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Book] 한미화의 어린이책 스테디셀러
나탈리 배비트 지음, 최순희 옮김, 윤미숙 그림 l 대교북스주니어(2018) “얼마큼 자야 충분할까?”라고 어릴 때 투정을 부렸더니 아버지는 “죽어야 충분하지!”라고 답했다. 가끔 이 말이 생각난다. 삶의 모든 욕망으로부터 언제 자유로워질까. 나탈리 배비트 역시 헛된 욕망을 끊는 길은 죽음이라 여긴 것 같다. 영생을 탐한 ‘노란 옷의 남자’를 막는 길은, 죽음이었다. 어린이를 위한 시간 판타지 중 세 개만 고르라면 단연 <시간의 주름>, <한밤중 톰의 정원에서> 그리고 <트리갭의 샘물>이다. 이런 시간 판타지를 읽고 나면 누구나 철학자가 된다. 새해에 ‘지나간 나의 시간은 어디에 있는가’ 같은 질문을 하는 이유는, <트리갭의 샘물>을 읽었기 때문이다. 동화는 옛이야기와 유사한 얼개와 상징으로 삶과 죽음의 문제를 풀어간다. 열 살 위니는 트리갭 마을의 숲 근처에 산다. 우연히 커다란 나무 아래 숨겨진 샘물을 마시고 있는 제시를 본다. 위니도 물을 마시려 하자 제시가 말린다. 결국 제시 가족의 집으로 간 위니는 이상한 이야기를 듣는다. 87년 전 제시의 가족은 살 곳을 찾다 옹달샘을 발견했고 기르던 고양이만 빼고 모두 그 물을 마셨다. 그 이후부터 이상하게도 가족은 나무에서 떨어져도 죽지 않고, 늙지도 않았다. 고양이가 죽고 나서야 가족은 샘물이 문제라는 걸 눈치챘다. 그간 비밀을 지키기 위해 숨어 살았는데 위니가 이 사실을 알게 된 것. 한데 비밀을 눈치챈 사람이 한 명 더 있다. ‘노란 옷의 남자’다. 그는 영생의 샘물을 비싼 값에 팔 거라며 가족을 위협한다. 위험천만한 소동 끝에 가족이 떠나기 전날, 제시는 유리병에 샘물을 넣어 위니에게 전한다. 열일곱 살이 되면 이 물을 마시고 영원한 삶을 얻어 자신을 찾아오라고 당부한다. 위니는 어떤 선택을 했을까. 시간 자체는 무형이지만 시간을 겪는 사람은 질적인 변화를 맞는다. 어린이가 자라고 젊은이가 노인이 된다. 젊음의 시간은 불안정하기에 고통스럽고 노년의 시간은 후회와 불편으로 참혹하다. 우리는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시간을 동시에 겪을 수 없어 서로를 이해할 수 없을 때도 많고, 결국 끝이 있어 슬프다. 나탈리 배비트는 판타지 설정으로 고통의 원인을 제거해 버린다. 이제 어떻게 될까. 행복해질까. 영생을 얻은 제시의 아빠는 위니에게 이렇게 말한다. “죽는 것도 생명의 수레바퀴의 한 부분인 거야. 죽는 것 없이는 사는 것도 없어. 길가에 놓인 돌멩이처럼 그저 존재할 뿐이야. 나는 다시 움직이고, 변화하고 싶어.” 간혹 어떤 책을 두고 “어린이에게 너무 어려운 게 아닐까요?” 하는 질문을 받을 때가 있다. 모든 책은 자기가 읽을 수 있을 만큼만 읽어도 충분하다. 언젠가 ‘이런 뜻이구나’ 하고 깨닫는 날이 온다. 어린이가 “죽은 다음에는 어떻게 되나요?”, “시간이 뭐예요?” 같이 심오한 질문을 했을 때 회피하지 말고 동화를 징검다리 삼아보면 좋겠다. 40년이 지났어도 아버지가 했던 말이 기억나듯 이 책을 읽을 어린이 역시 경험과 지식을 쌓아가며 스스로 답을 찾아갈 테다. 초등 5~6학년. 출판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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