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 알렉산드리아부터 디지털 아카이브까지, 지식 보존과 파괴의 역사
리처드 오벤든 지음, 이재황 옮김 l 책과함께 l 2만2000원 책을 불태우는 행위라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게 진시황제가 사상을 통제하기 위해 책을 불태우고 학자들을 생매장한 ‘분서갱유’다. 기원전 3세기에나 벌어졌을 만한 이 야만의 행위는 기실 20세기 말까지도 여러 나라에서 면면히 이어져 왔다. 1992년 이슬람계 보스니아인들을 공격한 세르비아 민병대들은 ‘인종청소’만 한 게 아니라 보스니아의 수도 사라예보를 비롯해 주요 도시의 도서관과 기록관에 포탄을 쏟아부었다. 500권의 중세 필사본을 비롯한 15만권의 희귀본과 200만권 이상의 기록본들이 파괴되었다. 뿐만 아니라 개인의 출생·결혼·사망 기록과 토지 소유문서 등도 대부분 소실됐다. 세르비아군은 “가장 교과서적인 방식으로 (개인과 공동체의) 역사를 지우는” 시도를 한 것이다. 저자는 1300만권이 넘는 장서를 소유하고 있으며 세계 최고의 도서관으로 손꼽히는 영국 옥스퍼드대 보들리 도서관의 관장이다. 기원 전 7세기 존재했던 것으로 추정되는 아시리아의 앗슈르바니팔 도서관을 비롯해 도서관의 역사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바탕으로 인류 지식의 집적체인 도서관이 어떻게 공격받았고 살아남았는가를 흥미롭게 기술한다. 도서관뿐 아니라 저자가 직접 자신의 저작물을 파괴하고자 했던 사건들도 조명한다. 시인 바이런의 아내와 친구들은 오랜 논의 끝에 작가의 회고록 원고를 불태웠다. 반면 카프카는 죽기 직전 자신의 모든 작품을 파기하라는 유언을 남겼지만, 이를 거부한 친구 덕에 위대한 문학작품들이 살아남을 수 있었다. 저자는 원저작권자의 의지를 거스르는 논쟁적인 이 주제에 대해서 “지식의 보존은 결국 미래에 대해 신뢰를 가지는 것”이라고 해설한다. 김은형 기자 dmsgu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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