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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자신에게 매몰된 사람이 뿜어내는 독

등록 2021-12-31 04:59수정 2021-12-31 11:22

[한겨레Book] 정아은의 책들 사이로

너를 닮은 사람
정소현 지음 l 문학과지성사(2021)

억압된 것은 돌아온다. 굳이 유명 정신분석학자의 논리를 빌리지 않아도 우리는 안다. 욕망을 억누르는 것은 임시로는 가능할지라도 오랜 기간을 두고 보면 그렇지 않다. 억지로 구겨져 구석에 처박혔던 욕망은 끈질기게 살아남아, 한순간 기다렸다는 듯 부활한다. 부활의 순간에 욕망의 결과물은 질량에서도, 부피에서도,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커져 있다. 그래서 욕망을 심하게 억누르면 인생의 어느 시점에 커다란 파국을 맞을 수 있다.

그런데 인간의 욕망이란 복잡한 것이라, 성취했다고 느끼는 순간 절실했던 마음이 가라앉는다. 그토록 원하고 찾아 헤맸던 것을 경시하면서 곧바로 다른 욕망을 피워 올린다. 이미 손에 쥐었기에 당연하게 여기는 마음이, 기존에 욕망했던 대상의 오라를 빠르게 소거시키는 것이다.

정소현 소설집 <너를 닮은 사람>(<실수하는 인간>의 개정판)의 표제작인 단편 ‘너를 닮은 사람’ 의 화자는 물질적 풍요에 대한 욕망을 채우기 위해 인생의 중요한 가치들을 희생했다. 가난에서 기인한 고통이 너무 컸기에 빈곤을 해결하는 것 외에는 무엇도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해서 내린 결단이었다. 막상 빈곤을 해결하고 풍요를 누리게 되었을 때, 화자는 자신이 놓쳐 버린 가치들을 그제야 인식하고, 이제는 그 가치들을 향해 질주한다. 화자가 가까웠던 이들을 배신하고 오직 제 욕망을 향해 달려가는 모습은 소설의 전반을 감싸고 도는 괴기스러운 분위기를 만들어내는 일등공신이다.

소설에 나오는 욕망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품게 되는 보편적인 것이다. 부 그리고 사랑. 이 두 가지에 대한 욕망은 끈질기게 지속되며 우리네 일상을 침범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일상에 출현하는 잡다한 다른 요소들과 자연스럽게 섞이며 희석된다. 그 과정의 반복을 겪으며 우리는 나의 욕망과 타인의 욕망 사이를 넘나들며 조율하는 법을 배운다. 문제는 이 법을 익히는 데 실패했을 때 생긴다. 세상에는 완전한 ‘나’ 도, 완전한 ‘타자’ 도 없기에, 내가 ‘나’ 라고 믿고 있는 존재에만 충실하면 이내 나를 둘러싼 세상에 문제가 생긴다. < 너를 닮은 사람 > 은 이 문제를 극단으로 몰아붙여 끌고 나가는 몽환적이고 음험한 이야기다.

읽으면서 화자가 저지른 일의 강도와 범위에 화들짝 놀라게 되는 것은 화자가 ‘그럴 수밖에 없었던’ 자신의 입장을 영리하게 변호하기 때문이다. 침착하게 자신이 처한 상황을 기술하는 화자를 따라가다 보면 엄청난 일을 저질러놓고도 별일 아니라는 듯 태연하게 자기변명을 늘어놓는 뉴스 속 권력자들의 모습이 오버랩된다.

최근에 드라마화되면서 화제를 모았기에 다시 찾아 읽었던 소설이다. 몇년 전 읽을 때도 인상적이었는데, 다시 읽어보니 역시 강렬하다. 책으로 이야기를 접하던 시대가 저물고 영상을 통한 이야기만 살아남는다는 자조적 이야기가 울려 퍼지는 나날이다. 화면이 지면을 압도하는 듯 보이지만, 그래도 화면의 뼈대를 제공하는 건 지면이다. 물론 모든 지면이 그런 건 아니고, 탄탄하고 매혹적인 스토리를 가진 지면, 그중에서도 극히 일부만 그렇게 할 수 있을 것이다. ‘영상의 시대’ 에 명맥을 이어나가는 ‘소설’ 의 위치성에 대해 생각해 보게 만드는 소설이었다.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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