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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조 경기도 호환에 죽은 사람 한달에만 120명…더 무서운 것은?

등록 2022-01-07 04:59수정 2022-01-07 13:53

[한겨레Book] 강명관의 고금유사
3월 대선 앞두고 다시 보는 ‘호환보다 무서운 가혹한 정사’
26일(현지시각) 말레이시아 파항주 벤통에서 한 화가가 ‘호랑이의 해’를 주제로 한 중국식 새해맞이 그림에 채색하고 있다. 오는 2022년은 육십갑자 중 39번째인 ‘호랑이의 해’ 임인년(壬寅年)이다. 벤통/신화 연합뉴스
26일(현지시각) 말레이시아 파항주 벤통에서 한 화가가 ‘호랑이의 해’를 주제로 한 중국식 새해맞이 그림에 채색하고 있다. 오는 2022년은 육십갑자 중 39번째인 ‘호랑이의 해’ 임인년(壬寅年)이다. 벤통/신화 연합뉴스

1758년(영조 34) 10월 강원도 감영(監營)은 영조에게 장계를 올린다. 강릉·삼척·춘천 등 도내(道內)의 17곳의 지방관이 올린 보고서를 취합한 것이다. 내용은 주로 호랑이에게 물려 죽은 사람에 대한 보고다.

삼척부의 경우를 들어보자. 삼척부 노곡면의 보인(保人) 최상건의 딸 최단이, 미로리면의 양녀(良女) 김조이, 원덕면의 사비(私婢) 신분(信分), 양인 최동무치의 17살 여동생, 포보(砲保) 우윤찬은 8월에, 역시 원덕면의 역리(驛吏) 김귀흥, 부내면의 사노(私奴) 무응치, 북상면의 기병(騎兵) 장필동은 9월에 호랑이에게 물려 죽었다.

장계를 정리해 보면, 강릉에서 3명, 삼척에서 8명, 춘천에서 7명, 고성(高城)에서 4명, 양구에서 1명, 낭천(狼川)에서 6명, 횡성에서 8명, 평강에서 1명, 통천에서 3명, 정선에서 13명, 홍천에서 6명, 흡곡에서 1명, 평창에서 2명, 울진에서 1명, 철원에서 1명이 호환으로 죽었다. 밤중에 물려 죽거나, 낮에 산에 나무하러 갔다가 밭에 일하러 갔다가 물려 죽었다. 10월의 둘을 제외하면, 나머지는 모두 8월·9월에 죽은 사람이다.

이 사례는 특별한 것인가? 그렇지 않다. 4년 전인 1754년(영조 30)의 <영조실록>은 윤4월 어림에는 경기도에서 한 달에 120명이, 10월 즈음에는 강원도에서 81명이 호랑이에게 물려 죽었다고 밝히고 있다. 아마도 이 시기 1년에 호랑이에게 죽는 사람의 총수는 적어도 수천 명, 많으면 만 명에 이르렀을 것이다.

구체적인 사례도 한 번 보자. 1709년 10월 조선 후기 최고의 벌열이었던 안동 김씨 가문의 시인 김창흡(金昌翕)이 설악산 영시암(永矢菴)에 머무르고 있을 때였다. 한밤중에 천둥 치는 소리가 나더니, 호랑이가 마루방에 뛰어들어 염불을 하고 있던 거사(居士) 최춘금(崔春金)을 물어갔다. 김창흡은 과거에도 말과 노비를 호랑이에게 잃은 적이 있었다. 이런 상황이었다. 사람이 있는 곳이면 호랑이가 있었던 것이다. 1754년 5월에는 경희궁에도 호랑이가 들어왔다. 서울 시내까지 호랑이가 진출(?)하고 있었던 것이다. 호랑이는 집 주변 어디서나 마주칠 수 있는 흔한 짐승이었던 것이다. 요컨대 한반도는 호랑이의 천국이었던 셈이다.

공자가 제자들과 태산을 지나다가 무덤 앞에서 통곡을 하는 여인을 보았다. 이유를 묻자, 예전에 시아버지와 남편이 호랑이에게 죽었고, 이번에는 아들이 죽었다고 하는 것이었다. 다시 물었다. “왜 이 무서운 곳을 떠나지 않는 거요?” “여기는 가혹한 정사가 없기 때문입니다.” 공자는 제자들을 돌아보며 말했다. “얘들아, 꼭 새겨 두어라. 가혹한 정사는 호랑이보다 무서운 법이니라(苛政猛於虎).”

조선의 호환은 끔찍한 것이었다. 하지만 호랑이에게 물려 죽는 백성보다 가혹한 수탈과 무능한 정치로 죽는 백성은 셀 수도 없을 정도로 많았다. 곧 대통령 선거다. 국민이 선거로 최고의 권력자를 뽑는 세상이 되었지만, 정치는 호랑이보다 더 무서운 것으로 변할 수 있다. 슬기로운 국민은 슬기로운 선택을 해야 할 것이다. 사족. 대한민국은 호랑이가 멸종한 지 오래다. 대신 멧돼지가 가장 무서운 맹수가 되었다고 한다. 산행을 즐기시는 분들은 물론 어쩌다 산에 가시는 분들 모두 멧돼지 조심하시기 바란다. 날뛰는 멧돼지에게 크게 다칠 수가 있다.

부산대 한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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