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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탐욕스러운 일자리’가 성별 소득격차 키운다

등록 2021-10-15 04:59수정 2021-10-15 17:26

[한겨레book]

일의 밀도 높고 경쟁 치열한 ‘탐욕스런 일자리’ 고소득 보장
육아 등 돌봄이슈에…부부 중 ‘누가 고소득 일자리에서 일할 것인가’
같은 능력 남녀 가정내 성별분업 귀결…탐욕스런 노동구조 바꿔야
남녀 임금격차는 채용 단계에서의 차별, 상대적으로 임금이 낮은 직종이나 비정규직에 여성이 더 많이 종사하는 현실, 경력단절, 직장 내 유리천장 등 다양한 요소가 원인으로 작용한다. 사진은 2018년 5월18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임금차별 타파의 날’ 시위 모습. <한겨레> 자료 사진
남녀 임금격차는 채용 단계에서의 차별, 상대적으로 임금이 낮은 직종이나 비정규직에 여성이 더 많이 종사하는 현실, 경력단절, 직장 내 유리천장 등 다양한 요소가 원인으로 작용한다. 사진은 2018년 5월18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임금차별 타파의 날’ 시위 모습. <한겨레> 자료 사진

커리어 그리고 가정
평등을 향한 여성들의 기나긴 여정
클라우디아 골딘 지음, 김승진 옮김 l 생각의힘 l 2만2000원

지난달 여성가족부가 발표한 자료를 보면 지난해 우리나라 상장법인 노동자 1인당 평균 임금의 성별 격차는 35.9%였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최고 수준이다. 하지만 다른 나라들 역시 성별 임금 격차 문제를 완전히 해소하지는 못하고 있다. <커리어 그리고 가정>은 클라우디아 골딘 하버드대 경제학과 교수가 현재 미국 사회에서 나타나고 있는 성별 소득 격차(임금격차)의 양상을 보여주고 그 원인을 분석한 책이다.

지은이의 논의를 따라가기 전에 연구의 성격과 책 제목에 있는 두 용어의 정의를 알아둘 필요가 있다. 지은이는 이 연구가 ‘대졸 여성’에게 초점을 맞추고 있다고 밝히고 있다. 분석의 상당 부분은 대졸 여성 중에서도 고학력·고소득 여성에 할애된다. 또한 성별 소득 격차의 원인으로 지적되는 여러 문제들 중에서도, 같은 직종 안에서 발생하는 요인들에 집중하고 있다. ‘가정’(family)은 이 책에서 아이가 있는 경우를 의미한다. ‘커리어’(career)는 단순히 고용 상태에 있거나 일자리를 가지는 것을 넘어 “생애에서 장기적으로 지속되며 당사자가 열망하고 추구하는 종류의 일에 고용된 상태로, 그 직업이 무엇인지가 그 사람의 자아 정체성을 구성하는 데 큰 부분을 차지하는 경우”를 가리킨다.

미국의 대졸 여성들은 20세기 초부터 현재까지 100여년에 걸쳐 커리어와 가정을 함께 이루기 위해 길고 힘든 여정을 지나왔다. 현재의 “대졸 여성들은 두 영역 모두에서 성공하고 싶어 한다.” 실제 그들은 목표를 거의 달성한 듯 보인다. 2020년 기준 미국 25살 여성 중 45%가 4년제 대학을 졸업했거나 졸업을 앞두고 있다. 남성은 36%에 그친다. 2008년 금융위기 직전 기준 대졸 여성 중 23%가 법학전문석사(JD), 박사(Ph.D), 의학전문석사(MD), 경영학전문석사(MBA) 학위를 받았다. 또한 더 많은 대졸 여성이 아이도 낳고 있다. 오늘날 40대 중후반 대졸 여성의 거의 80%가 아이가 있다.

하지만 커리어와 가정 사이에는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문제가 있다. 한 부부가 결혼 초기 같은 직종에서 같은 수준의 소득을 얻고 있다고 가정해보자. 아이가 태어나면 한 가지 과제가 생겨난다. 누가 집안 일에 대해 ‘온콜’(on-call, 긴급 호출에 지체 없이 대응할 수 있는 상태) 임무를 맡을 것인가? 아이에게 급한 일이 생겼을 때 누가 바로 사무실을 떠나 집으로 올 것인가? 부부 간에 5대 5로 분담한다면 공평할 것이다. 하지만 그 공평성에 대한 비용은 아주 크다. 바로 ‘탐욕스러운 일자리’(greedy work) 때문이다. 이는 “가차 없는 밀도로 불규칙한 일정에 대응해 가며 장시간 일할 것을 요구하고, 그 대가로 높은 보수를 지급”하는 일자리다. 야간 근무, 주말 근무를 계속 하며 시간을 일에 쏟아부으면 훨씬 많은 소득을 올릴 수 있다. 전문직, 경영직 같은 고소득 직업은 많은 경우 ‘탐욕스럽다.’ 부모 모두가 탐욕스러운 일자리에 있을 수는 없다. 누군가 온콜 임무를 맡아야 하기 때문이다. 둘 다 온콜 임무를 맡으면 가구 소득이 크게 줄어든다. 결국 한 사람은 탐욕스러운 일자리에, 다른 한 사람은 노동시간이 짧고 근무 일정도 조정할 수 있지만 보수는 적은 ‘유연한 일자리’에 머무는 ‘분업’을 하게 된다. 여전히 남아 있는 성역할 고정관념 탓에, 대부분 경우 전자는 남성이 되고, 후자는 여성이 된다. 그리고 이런 분업은 동일한 출발선에서 일을 시작한 남녀가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소득 격차가 커지고 커리어에서도 차이가 나게 되는 주요한 원인이다. 부부간 공평성은 깨지고 “성평등도 함께 버려진다.”

지은이는 변호사업계를 한 예로 든다. 로스쿨 졸업 후 5년이 지난 시점에는 80%의 여성과 90%의 남성이 주당 45시간 이상 일한다. 큰 차이가 없다. 10년이 지나면 여성의 4분의 1이 파트타임으로 일하고 16%는 노동시장을 떠난다. 남성은 2%만 파트타임으로 일하고 2%만 노동시장을 떠난다. 졸업 후 15년이 되면 남성 변호사는 80% 정도가 주당 45시간 이상 일하는데 여성은 55%만 그렇다. 그 결과 졸업 후 15년 시점에 여성 로스쿨 졸업자는 남성이 버는 것의 56%를 번다. “매우 고학력인 여성도 남성만큼 커리어의 진전을 이루는 데 여전히 고전하고 있는 근본적인 이유 하나가 우리 눈앞에 명확하게 드러났다. 아동 돌봄, 노인 돌봄, 가족 돌봄을 여성이 압도적으로 많이 떠맡아야 하는데 직장의 일은 탐욕스러운 구조여서 가장 많은 일을 하는 사람이 가장 많은 것을 얻게 되어 있다.”

지은이는 두 가지 해법을 제시한다. 하나는 노동시장의 구조를 바꾸는 것이다. 탐욕스러운 일자리에 높은 임금을 주지 않고, 유연한 일자리가 더 생산적이 되게 만들어 많은 보수를 받을 수 있게 하는 것이다. 또 하나는 국가가 아동 돌봄 서비스를 더 적극적으로 제공해 부모의 육아 부담을 덜어주는 것이다. 지은이는 “앞으로 갈 길의 토대를 다시 깔려면 노동과 돌봄의 시스템 자체가 재사고되어야 한다”고 지적한다. 남성들의 역할도 강조된다. “남성들이 직장에서 맹렬하게 달려드는 것을 줄이고, 다른 남성 동료들이 육아 휴직을 갈 때 지원해 주고, 아동 돌봄을 보조하는 정책에 투표를 하고, 가정이 그들의 일보다 더 가치 있을 수 있다는 점을 자신의 회사에 알려서 회사가 탐욕스러운 노동 구조를 바꾸도록 압력을 넣어주어야 한다.”

책의 분석 대상이 미국 사회인 탓에 우리나라 상황과 차이가 나는 부분도 적지 않다. 하지만 여성들이 커리어와 가정을 동시에 추구하려고 할 때 부딪히는 현실적 문제의 구조는 미국과 한국이 크게 다르지 않고 그 해법 또한 쉽지 않음을 확인시켜주는 책이다.

안선희 기자 sh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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