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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생각은 생물의 감각, 실재에 접촉하는 인터페이스

등록 2021-11-19 04:59수정 2021-11-19 21:02

생각이란 무엇인가
인간의 생각감각에 대하여
마르쿠스 가브리엘 지음, 전대호 옮김 l 열린책들 l 2만2000원

디지털 시대에 새로운 인본주의를 주창해온 독일 출신 철학자 마르쿠스 가브리엘(41)의 2018년작 <생각이란 무엇인가>가 번역되어 나왔다. 이 책은 전작 <왜 세계는 존재하지 않는가>(2013), <나는 뇌가 아니다>(2015)와 함께 3부작을 이루며, 전작들과 마찬가지로 대중을 대상으로 한 글쓰기를 통해 지은이가 주창해온 ‘신실재론’(Neuer Realismus)을 설파한다. 3부작이 일관되게 옹호하고자 하는 것은 과학기술의 발전에 휩쓸린 고삐 풀린 진보 속에서 실종된, “윤리적 숙고”를 할 수 있는 인간의 지위다. 이를 위해 지은이는 데이터의 홍수 속에서 “실재와 거짓을 분간할 수 없다”거나, 인공지능의 발전처럼 “기계가 인간을 대체한다” 등 탈근대 시대 ‘구성주의’와 ‘자연주의’의 오류들을 지적하고 보편주의, 인본주의 같은 근대적 가치들을 되새긴다.

이번 책은 인간의 ‘생각하기’를 주제로 삼는다. 흔히 생각은 감각과 분리되어, 감각을 통해 주어진 데이터를 처리하는 기능 정도로 이해되곤 한다. 지은이는 이렇게 좁게 접근할 때 “실재는 존재하지 않고 구성될 뿐”이라고 보는 ‘구성주의’ 등의 오류에 빠진다고 본다. 대신 “생각은 하나의 감각”이라고 주장하고, 아리스토텔레스의 ‘공통감각’ 논의 등에 비춰가며 이를 심화시켜 나간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우리의 의식은 대상의 개별적 질만이 아니라 통일된 인상을 체험한다고 보고, 이를 통해 “우리가 보고 듣는다는 것을 지각한다”는 개념을 세웠다. 지은이는 이 같은 ‘생각하기를 생각하기’는 감각의 특징들을 지녔으며, 그것은 “자신의 대상, 곧 생각하기와 오류 가능한 방식으로 접촉한다”고 말한다. 말하자면 생각하기는 인간과 실재 사이의 인터페이스이며, 그것은 다양한 의미장들을 넘나드는 소통을 가능하게 한다는 것이다. 이때 우리가 착각할 수 있다는 점은 되레 실재의 결정적 기준으로 제시된다.

‘신실재론’을 주장하는 독일 출신 철학자 마르쿠스 가브리엘. 위키미디어 코먼스
‘신실재론’을 주장하는 독일 출신 철학자 마르쿠스 가브리엘. 위키미디어 코먼스

생각하기는 하나의 감각이기 때문에 생존을 추구하는 생물만이 할 수 있는 활동이다. 지은이는 ‘생물학적 외재주의’ 입장에 서서 오늘날 만연한 ‘컴퓨터가 느끼고 생각하게 될 것’이라는 주장을 완전히 배격한다. 생물학적 감각 양태들을 지니지 않은 컴퓨터는 “뜻(감각) 없는 기계”에 불과하며, 인공지능은 인간지능의 복제본이 아닌 사유의 특성 일부를 모형화한 것에 불과하다. ‘인공지능’이 우리를 위협한다는 이야기는 “우리 자신의 폭력 환상을 우리가 발명한 기계들에 전이한 결과”다.

지은이는 인간은 진화를 통해 발생한 생물 종이지만, 생각감각 덕분에 자신이 누구인지 혹은 무엇인지를 두고 ‘인간상’을 그려왔다는 점에서 “동물이 아니기를 의지(意志)하는 동물”이라 말한다. “모든 인간들은 생각감각을 비롯한 공유된 감각들에 기초하여 근본적으로 동일한 방식으로 실재를 경험한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다른 누군가로 살면 어떠할지 상상하는 능력을 지녔다.” 탈근대가 가져온 다기한 혼란상 앞에서 지은이는 이 능력이야말로 바로 도덕의 원천이라고 주장하며 “조건 없는 보편주의의 나팔을 힘차게” 불겠다고 한다. “우리의 삶은 전혀 꿈이 아니며 오히려 우리 정신적 생물들의 매우 실재적인 생활임을 우리가 마침내 이해해야만 인간에게 더 나은 미래가 열릴 희망이 생긴다.”

최원형 기자 circl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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