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 목사가 자신이 모은 십자가가 전시되어 있는 영등포 도림장로교회 갤러리에서 인터뷰를 마친 뒤 사진을 찍고 있다. 강성만 선임기자
“한반도는 휴전선이 가로축인 세계에서 가장 큰 십자가입니다. 언젠가 디엠제트(비무장지대) 생태평화공원에 박물관을 세워 제가 모은 십자가를 전시하고 싶어요.”
송병구(60) 경기 의왕 색동감리교회 담임목사는 독일 한인교회에서 사목하던 1994년부터 십자가 수집에 나서 지금껏 1천 점 이상 모았다. 이 십자가들은 2009년부터 김포 고촌교회 갤러리에서 상설 전시되고 있으며 2년 전에는 서울 영등포 도림장로교회에도 따로 전시실을 마련했다. 그는 2005년부터 십자가 전시회도 매년 몇 차례씩 열고 있다. 십자가 연구에도 힘을 쏟아 2005년에 저술한 <십자가, 168개 상징 찾아가기>는 일본어로도 번역 출간됐다.
송 목사는 최근 빵과 소금, 어린양, 소, 비둘기, 올리브 등 성경 속 익숙한 표제어 32개의 상징적 의미를 살핀 책 <상징-성경을 보는 눈을 뜨다>(kmc 펴냄)를 펴냈다. 지난 20일 도림장로교회 전시실에서 저자를 만났다.
송 목사가 베를린 장벽 철조망으로 만든 십자가를 가리키며 제작 경위 등을 말하고 있다. 강성만 선임기자
1994년부터 8년 동안 독일 복흠·지겐 한인교회 담임으로 사역했던 송 목사는 십자가 수집에 나선 이유를 이렇게 밝혔다. “기독교 국가인 독일에 왔으니 기독교 문화와 예술을 배우자는 마음에서 시작했어요. 처음엔 거룩성을 소중히 여겼고 미적 아름다움에도 관심이 있었으나 나중에 보니 세계 십자가에 공통점이 있더군요. 고난과 아픔 속에서 아름다움이 드러난다는 거죠. 그게 진정한 거룩함입니다.” 그가 수집품 중 독일 슈바르츠발트 지역 골동품점에서 구한 ‘팔 없는 십자가’에 유독 마음이 끌린 것도 이 때문이다. “지역 전통 십자가인데 보자마자 감동했어요. 사람들은 그 십자가를 보며 ‘내가 주님의 팔이 되자’고 생각한다는군요. 주님을 도와 어려운 이들을 돕고 위로하는 삶을 살자고요.”
도대체 십자가의 의미가 뭐기에 연구와 수집에 힘을 쏟는 걸까? “십자가의 길을 가는 기독교도의 삶을 성찰하자는 거죠. 십자가가 우리에게 요구하는 게 있어요. ‘성경’의 누가복음 9장 23절은 ‘날마다 네 십자가를 져라’고 합니다. 가난한 이나 구직자나 저마다 십자가는 달라요. 하지만 십자가 안 하나님 사랑의 품은 넓어요. 그러니 같이 품고 연대하고 동행하고 보살피면서 가야죠.” 그는 ‘네 십자가를 져라’는 말에는 “지극히 작은 한 사람에 대한 관심을 놓쳐서는 안 된다”는 뜻도 담겼다고 했다. “십자가는 하나님의 극진한 사랑이죠. 그 사랑이 아픔과 비참, 고난으로 표현됩니다. 십자가에 이르는 길은 천차만별입니다. 사람마다 고난이 다양하니까요.”
그는 2005년 첫 십자가 전시회를 열면서 ‘십자가 연구자’로 다시 태어났단다. “전시 기사에 ‘십자가는 있지만 한국 교회에 십자가의 삶은 보이지 않는다’는 댓글이 있더군요. 그걸 보며 우리 사회가 경건의 문화에 굶주렸다는 생각이 들었죠. 그때부터 본격적인 십자가 연구와 수집가의 삶을 살게 되었죠.”
도림장로교회 전시실에는 송 목사가 통독 이전 분단의 상징이었던 베를린 장벽 철조망을 다섯 조각 구입해 현지인 교사에서 맡겨 제작한 십자가도 있다. 볼트와 너트로 두 사람이 철조망을 기어오르는 형상을 표현한 것으로 한반도 분단 극복을 바라는 염원이 담겼다.
‘상징-성경을 보는 눈을 뜨다’ 내
빵·소금·비둘기 등 표제어 32개
감신대 시절 독재퇴진 시위로 옥고
“목회 통해 정의·평화정신 지키고자”
1994년 독일서부터 십자가 천여점 수집
“가장 큰 십자가 ‘휴전선’에 박물관을”
감리교신학대 3학년이던 1983년 전두환 정권 퇴진을 요구하는 학내 시위를 이끌다 옥고도 치렀던 송 목사는 “학생 때 가졌던 정의와 평화를 추구하는 정신을 36년째 목회를 통해 지켜오고 있다”고 했다. “목회자로서 제 소명은 화해와 평화입니다. 사실 ‘성경’의 주제도 평화로운 삶이죠. 한국 교회가 지금보다 더 평화 교육에 관심을 가졌으면 합니다.” 그는 독일 체류 8년 중 6년을 재독한인교회협의회 통일위원장으로 일했다. 1989년에는 ‘고난받는 이들과 함께 하는 모임’을 만들어 비전향장기수 등 양심수 지원 활동을 해왔다. 지난해는 이 단체 이사장도 맡았다.
송 목사가 문수산성교회 개척에 나선 1985년 처음 만든 십자가. 송병구 목사 제공
그는 십자가 수집을 두고 한국 교회를 위한 자신의 소명이라는 말도 했다. “저의 십자가 컬렉션을 한국 교회 유산으로 남기고 싶어요. 사실 절에 가면 늘 부러웠어요. 문화유산이 수천 년 동안 간직되고 있잖아요. 2013년 부산에서 열린 세계교회협의회 총회 때 ‘한국 대표 십자가가 뭐냐’는 질문을 외국 분들에게 받았는데 답이 떠오르지 않더군요.”
그는 김포에서 문수산성교회를 개척하던 만 24살에 처음 십자가를 직접 만들었다. “문수산 은사시나무로 만든 십자가 위에 휴전선 인근 마을에서 구한 녹슨 철조망을 십자가로 만들어 덧댄 이중 십자가”였단다. 그가 2010년 두 번째로 개척한 색동감리교회에는 ‘춤추는 십자가’가 있다. “굽은 나무가 선산을 지킨다고 하잖아요. 태백산맥 다릅나무로 한국적 춤사위를 형상화해 고난을 기쁨으로 표현했죠.”
그가 최근작에서 ‘성경’ 속 상징을 살핀 것도 십자가 연구와 맞닿아 있단다. “십자가를 모으고 5~6년쯤 지나면서 십자가 상징 이미지도 모았어요. 사실 십자가 상징은 선교회나 봉사단체, 농민회, 평화운동단체 등이 하는 실천 활동과 다 연결되어 있어요. 적십자나 병원, 약국은 물론 공사장 안전모에까지 십자가가 있잖아요. 십자가가 아직도 살아있는 거죠. 우리는 지금 사건을 통해 십자가의 삶을 살고 있어요.”
그는 ‘성경’ 표제어 5천개 중 가장 일상적으로 접하는 32개를 뽑아 그 상징을 풀었다. 예컨대 비둘기와 올리브, 무지개는 공통으로 신과 인간의 화해를 뜻하는 대표적인 평화 상징이다. ‘노아의 방주’에 갇힌 인류가 대홍수를 내린 하나님의 진노가 풀렸다는 사실을, 비둘기가 올리브 잎을 물고 돌아오는 모습을 보고 알아차렸기 때문이다. 큰비 뒤에 뜨는 무지개도 마찬가지다.
그는 동물 중에서 말은 로마 군대의 폭력을, 소는 모든 것을 내어주는 희생을 상징한다면서 예수 탄생의 증인이 가난한 농부의 일꾼인 나귀와 소인 것도 이 때문이라고 했다.
“예수님은 문자에 머물지 않고 빵이나 소금 등 비유 언어를 많이 썼어요. 세상의 소금이 되라고 할 때 소금은 부패도 막고, 사람 사이에 맛을 내어 화목하게 하는 존재가 되라는 뜻이죠. 상징은 모든 사람이 깨닫도록 하는 예수님의 전문방식입니다. 문자에 갇혀선 그 풍부한 의미를 알아차릴 수 없어요. 신앙의 힘은 상상력이죠. 교회가 세상과 소통하기 위해서도 그 상징을 알아야죠. 예수님의 실제적이면서도 상징적인 언어는 지금도 우리에게 말을 걸고 있고 행동하는 단체들은 그 상징으로 사람들과 소통하고 있죠.”
강성만 선임기자 sungma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