 태어났으니까. 지구인일 수도 있고 외계인일 수도 있지만 그건 걱정 마. 이곳에 있는 모두가 서로에게 외계인이니까.”(천선란 소설 &lt;어떤 물질의 사랑&gt;) ⓒ Dotted Yeti/Shutterstock
과학소설(SF) 전문 계간지 <어션 테일즈>(약칭 E.T.)가 창간됐다. 지구인이 지구에서 만드는 잡지지만 외계인의 투고도 받는다. 바로 당신이 도전하면 된다. “너는 지구인이니까. 네가 이곳에 태어났으니까. 지구인일 수도 있고 외계인일 수도 있지만 그건 걱정 마. 이곳에 있는 모두가 서로에게 외계인이니까.”(천선란 소설 <어떤 물질의 사랑>) ⓒ Dotted Yeti/Shutterstock

어션 테일즈 1호
김보영 외 32명 지음 l 아작 l 2만5000원

국내 과학소설(SF·에스에프) 열풍을 바라볼 때 포개지던 풍경 하나. 과학책에서 본 뒤로 잊을 수 없던 우주배경복사다. 잘 알려진 대로, 우주는 사람의 눈으로 보면 텅 빈 어두움뿐이지만 전파망원경으로 보면 빛으로 가득하다. 모든 방향에서 고르게 내뿜어진 태초의 빛을 배경 삼고 있다. 우주는 가르친다. 눈에 보이는 것이 언제나 전부는 아니라는 사실. 

오랫동안 한국을 ‘에스에프 불모지’로 보는 이가 많았다. 에스에프는 소수 마니아만 읽는 주변부의 문학으로 쉽게 여겨지기도 했다. 하지만, 아니었다. 최근 몇 년 사이 에스에프는 가장 주목받는 문학 장르로 떠오르며 전성시대를 열었다. 이제 에스에프는 베스트셀러가 되고, 한국 에스에프가 외국어로 번역되어 세계로 나아간다. 질적, 양적 성장이 눈부시다.

이런 성취가 갑자기 이루어졌을 리 없다. 독자도, 작품을 발표할 기회도 적었을지언정 에스에프는 끊임없이 쓰였다. 다양한 시도를 쌓으며 가능성을 키워 왔다. 그 저류에, 바로 에스에프 잡지가 있음을 눈여겨보아야 한다. 에스에프는 애초에 탄생부터 잡지와 함께했으며, 잡지는 줄곧 에스에프의 성장판이 되었기 때문이다. 새해 시작과 함께, 또 하나의 에스에프 잡지가 등장했다. 계간지 <어션 테일즈>다. 

외계인 투고 받습니다 

에스에프 전문 출판사 아작이 펴내는 <어션 테일즈> 제호는 ‘지구인들이 만든 이야기’(The Earthian Tales)라는 뜻이다. “‘지구인’이라는 말은 필연코 ‘외계인’이라는 말을 전제로 하는 법이어서, ‘지금-여기’와는 또 다른 세계를 상상하는 지구인들의 경이로운 이야기”를 담겠다는 게 이 잡지의 목표다. (약어가 공교롭게도 이티(E.T.)인데 외계인들의 투고도 물론 받는다.)  

ⓒ 김범석
ⓒ 김범석

ⓒ Keith Tarrier/Shutterstock
ⓒ Keith Tarrier/Shutterstock

‘한국 에스에프 시대’가 열리면서 <어션 테일즈>의 탄생은 거의 필연적이었다고 최재천 아작 편집장은 말했다. 그는 <한겨레>와 한 이메일 인터뷰에서 “2020년부터 한국 에스에프 작품 비중이 해외 작품을 넘어서며 출간의 중심이 한국 에스에프로 이동하는 큰 변화가 도래했지만, 에스에프 전반의 암흑기가 30년 가까이 이어진 결과 대부분의 에스에프 작가에게는 작품을 (유료로) 발표할 선택지가 사실상 전혀 존재하지 않은 기간이 꽤 됐다. 새로운 계간지는 더 이상 피할 수 없는 숙제 같은 것이었다”고 출간 계기를 설명했다. 

장르 발전을 위해 꼭 필요한 것이 잡지라고 그는 믿는다. “단적인 예로, 정세랑 작가가 처음 글을 실은 곳이 <판타스틱>이었고, 2호만 나오고 말았지만 2000년대 중반에 나온 무크지 <해피 에스에프>(Happy SF)에 작품을 실었던 김보영, 김주영, 김창규, 듀나, 배명훈, 정소연의 이름을 본다면, 그 작가들이 한국 에스에프에 끼친 영향을 생각해보면 잡지가 어떤 역할을 하는지 상징적으로 알 수 있습니다. 작품에 대한 담론과 비평, 장르의 다양성 등 잡지가 가지는 긍정적 역할을 빼놓고 말하더라도요.” 

별다른 기능은 없고, 외롭지 않게 해줄 거야

1호 주제는 ‘홀로’. 코로나 시대인 만큼 지구인의 고독은 시의성 있는 주제이면서, 동시에 보편적인 주제다. 잡지를 여는 글 ‘고독한 인류, 고독한 에스에프’에서 고호관 작가가 통찰한 대로 과학소설은 외로움을 다루기에 더없이 좋은 장르다. “에스에프는 얼마든지 과격하게 주인공을 물리적으로 고립시킬 수 있”기 때문에. 어디 구석 정도가 아니고 달, 화성, 외계 행성, 다른 은하, 심지어 다른 우주에 홀로 남겨질 수도 있다. 시간적, 심리적 거리도 마찬가지다. 

 
4컷-카툰 ‘alone’ ⓒ OOO ※ 이미지를 누르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4컷-카툰 ‘alone’ ⓒ OOO
4컷-카툰 ‘alone’ ⓒ OOO

광막한 거리감은 가능성과 그보다 더 많은 불가능성, 그리고 또다시 가능성을 풍부하게 경험하는 장이 된다. 그리고 깨닫게 한다. “우리가 간과했던 단 하나의 별에도 에너지는 충분하다”(존 업다이크 시 ‘엔트로피를 위한 송시’)는 걸. 허무를 건너 가능성을 발견하는 경험이야말로 에스에프가 사회의 벽에 문을 내고자 하는 이들에게 더욱 환대받는 이유인지 모른다. 에스에프의 주 독자층은 오늘날 가장 열렬히 변화를 갈망하는 계층으로 분류되는 20·30대 여성이기도 하다. 

과학(아는 것)과 과학소설(상상하는 것)의 밀착

<어션 테일즈>는 소설(초단편·단편·중편)뿐 아니라 시, 에세이, 칼럼, 카툰, 그래픽노블, 인터뷰, 리뷰, 기사 등 매우 다양한 콘텐츠로 채워졌다. 271쪽 전면 컬러 무크지로 책 한 권 분량이다.

미국 최대 출판사 하퍼콜린스가 판권을 사기도 한 ‘국가대표 에스에프 작가’ 김보영의 ‘창작 에세이’를 비롯해 에세이 4편, 김창규·곽재식·심너울·이하진·이경희 등의 소설 10편을 읽을 수 있다. 특히 제1회 포스텍 에스에프 어워드 미니픽션 부문 당선작(박경만 ‘식’)도 실려 새로운 작가의 탄생 역시 함께할 수 있다.  

그래픽노블 ‘중력의 눈밭에 너와’ (1) 일부 ⓒ LUTO ※ 이미지를 누르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그래픽노블 ‘중력의 눈밭에 너와’ (1) 일부 ⓒ LUTO ※ 이미지를 누르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그래픽노블 ‘중력의 눈밭에 너와’ (1) 일부 ⓒ LUTO ※ 이미지를 누르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인터뷰는 3편, 4컷-카툰 1편, 그래픽노블 2편, 칼럼 2편, 기사 2편도 독자를 기다린다. 작가들이 고른 ‘놓치면 안 될 책’ 추천도 수두룩하다. 과학과 가장 먼 장르로 간주되기 쉬운 시 3편은 황인찬이 썼다. 다음 호에는 송경동 시인이 ‘시간 여행’을 주제로 쓴 시가 실릴 예정이다. “부디 많은 시인이 에스에프 시를 투고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최재천 편집장)

과학소설 잡지가 장르 구분을 넘어 다채로운 콘텐츠의 향연이 된 것은 “자연스러웠다”고 최 편집장은 말했다. 현대사회가 이미 에스에프와 밀접한 까닭이다. 오늘날 기후위기, 코로나, 인공지능, 우주 탐사만 떠올려봐도 현실이 에스에프라 할 만하다. 과학의 시대다. 과학(아는 것)과 과학소설(상상하는 것)이 더욱 가까워졌다. 인류 최초로 달에 발을 디딘 미국 우주비행사 닐 암스트롱이 자신의 논문을 과학소설의 거인 아서 시(C.) 클라크에게 헌정한 일화는 과학과 에스에프의 관계를 상징적으로 보여줬다. 그로부터 50여년이 흐른 지금, 에스에프를 읽어야 할 이유는 더 간절해졌다. 

석진희 기자 ninan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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