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희연 지음 l 한겨레출판 l 1만5000원 안희연의 시는 읽힌다. 읽을 기운을 포함해 살아갈 힘이 부족할 때도. 화려한 표현이나 어떤 반응을 자아내려는 장치의 피로를 배척하는 시. 의연한 태도, 맑고 풍성한 시어들에선 잘해보겠다는 마음을 내려놓을 때의 겸손도 느껴진다. 마주할 세상 앞에서 모든 턱을 낮추겠다는 마음이 먼저인 이에게 안희연의 글은 좋은 친구가 된다. 그가 세 번째 산문집 <단어의 집>을 펴냈다. “단어 생활자” 시인이 낱말로 세상을 흡수하는 모습을 볼 수 있는 첫 산문집이기도 하다. 45가지 단어가 소개된다. 버럭 아니고 “버력”. 광물이 들어 있지 않아 버려지는 허드레 돌을 뜻하는 단어로, 방파제 기초공사에 쓰이곤 한다. “이 세계가 광산이라면 신은 성실하게 인간 광물을 캐낼 것이다. 금인지 은인지, 버력인지 일단은 캐봐야 한다. 시작해봐야 알고, 끝나봐야 안다. 그러니까 나라는 인간의 최후를 미리부터 결론 내지 말고 일단은 나를 잘 다듬어가는 게 맞다. 적어도 내 삶을 버력의 자리에는 두지 않기 위해서.” 건물 하중을 견디는 구조체로, 맨 마지막까지 철거할 수 없는 벽을 가리키는 단어는 “내력벽”이다. 사람이 건물이라면 “모든 걸 부숴도 부서지지 않는 최후의 보루, 영혼의 핵심인 셈이니 그 자체로 의미 있고 아름다운 것”이다.
안희연 시인. 한겨레출판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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