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Book]
기후 변화와 인류 역사·문명의 관계 분석
진화, 농경 시작, 문명 성쇠 등에 큰 영향 미쳐
“온난화는 인위적 변화…인간 의지로 극복 가능”
기후 변화와 인류 역사·문명의 관계 분석
진화, 농경 시작, 문명 성쇠 등에 큰 영향 미쳐
“온난화는 인위적 변화…인간 의지로 극복 가능”
클립아트코리아, 그래픽 장은영 soobin35@hani.co.kr
기후는 어떻게 인류와 한반도 문명을 만들었는가?
박정재 지음 l 바다출판사 l 1만8000원 지구온난화 문제로 인해 ‘기후 변화’는 어느 때보다 많은 주목을 받고 있다. 사실 46억년 전 지구가 생긴 이래 기후는 끊임없이 변화해왔다. 인류가 탄생한 이후에는 인류의 삶을 규정하는 주요한 요인 중 하나이기도 했다. 다만 현재의 기후 변화는 자연이 아닌 인간에 의해 만들어지고 있다는 점이 다를 뿐이다. <기후의 힘>은 기후 변화가 인류와 문명의 역사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를 분석한 책이다. 인류의 진화, 농경 생활의 시작, 주요 문명의 융성과 쇠락 등 인류 역사의 주요 국면에서 기후 변화가 어떤 역할을 했는지 보여준다. 지구적 차원의 흐름 속에서 한반도 상황은 어떠했는지도 소개된다. 지구 공전 궤도 변화, 자전축 변동, 세차 운동, 태양 흑점 수 변화, 화산 폭발, 해양 순환 등 기후 변화의 원인들에 대한 이론적 설명도 주요하게 다뤄진다. 책이 다루는 시기는 주로 인류가 본격적으로 출현한 신생대 제4기, 플라이스토세(일명 ‘빙하기’, 약 260만~1만년 전)와 홀로세(1만년 전~현재)다. 첫 장면은 인류의 진화다. 가장 오래된 인류 조상으로 꼽히는 사헬란트로푸스 차덴시스, 오로린 투게넨시스 등이 아프리카에 등장한 때는 약 700만~600만년 전으로 지구의 한랭화가 시작되던 신생대 제3기 마이오세 말기였다. 당시 아프리카는 기후가 눈에 띄게 건조해지면서 환경이 빠르게 변하고 있었다. 숲은 줄어들었고 사바나 지역은 늘어났다. 숲의 주변부에서 살아가던 인류 조상 중 일부가 사바나 지대로 내려왔다. 이들은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직립보행을 시작하게 된다. 이후 호모속들은 직립보행으로 도구 사용이 가능해졌고, 동료와의 의사소통도 수월해졌다. 특히 제3기가 끝나고 시작된 빙하기의 혹독한 환경은 인간의 생존 본능을 더욱 자극해 뇌 기능의 향상과 언어 구사로 이어지게 된다. “인간의 뇌 발달은 결국 기후 변화가 인간의 직립보행을 유도하고 생존 본능을 일깨운 결과로 창출된 것이라 할 수 있다.” 인류사에서 가장 중요한 사건 중 하나는 농경생활의 시작이다. 최초의 농경은 1만2000년에서 1만년 전 사이 소위 ‘비옥한 초승달’이라고 불리는 서남아시아 지역에서 시작되었다. 이때 역시 기후가 급변하던 시기였다. 빙하기 말기인 영거드라이아스기가 끝나가던 1만1800년~1만1700년 전부터 기온이 급격하게 상승하기 시작했다. 온난화와 함께 기상 이변이 속출했다. 한 해에는 먹을거리가 넘쳐 났다가 다음 해에는 먹을거리를 구하기 힘든 상황이 반복됐다. 불확실한 앞날에 대비할 수 있는 유일한 해결책은 농경이었다. 빙하기가 끝나고 홀로세가 시작되면서 인류의 주된 경제활동은 수렵·채집에서 농경으로 바뀌어나간다. 홀로세는 전반적으로 기후가 온난·습윤하고 안정적이었다. 하지만 갑작스러운 기후 변화는 홀로세 기간에도 계속됐고, 그때마다 인간 공동체는 요동을 쳐야 했다. 8200년 전 일어난 단기 한랭기(8.2ka 이벤트) 때는 불과 20년 사이에 기온이 3.3도나 떨어졌다. 이 기후 이벤트는 한반도 생태계에도 흔적을 남겨, 우리나라 전라남도 비금도의 꽃가루 자료를 보면 8200년 전을 전후로 뚜렷한 식생 변화가 관찰된다. 이때 기후 악화는 동북아시아의 수렵·채집민이 한반도로 대거 남하하는 계기로도 작용했다. ‘홀로세 기후 최적기’(9000년~5000년 전)는 홀로세 중에서도 기온이 좀 더 높았던 시기다. 이때는 기후가 양호해지면서 건조한 곳에서도 사람들이 집단을 이루고 살아갈 수 있었다. 예를 들어 실크로드 통로에 위치한 타림 분지는 현재 사막지대로 황량한 곳이지만, 최적기에는 숲이 우거지고 사람들의 거주가 가능할 정도로 충분한 비가 내렸다. 최적기 후반부로 접어들면 곳곳에서 농경을 기반으로 하는 고대 문명들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하지만 4200년 전 대가뭄(4.2ka 이벤트)은 이 고대 문명들에 충격을 준다. 서남아시아에서는 대가뭄으로 강수량이 급격히 줄어들면서 관개농업이 큰 타격을 입었다. 제6왕조 이후 혼란에 빠져 있던 이집트 나일강 유역의 고왕국은 대가뭄의 여파로 결국 무너졌다. 중국 양쯔강 하류의 량주 문화와 산둥의 룽산 문화는 대규모 홍수로 큰 피해를 보았다. 가뭄으로 식생의 밀도가 감소하면 홍수의 강도도 커지기 때문이다. 지은이는 “4200년 전의 사회 격변은 기후 변화가 인간 사회를 파괴하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음을 드러낸 사례라고 할 수 있다”고 말한다. 지은이는 우리나라 선사시대의 대표적 문명인 송국리 문화가 2300년 전 갑작스럽게 사라진 것도 2800년 전과 2400~2300년 전 한반도에서 발생한 두 차례의 큰 가뭄 탓이었을 것이라고 추정한다. 최근 1000년간에도 기후변화는 계속됐다. 중세 온난기(기원후 900~1400년)에는 기온이 따뜻해지면서 빙산이 사라지고 북대서양 해수면 온도가 상승했다. 하지만 소빙기(1400년~19세기말)가 시작되면서 북반구 대부분 지역의 평균 기온은 하락하기 시작한다. 1600년대에는 프랑스 샤모니 빙하가 확장하면서 대홍수가 발생했다. 유럽 전역에서 밀과 같은 작물의 생산량이 감소하면서 기근이 들고 전염병이 유행했다. 한반도에서도 17세기 후반 경신대기근, 을병대기근이 발생한다. 마지막으로 지은이가 다루는 시기는 현재, 즉 ‘지구 온난화’ 시기다. 일각에서는 지구 온난화는 과거부터 있었던 기후 변화의 일종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하지만 지은이는 “우리의 우려를 낳고 있는 지구 온난화는 인위적으로 발생한 변화다. 이전의 소빙기나 4.2ka 이벤트 등과 같은 자연적인 기후 변화와는 형성 원인 측면에서 상이하다”고 단언한다. 하지만 지은이는 이런 성격 때문에 지구 온난화 문제가 더 해결 가능하다고 낙관한다. “자연적으로 나타나는 기후 변화는 우리가 어찌 손쓸 방법이 없지만 지구 온난화는 다르다. 우리의 의지 여부에 따라 충분히 극복 가능하다”는 것이다. 안선희 기자 sh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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