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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옛 지도에 숨겨진 보석 같은 이야기들

등록 2021-12-17 05:00수정 2021-12-17 19:23

알고 보면 반할 지도
박물관 큐레이터가 들려주는 신비로운 고지도 이야기
정대영 지음 l 태학사 l 1만6000원

학창 시절, 사회과 부도 하나 펼쳐두고 몇시간씩 상상의 나래에 빠져본 적 있는 사람들이라면 반길 수밖에 없는 책이 나왔다. 지리학을 연구한 박물관 큐레이터가 오랜 옛 지도(고지도) 속에 담긴 이야기를 풀어낸 <알고 보면 반할 지도>다.

지도란 지표면의 모습을 실제보다 축소해 평면에 나타낸 그림으로, 약속된 기호나 문자를 통해 실제 지표면의 특징을 함축해 알리는 역할을 한다. 그리고 그 지표면 속 일부에는 내가 살아온 고장, 걸어온 길, 겪어온 일 등이 녹아 있다. 지도 안에는 많은 이야기가 담길 수밖에 없다.

지은이는 특히 고지도에는 그 시대의 희로애락과 오욕의 감정이 오롯이 녹아들어 있다고 말한다. “정확함이 생명인 현대의 지도는 정확한 만큼 지극히 과학적이고 기계적이지만, 고지도는 상상과 관념의 세계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전 세계 어디서건 구글 맵만 켜면 자신의 위치를 확인할 수 있는 시대이지만, 상상 속의 나라와 동물들이 버젓이 기록된 고지도의 매력이 여전한 까닭이다.

지은이가 고지도와 사랑에 빠진 순간도 로맨틱하다. 대학교 4학년 시절 리포트를 작성하느라 한동안 충남 공주 지역의 고지도를 끼고 살았는데, 자신이 거닐었던 순하고 따뜻한 그 고장의 거리들과 가파른 공산성의 절경이 지도 속에 생생했다. 특히 지도 속 나룻배와 노 젓는 뱃사공의 그림을 보며 천천히 흐르는 금강 물결이 떠오르는 감동의 순간을 경험한 뒤, 동서남북 방위조차 엉망인 고지도의 운치와 낭만에 점점 빠져들었다는 것이다. 

지은이가 고지도와 사랑에 빠진 계기가 된 공주목 지도의 일부. 공산성 인근에서 부여 방면으로 노를 젓고 있는 뱃사공의 그림이 담겨 있다. 서울대학교 규장각 한국학 연구원 소장. 태학사 제공
지은이가 고지도와 사랑에 빠진 계기가 된 공주목 지도의 일부. 공산성 인근에서 부여 방면으로 노를 젓고 있는 뱃사공의 그림이 담겨 있다. 서울대학교 규장각 한국학 연구원 소장. 태학사 제공

동서양 다양한 고지도에 대한 역사적 지식도 습득할 수 있다. 예를 들면, 조선시대 대표적 지도인 대동여지도의 인쇄용 목판은 얇디얇은 피나무 판이다. 두꺼운 목판용 판목을 구하지 못한 김정호의 경제적 곤궁과 함께, 그런 환경에서도 결국 대동여지도를 완성해 낸 그의 의지 같은 것을 짐작케 한다. 또 위성사진과 흡사할 정도의 정밀함을 자랑하는 대동여지도의 기술적 진보의 공적은, 그에 앞서 ‘백리척’이라는 독자적 축척 방식을 도입한 18세기 지리학자 정상기의 ‘동국지도’에 돌아가야 한다는 사실도 함께 말이다.

어떤 물건에 깃든 이야기를 발견하고, 사랑에 빠지고, 결국 책까지 내게 되는 ‘성덕’(성공한 ‘덕후’)의 트로피 같은 책이지만, 독자들 역시 그 제목처럼 알고 보면 반할지도 모르겠다. 지은이가 소개한 동서양 곳곳의 고지도들이, 독자들이 사랑하는 장소에 숨겨진 이야기들로 말을 건네올 것이 분명하다.

노현웅 기자 golok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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