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 10개 만들기
한국 교육의 근본을 바꾸다
김종영 지음 l 살림터 l 1만8000원
<서울대 10개 만들기>는 제목 그대로 전국에 ‘서울대’를 10개 만들자고 제안하는 책이다. 대학개혁 운동에 주도적으로 참여해온 김종영 경희대 사회학과 교수가 기존 ‘대학통합네트워크’ 운동을 재정립하고 이름 역시 ‘서울대 10개 만들기’라고 바꿔 붙였다. 이를 통해 이른바 ‘스카이’(SKY, 서울대·고려대·연세대) 독점체제를 해체하고 ‘교육지옥’을 허물 수 있다고 주장한다.
책은 하나의 질문을 던지면서 시작한다. “왜 한국만 교육지옥인가?” 한국 교육이 비정상적이라는 데 국민 대부분이 동의한다. 세계 최고의 사교육비, 세계 최저의 출산율, 불행한 아이들 등이 이를 증명한다. 다른 나라는 아닌가? “광주과학기술원 김희삼 교수의 한·중·미·일 4개 나라 비교연구에 따르면 한국 학생들 중 고등학교를 전쟁터라고 말한 학생이 80.8%나 되었다. 반면 중국 학생은 41.0%, 미국 학생은 40.4%, 일본 학생은 13.8%였다.” 한국과 비슷한 교육·경제 수준을 갖춘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국 중 ‘교육지옥’이라고 불리는 나라는 없다.
교육지옥은 대학 서열체제에 따른 ‘병목’현상 탓이다. 사람들이 스카이를 향한 하나의 고속도로로 몰려들기 때문이다. 지위경쟁이론에 따르면 교육은 지위경쟁을 촉발하며, 이 경쟁에서 이긴 일부 집단이 다른 집단을 배제하고 지위와 재화를 독점한다. 지위경쟁은 현대사회의 특징이지만, 그 정도는 나라마다 다르다. 지은이에 따르면 대학체제가 평준화된 유럽(프랑스와 영국은 제외)은 학벌을 향한 지위경쟁이 일어나지 않는다. 세계적 수준의 대학이 60여개에 이르는 미국에서는 상위권에서 지위경쟁이 일어나지만, 다원적 서열 체제 덕분에 병목현상이 심하지 않다. 한국은 대학의 지위권력을 단 세 대학이 독점하고 있어 학벌을 향한 극심한 병목현상이 발생한다. 지은이는 이를 각각 ‘평준화’ ‘다원화’ ‘독점화’ 모델이라고 부른다.
교육지옥은 왜 유지되는가? 무엇보다 강고한 ‘교육지옥동맹’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 동맹은 정부 관료, 중상층 학부모, 사교육 시장으로 이루어져 있다. 교육부 관료들은 대부분 행정고시 출신으로 교육에 대한 전문성이 약하고 교육개혁에 큰 관심이 없다. 관료의 특성상 사회적 논쟁을 피하려고 한다. 한국 교육 문제 앞에서 학부모는 국가보다 힘이 세다. 국가가 학부모의 반대를 이긴 적은 중학교 무시험 제도 도입(1969년)과 고교평준화 정책 도입(1974년) 단 두번이었다. 하지만 “대학 병목체제 안의 학부모는 ‘단기적 관점’에서 자식의 명문대 진학에 최선을 다할 수밖에 없는 처지”라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 사교육 세력은 가장 강력한 교육개혁 반대 세력이다. 사교육 시장 규모는 총 30조~40조원에 이르며 2018년 기준 사교육 사업체는 18만8631개, 사교육 종사자는 162만7455명에 이른다. 선진국 가운데 이렇게 대규모의 사교육 시장이 존재하는 곳은 없다.
방향이 잘못된 교육개혁 운동도 걸림돌이다. 일부 전문가들은 기회균등선발 확대 등 대입에서 계층 차이를 극복할 수 있는 방안들을 마련해 ‘개천’에서 ‘용’이 나올 확률을 최대한 높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이런 주장은 독점체제 자체는 유지한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 이들을 포함해 독점 자체를 문제 삼지 않고 ‘공정한 입시’에만 매달리는 이들은 입시가 대학 서열의 종속변수라는 사실을 보지 못하고 있다. “본고사, 학력고사, 수능, 학종, 논술 모두 한국을 교육지옥에서 구해 내지 못했다. 입시가 문제가 아니라는 말이다.”
그럼 독점체제를 해소할 수 있는 방안은 무엇일까? 지은이는 미국 캘리포니아주의 대학체제를 본뜬 ‘서울대 10개 만들기’를 내놓는다. 서울대 10개 만들기는 기본적으로 2004년 이후 교육개혁 운동 일각에서 지속적으로 제기해온 ‘대학통합네트워크’ 운동의 연장선에 있다. 거점 국립대 9개(충북대, 충남대, 전북대, 전남대, 제주대, 경상대, 부산대, 경북대, 강원대)를 서울대와 묶어 모두 ‘국립서울대학’으로 이름을 바꾼 뒤, 서울대만큼 예산을 투입해 수준 높은 연구중심대학으로 육성하자는 것이 뼈대다. 스카이로 향하는 하나의 고속도로 체제가 낳은 병목현상을 없애기 위해 고속도로 10개를 만들자는 것이다.
한국의 독점화 모델과 유럽의 평준화 모델 사이의 절충안으로 미국의 다원화 모델을 택했다고 볼 수 있다. 벤치마킹 대상은 4년제 공립 연구중심대학 10개로 이루어진 캘리포니아대학 체제(University of California System, UC System)다. 여기에는 버클리 캘리포니아대학(UC 버클리)과 로스앤젤레스 캘리포니아대학(UCLA)을 비롯해 샌프란시스코·샌디에이고·샌타바버라·어바인·데이비스·샌타크루즈·리버사이드·머세드 캘리포니아대학이 포함되며, 이 중 7개가 전세계 대학 순위 100위 안에 들어 있다. 지은이는 입시 문제나 사립대 문제 등을 일단 제쳐놓고 국립대 통합에 집중하자고 이야기한다. 가장 중요한 문제부터 풀어나가는 ‘최소주의적 접근’을 하자는 것이다.
한가지 덧붙이는 과제는 대학 무상교육이다. 가계는 중고등학교 시절 사교육비에 이어 대학 입학 뒤에는 비싼 대학등록금에 시달려야 한다. 등록금을 사립대 기준으로 잡고 넉넉하게 계산한다고 해도 필요한 예산은 11조1900억원, 국내총생산의 0.6% 수준이다.
지은이는 “정의로운 사회는 다원적인 가치와 다원적인 기회로 축조되어야 하는데 (…) 한국 교육체제는 스카이 입학하기라는 단일 가치와 단일 기회로 이루어져 있다”며 “정의는 기회균등과 공정보다 더 큰 것”이며 “독점을 해체하는 것이 정의를 세우는 것”이라고 말한다. 여러 논쟁적 지점들이 있지만, 지은이의 교육 전반에 대한 숙고의 결과물이어서 교육개혁 논의의 한 축이 될 수 있어 보인다.
안선희 기자
sha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