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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공자가 말한 인(仁)은 윤리적인 단호함”

등록 2021-12-17 05:00수정 2021-12-17 19:29

새롭게 만나는 공자
결기(仁), 윤리(禮), 배움(學)에 대한 다른 해석
김기창 지음 l 이음 l 1만7000원

중세 유럽법을 연구한 법학자 김기창 고려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가 동양의 고전 철학자인 공자의 사상을 독특하게 풀이한 <새롭게 만나는 공자>를 펴냈다. 20년 넘게 <논어> 강의를 해왔다는 지은이는 “누적된 왜곡과 오해”로 정형화된 공자의 사상을 완전히 새롭게 되새기겠다고 말한다.

지은이는 주로 ‘어질다’고 새겨지는 인(仁), 예의범절과 비슷한 것으로 치부되는 예(禮), 지식을 얻는 것으로만 생각되는 학(學) 등 세 가지 핵심 개념에 대한 기존의 풀이를 공격한다. <논어>의 유명한 첫 구절은 “배우고 때로 익히면”(學而時習之) 정도로 새겨지곤 하는데, 이런 풀이는 대체로 정신적인 차원의 지적 훈련 안에 머무른다. 그러나 지은이는 공자가 말하는 배움은 학문(學文) 또는 학문(學問)과는 다른 것이라 주장한다. 공자는 집에서 효도하고 밖에서 형제애로 사람을 대하는 등 어떻게 윤리적으로 행동할 것인지를 힘쓴 뒤에야 “힘이 남으면 그때 학문(學文)을 하라”고 했다. 지은이는 공자가 말한 배움은 “다양한 직접 경험(見)과 간접 경험(聞)을 통해 올바르게 처신하고 판단하는 것을 배운다”는 것으로, 이를 ‘공부의 즐거움’ 정도로 새기는 것은 자기의 직업적 특성에 치우친 학자들의 원전 왜곡이라고 말한다.

이렇게 접근할 때, ‘학이시습지’에서 시(時)와 습(習)의 풀이도 완전히 달라지게 된다. 시는 ‘자주’, ‘때때로’가 아니라 적절한 시점이나 특정한 시점을 뜻하며, 습은 지적인 훈련이 아니라 현실 속에서 몸소 행하는 실천과 행동을 뜻한다. 결국 “어려운 실천적 문제에 대해서 올바르고 적절한 판단을 내려서 자신이 말한 대로 실행해도 될지를 가늠하고 결단하는 능력을 기르는 것”이 ‘학이시습지’의 본뜻이라는 것이다. “스승이나 현인을 흠모하고 공경하고 추종하는 것이 배움의 자세라고 오해하는 것은 지식권력의 저질스러운 지배 욕구를 반영하는 것이다.”

중국 명대 화가인 구영(仇英, 1494~1552)이 그린 공자의 초상. 위키미디어 코먼스
중국 명대 화가인 구영(仇英, 1494~1552)이 그린 공자의 초상. 위키미디어 코먼스

또 “공손하기만 하고 예법을 따르지 않으면 그저 고될 뿐”이라는 공자의 말에 비춰볼 때, 예는 공손한 마음가짐 따위와 거리가 멀다고 한다. 지은이는 “공손함, 신중함, 용감함, 정직함 등의 윤리적 가치들이 실제로 어떤 경우에 바람직하고 어떤 경우에 바람직하지 않은지에 대한 역동적인 판단 기준, 궁극적 행동 기준이 바로 공자가 생각하는 예법”이라고 주장한다. 이렇게 볼 때, 공자에게 예는 법 규범(국법)을 초과하는 윤리 규범이다. 저 유명한 “이름을 바로세운다”(正名)는 공자의 정치철학은, 이름(名), 말(言), 일(事), 예악(禮樂)을 지나 형벌(刑罰)에까지 닿는다. 공자의 ‘예법으로 다스리는 세상’은 “무슨 성인군자들의 이상향이 아니라, 나쁜 놈들이 제대로 처벌받고, 용기 있고 올바른 사람들이 제대로 대우받는 세상”이라는 주장이다.

결국 공자가 추구한 것은 기존의 법과 제도를 고분고분 따르는 것과는 정반대다. 흔히 ‘법은 구속력을 갖지만 윤리는 구속력이 없다’고들 하지만, “법을 지켜야 할 의무는 윤리적 의무이지, 법적 의무일 수가 없다.” 정당성 없는 비윤리적인 법으로 국법과 제도가 잘못 돌아가고 있을 때, 필요한 것은 “옳지 않은 일에 참지 않고 맞서는 용기, 떨쳐 일어나는 결기, 윤리적 단호함과 강단”이다. 지은이는 이것이야말로 ‘어질다’는 모호한 풀이로 얼버무렸던 인(仁)의 본뜻이라 말한다. 지은이가 날카롭게 다듬은 모서리에 힘입어 공자의 사유가 다시금 현실적인 생명력을 얻었다.

최원형 기자 circl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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