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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돌봄과 가사노동, 함부로 대하는 세상 끝내려면

등록 2021-11-12 04:59수정 2021-11-12 09:49

‘여기, 노동이~’ 주부들 목소리 통해
그림자 노동 취급 현실 드러내

‘시간을 빼앗긴~’ 캐셔 노동 조명
사회에서도 여성 노동 가치 절하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여기 노동이 있다: ‘주부’ 그림자 노동 이어말하기
김나영 외 12명 지음 l 좋은땅 l 1만원

시간을 빼앗긴 여자들: 상상되지도, 계산되지도 않는 여성의 일과 시간에 대하여
이소진 지음 l 갈라파고스 l 1만6000원

여성들이 주로 맡는 노동들이 있다. 많은 경우 그 가치가 정당하게 평가받지 못한다.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기 때문에 여성들에게 맡겨지고, 여성이 담당하기 때문에 제대로 평가해주지 않는다. 여성들의 목소리를 직접 들어 이런 현실을 조명한 책 두 권이 나왔다.

<여기, 노동이 있다>는 가정에서 돌봄노동과 가사노동을 맡고 있는 30~40대 기혼 유자녀 여성 19명과의 인터뷰를 엮은 책이다. ‘돌봄국가책임제’를 추진하고 있는 진보당에서 기획하고 진보당 당원들이 인터뷰를 진행했다.

돌봄과 가사는 개인이 삶을 영위하고 공동체가 유지되는 데 무엇보다 필수적인 노동이다. 하지만 우리 사회에서 가장 가치 절하되고 있는 노동이기도 하다. ‘노동’이라고 불리지만, 그 노동이 가정에서 여성들에 의해 행해질 경우 대가는 전혀 없다. 사회는 ‘모성’을 찬양하는 척하지만 실제로는 ‘집에서 논다’고 폄하한다.

“큰아이와 어린이집 같이 다니는 아이 아빠였는데, 저한테 ‘논다’라는 표현을 하더라고요. 난 놀고 있지 않은데, 내 역할을 열심히 하고 있는데도 ‘논다’라는 말을 듣는다는 것 자체가 굉장히 불쾌했어요.”(두 아이를 기르는 전업주부) “언뜻언뜻 내가 돈을 벌었으면 좋겠다는 남편의 마음이 느껴질 때가 있어요. 그럴 때마다 나는 지금 뭐하고 있는 건가, 나는 지금 아무런 가치도 없는 일을 하고 있는 건가 싶어요. 남편한테 인정받으려면 일을 해서 금전적으로 딱 보여줘야 하지 않나.”(두 아이를 키우는 전업주부) “집안일 하고 식사를 준비하는 가사노동 하는 분을 뽑아도 월 300만원, 육아만 하는 사람을 뽑아도 월 150만원 넘게 줘야 할 텐데…. 그걸 제가 다 하고 있지만 아무도 가치를 인정해 주지 않고, 대우도 못 받고 있어요.”(두 아이를 양육하는 전업주부)

이들 중 많은 이가 ‘일하러 나가고 싶다’는 바람을 가지고 있지만 ‘경력단절’이라는 꼬리표, 끝나지 않는 육아와 가사의 부담이 발목을 잡는다. “제 주위에 보면 최종 학력이나 경력과 상관없이 여성들이 간간이 할 수 있는 아르바이트가 돌봄 쪽이에요. (…) 어느 정도 아이 키워놓고 사회에 나가려면 받아주는 것이 마트나 돌봄 관련 일터더라고요. 저도 공대 나왔는데 제가 돌봄노동을 하게 될지 몰랐죠. 아픈 아이를 돌보는 장애인 활동 보조 일을 하고 있어요.”(세 아이를 기르는 주부) “답답하죠. 내가 이런 일자리들(초단기 시간제 일자리)을 언제까지 전전할까? (…) 앞으로 어떤 일을 할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 그런데 (육아 때문에) 하루 8시간 일자리는 힘들 것 같아요. 결국엔 지금처럼 초단기 일자리들만 가능하겠죠?”(5살 아이를 기르는 주부)

인터뷰 내용들은 어찌 보면 새로운 게 크게 없는데, 그 사실 자체가 놀랍게 다가오기도 한다. 인터뷰어인 김나영씨는 인터뷰 후기에서 “20~30년 전 우리 엄마들의 모습이나 2021년 현재 우리들의 모습이나 달라진 점이 하나도 없다는 게 놀라웠다”며 “첨단시대니 인공지능이 어떠니 하는 요즘이지만 우리 여성들은 몇 년도 시대를 살고 있는 걸까요?”라고 말한다.

여성들은 이런 현실을 바꾸기 위한 대안들에 대해서도 의견을 내놓는다. “어렸을 때부터 돌봄을 배워야 한다고 생각해요. 생명에 대한 관점이 달라지고, 돌봄이 필수적이고 중요하다는 인식을 할 수 있을 것 같아요.”(5살 아이를 기르는 주부) “부부가 함께 육아를 할 수 있도록 남녀 모두에게 의무적으로 육아휴직을 쓸 수 있게 했으면 좋겠어요.”(두 아이를 기르는 여성단체 활동가) “부모들을 일찍 귀가시키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 남자도 일찍 퇴근하면 집안일을 할 수 있는 시간이 있잖아요. (…) 그러니까 노동시간을 줄여야 한다고 생각해요.”(두 아이를 기르는 전업주부)

진보당은 인터뷰에 덧붙인 정책 제안에서 국공립돌봄시설 확충, 노동시간 단축, 돌봄휴가, 주부국민연금지원, 돌봄수당 등을 제시했다. “돌봄과 가사노동을 함부로 대하는 세상, 우리 세대가 끝내야 다음 세대가 생존할 수 있을 거예요”라는 한 인터뷰 대상자의 말처럼, 저출산·고령화 대책은 돌봄과 가사에 대한 정당한 가치 인정에서부터 시작될 것이다.

<시간을 빼앗긴 여자들>은 ‘경력단절’을 겪은 중년 여성들이 많이 몸담는 대형마트 ‘캐셔’ 노동의 세계를 당사자들의 목소리를 통해 재구성한 책이다. 지은이는 이를 위해 4개월간 대형마트에서 아르바이트로 일하고, 40대 후반~50대 초중반의 여성 캐셔 노동자 7명과 심층 인터뷰를 했다.

가정에서 그림자 노동 취급을 받던 여성들의 노동은 가정 밖에서도 부차적 노동으로 취급된다. 주부 노동자는 생계를 책임지는 것이 아니라 ‘용돈벌이’를 하기 위해 노동시장에 나온 것으로 여겨지고, 이에 따라 저임금과 시간제 일자리가 주어진다. 선택지가 없는 중년 여성들은 어쩔 수 없이 이를 받아들인다. “이들의 일을 용돈벌이로 간주하는 것은 중년 여성의 일에 대한 가치 절하이며, 이들의 임금을 인상하지 않으려는 하나의 전략으로 해석해야 한다.” 또한 이들은 마트에서 일을 하면서도 가정 안에서의 가사와 돌봄 역시 여전히 자신의 몫으로 떠안는 모습을 보인다.

책은 노동시간 단축 정책이 캐셔 노동자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도 미시적으로 보여준다. 노동시간을 1시간 단축하기 위해 회사는 캐셔 노동자의 출퇴근 준비시간과 교대시간을 줄인다. 또 기존 캐셔 노동자의 지원이 필요한 초단시간 노동자와 셀프 계산대 투입을 늘린다. 결과적으로 노동자들의 노동강도는 강화되고 휴식시간은 줄어들었다. 여기에 근무 스케줄 공지도 늦어지면서 근무시간 예측이 더 어려워졌다. 결국 노동시간 단축으로 “생활에 더해져야 했던 한 시간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한 시간이 됐다”고 지은이는 분석한다. 안선희 기자 sh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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