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조합이 노동자의 교회”라고 믿은 목사 조지송 평전
탄광촌 일한 뒤 군부독재 시절 ‘산업선교’의 길 열어
탄광촌 일한 뒤 군부독재 시절 ‘산업선교’의 길 열어
1976년 영등포도시산업선교회관을 배경으로 함께한 선교회 활동가들과 여성노동자들. 맨왼쪽 조지송 목사, 뒷줄 스티븐 라벤더 선교사, 맨오른쪽 인명진 목사. 영등포도시산업선교회 제공
산업선교의 선구자, 노동자들의 벗 - 조지송 목사의 삶과 사랑
영등포산업선교회 기획, 서덕석 지음 l 서해문집 l 1만8000원 “천국이 있냐고 여쭈었더니, ‘천국이 있다면 목사님들이 빨리 죽어 그 좋은 천국 가야지, 왜 병원으로 가겠느냐. 우리가 사는 세상을 천국 같은 세상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말씀하셨어요.”(송효순, 1970년대 대일화학 노동자) 노동조합이 노동자의 교회라고 믿은 목사가 있었다. 3년 전 하늘로 돌아간 ‘산업선교’의 선구자 조지송 목사다. 1970~80년대 군부 독재 시절, 그는 척박한 노동 현장으로 뚜벅뚜벅 걸어 들어가 인권과 민주주의가 낮은 숨을 몰아 쉴 공간을 열어냈다. 노동자를 예수처럼 섬긴 신앙의 힘이 원동력이었다. 조지송 목사는 노동자 전도 교육의 일환으로 강원도 삼척의 탄광촌 막장에서 일한 뒤 산업선교의 길로 접어들었다. “눈물과 탄가루로 범벅이 된 찬밥을 반찬도 없이 소금을 뿌려 입속에 떠 넣으며, 교회가 이 비참한 삶을 모른다면 한 사람의 광부도 구원할 수 없을 것”이라 다짐했다. 최초의 산업전도 목사로 안수 받아 영등포산업선교회 초대 총무를 맡은 뒤로도 그에게는 늘 노동자가 예수였다. 그는 “예수라는 이름을 들어보지도 못한 노동자들이 목사인 자신보다 더 예수처럼 행동한다”며, 예수를 사랑하듯 노동자를 사랑하고 마침내 직접 노동자가 되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산업선교라고 강조하곤 했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의 고갱이는 그에 대한 노동자의 기억들이다. 원풍모방·남영나이론·대일화학…. 노동운동사 한쪽에 기록된 투쟁 사업장의 노동자들은 영등포에서 만난 조지송 목사를 따뜻한 아버지, 평생의 스승으로 기억하고 있다. 생전 자신을 내세운 바 없기에, 신앙의 본질에 맞닿은 그의 삶이 더욱 귀하게 다가온다. 노현웅 기자 golok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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