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tecruz Foto/Flickr, CC BY-SA, 그래픽 장은영 soobin35@hani.co.kr
지속 불가능 자본주의
기후 위기 시대의 자본론
사이토 고헤이 지음, 김영현 옮김 l 다다서재 l 1만6000원
눈앞에 닥친 기후 위기에 더해, 전지구를 덮친 코로나19 대유행은 자본주의 체제가 약속해온 ‘무한한 성장’ 신화를 뒤흔들고 있다. 초점은 ‘탈성장’으로 옮겨지고 있다. 끝없는 경제성장은 옳지도, 가능하지도 않으며, 이를 멈춰야 사회적 모순과 생태적 모순을 함께 극복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여기에 또 하나의 도전적인 물음이 꼬리를 문다. 과연 이 자본주의 체제를 그대로 둔 채 탈성장이 가능한가?
젊은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자 사이토 고헤이 일본 오사카시립대 교수가 쓴 <지속 불가능 자본주의>(일본어 원저 제목은 ‘인신세의 자본론’)는 “자본주의 체제를 없애야 탈성장이 가능하다”며 ‘탈성장 코뮤니즘’을 주창한다. 이 책은 지난해 일본에서 출간되어 40만부 넘게 팔리는 등 청년층을 중심으로 큰 호응을 얻었고, 보수적인 일본 정치권이나 대기업에서도 여러 차례 인용되거나 언급됐다. 탈성장뿐 아니라, 마르크스, 자본론, 코뮤니즘 같은 ‘급진적’인 열쇳말을 내세우고도 이처럼 큰 반향을 일으킨 것은 이례적인 현상으로 받아들여진다. <한겨레>는 이 책의 한국어판 출간에 맞춰 지은이와 서면 인터뷰를 진행했다.
기후 변화에 따른 전지구적 재앙을 막기 위해선 2100년 평균 기온이 산업혁명 이전에 견줘 1.5도 이상으로 상승하지 않도록 억눌러야 한다. 이를 위해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2030년까지 절반 가까이 줄이고, 2050년까지는 순배출량을 0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것은 과학적으로 제시된 사실이다. ‘녹색성장’(그린뉴딜)으로 대표되는 주류적 흐름인 ‘기후 케인스주의’는, 재생에너지 등에 대규모 투자를 하면 성장을 하면서도 기후 위기를 피할 수 있다는 태도를 취한다. 반면 탈성장주의자들은 경제성장과 기후 위기 극복은 양립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을 2~3%로 유지하면서 ‘기온 1.5도 미만 상승’ 목표를 달성하려면 당장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해마다 10%씩 줄여야 하는데, 경제 규모 자체를 줄이지 않고 환경 부하를 줄이는 방법은 없다는 것이다.
기후행동추적(Climate Action Tracker)의 ‘2100 온난화 예상’(2100 warming projections)(2018년). 출처 기후행동추적
옥스팜(Oxfam)의 ‘극단적인 탄소 불평등’(Extreme Carbon Inequality)(2015년). 출처 옥스팜
지은이는 여기서 한걸음 더 나아가, “지금까지 논의된 탈성장은 자본주의와 얼마나 대치하는지 모호했다”고 비판한다. “이윤을 획득함으로써 경제를 성장시키는 것”을 본질로 삼는 자본주의 자체를 멈추지 않는 한 탈성장은 불가능하며, 이 문제를 직시하지 않는 탈성장 담론은 ‘둥근 삼각형’을 그리듯 실현불가능한 공상에 그칠 뿐이라는 주장이다. “세르주 라투슈로 대표되는 오래된 탈성장론은 좌파도 우파도 아닌 대안을 찾으려 했고, 보편적 관심사로 ‘자연’만 앞세울 뿐 자본주의 극복을 목표하지 않았다.” 코로나 팬데믹 상황에서 초부유층 자산이 더 급증한 데에서 보듯 “현재 경제 시스템을 유지한 채 탈성장을 하면 격차는 오히려 확대될 것”이고, 자본주의라는 틀 안에서 탈성장을 말하는 것은 “어쩔 수 없이 ‘정체’나 ‘쇠퇴’ 같은 부정적인 인상에 사로잡히고 만다”고도 지적한다. 임금 노동과 자본의 관계, 사적 소유, 시장의 이윤 획득 경쟁 등 자본주의 체제의 근본을 바꾸는 것을 핵심으로 삼아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렇게 “더욱 근본적이고 급진적인 자본주의 비판을 받아들인” ‘신세대의 탈성장론’이 바로 탈성장 코뮤니즘이다. 지은이는 카를 마르크스(1818~1883)의 ‘코먼’(common. 흔히 ‘공통장’, ‘공유지’ 등으로 번역된다)에 대한 사유, 그리고 그가 만년에 매진했던 생태학 및 공동체 연구에 주목한다. 일반적으로 마르크스 역시 ‘생산력을 키워 기술을 발전시키면 무한한 부(富)를 소비할 수 있다’는 식의 ‘생산력 지상주의’에 갇혀 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유럽 근대화를 기본 모델로 삼는 ‘유럽중심주의’ 태도도 문제적이라 지적된다. 그러나 연구 노트까지 담고 있는 ‘마르크스 엥겔스 전집’(MEGA)을 깊이 연구한 지은이는, 마르크스가 “자연과학 연구를 통해 인간이 자연환경으로부터 얼마나 제약을 받고 있는지 인식하며 ‘생산력 지상주의’에서 탈출했고, 비유럽 사회의 공동체들을 연구하면서 ‘유럽중심주의’에서도 벗어났다”고 분석한다. 마르크스는 <자본> 1권 발간(1867) 전부터 토양의 양분이 순환되지 못하는 문제(유스투스 폰 리비히의 ‘약탈 농업’) 등 자연과학 연구를 통해 자본주의 체제의 ‘지속가능성’ 문제를, 또 만년에 러시아의 사회주의자 베라 자술리치에게 보낸 편지(1881)에서 드러나듯 비서유럽 공동체들에 대한 연구를 통해 부를 평등하게 공유함으로써 지속가능성을 확보하는 ‘사회적 평등’ 문제를 치열하게 고민했다는 것이다.
자본주의는 과거 사람들이 공유하던 물이나 토지, 지식 같은 ‘코먼’을 해체하고, 이곳에 울타리를 치고 인공적인 희소성을 늘려 사람들로 하여금 무한한 가치 증식에 매달리도록 만들었다. 생산력 지상주의에서 벗어난 마르크스가 최종적으로 추구한 코뮤니즘은 이처럼 자본주의가 해체해버린 ‘코먼’을 되찾는 것으로, ‘지속가능성’과 ‘평등’을 두 가지 핵심 축으로 삼았다는 것이 지은이의 주장이다. 이에 따라 <고타 강령 비판>(1875)에서 마르크스가 언급한 미래 사회에 “넘쳐흐르는 부”는, 일반적으로 알려진 것처럼 사용가치를 무한히 증식하는 것이 아니라 주어진 부를 “사회적으로 공유하고 민주적으로 관리”할 때 누릴 수 있는 ‘근본적인(radical) 풍요’로 되새겨야 한다고도 말한다.
지은이는 교환가치가 아닌 사용가치를 중시하는 경제로의 전환, 노동시간의 단축, 획일적인 분업 폐지, 돌봄과 같은 노동집약적 필수노동의 중시 등을 탈성장 코뮤니즘을 실현하기 위한 다섯가지 조건으로 꼽는다. 또 이미 참여민주주의 확대와 ‘식량주권’ 운동 등 이를 실천에 옮기며 자본주의에 제동을 걸고 있는 ‘글로벌 사우스’(자본주의 세계화에 따른 피해가 집중된 지역)의 사례들로부터 배우고 실천하자고 제안한다. “‘인신세’(인류세)라는 환경 위기의 시대에 자본주의와 맞서서 지금과 전혀 다른 사회를 만들어내려 하는 운동은 필연적으로 탈성장 코뮤니즘을 지향하게 마련이기 때문”이다.
전지구적으로 젊은 세대가 자본주의 비판과 탈성장 담론을 주도하고 있는데, “일본에선 ‘탈성장 대 경제성장’이라는 인류의 생존을 건 대립이 경제적으로 유복한 ‘단카이’(團塊) 세대 대 가난한 취업 빙하기 세대의 대립으로 축소되고 말았다”는 지적이 인상 깊다. 한국의 ‘86’ 세대와 ‘엠제트’(MZ) 세대의 갈등도 겹쳐 보인다. 유독 일본의 젊은 세대에서 자본주의에 대한 의문이나 비판이 그리 크지 않은 이유에 대해, 지은이는 “자본주의를 대체할 사회를 상상하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이대로 자본주의가 계속된들 밝은 미래는 오지 않으며 어른들이 벌인 일을 뒤처리하게 될 뿐이라는 예상에 젊은 세대는 절망하고 분노한다.” 그리고 이들이 “상상력을 널리 퍼뜨리려면 이론이 필요하다.”
최원형 기자
circle@hani.co.kr
사이토 고헤이 일본 오사카시립대 교수. ⓒ Igarashi Kazuhiro
마르크스주의적 관점에서 탈성장 논의를 전개한 <지속 불가능 자본주의>(일본어 원저 제목은 <인신세의 자본론>)는 일본에서 30만부가 팔리며 베스트셀러에도 올랐다.
—일본 사회에서 ‘그린 뉴딜’과 같은 기후변화에 대응하는 정치경제적 기획에 대해 원래 관심이 큰 편이었는지 궁금합니다.
“아쉽지만 현재 일본은 기후 변화에 대한 관심이 매우 낮습니다. 그 때문에 일본에서는 ‘지속가능발전목표’(SDGs)가 무척 유행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실상은 개인 수준에서 ‘에코백과 텀블러를 쓰고 음식을 남기지 맙시다’ 하는 정도에 그치고 있습니다. 이 책에서 주장하는 것은 그런 개인적 노력만으로는 의미가 없으며 기업과 정부의 책임을 명확히 밝히고, 지구의 미래보다 이익을 우선하는 자본주의 시스템 그 자체를 발본적으로 바꿔야 한다는 것입니다.”
—교수님의 저작은 그 한계를 지적하는 ‘탈성장’ 논의로까지 나아갈 뿐 아니라 자본주의 해체에 이르도록 하는 마르크스주의적 관점(코뮤니즘)에 기댄다는 측면에서 매우 급진적인 입장으로 보여집니다. 이처럼 급진적인 논의임에도 큰 호응을 얻었던 이유는 어디서 찾을 수 있을까요?
“분명히 제 제안은 ‘과격’하지만, 코로나19 팬데믹 같은 심각한 문제와 마주하며 수많은 사람들이 깨달은 것입니다. 현재 정치가와 기업이 하는 정도의 환경 대책은 그저 눈속임에 지나지 않는다고 말입니다. 그리고 문제를 방치하면 결국 가장 먼저 내버려지는 건 약자라는 사실도 팬데믹 상황에서 명백해졌습니다. 그래서 지금 우리에게는 코로나19 팬데믹에서 분명히 드러난 격차와 환경 파괴에 대해 동시에 맞설 수 있는 해결책이 필요한 것입니다.”
아직 국내총생산(GDP) 성장을 전제로 하지 않은 탈성장 기획은 어떤 국민국가에서도 내세우지 않고 있다. 다만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는 2019년 '유럽 그린딜'을 내놓으면서 "무한정한 경제성장이라는 도그마를 종식"하자는 제안을 하는 등 기존 정치세력의 생태 관련 기획에서도 탈성장의 필요성을 의식하는 분위기도 느껴진다.
—현재 전지구적으로 탈성장론이 어느 정도의 지지를 받고 어느 정도의 영향력을 얻고 있는지, 또 그 안에서도 어떤 방향의 기획들이 모이거나 대립하고 있는지 등 교수님께서 탈성장론의 전반적인 지형을 어떻게 보고 계시는지 궁금합니다.
“유럽과 미국을 중심으로 탈성장론이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경제 성장을 추구하는 한 시장 규모 확대에 따라 자원과 에너지 소비량이 늘어날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에너지 절약과 리사이클 같은 수단이 있다고 해도, 2050년까지 탈탄소화를 목표한다면 경제 성장은 걸림돌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보다 선진국은 노동 시간을 줄이고, 소비 활동 외에 지역 공동체에서 이뤄지는 스포츠와 예술 같은 활동을 지원하여 사람들의 행복도를 높이는 길을 찾아야 합니다.”
—탈성장 코뮤니즘의 경우 어떤 측면에서 가장 차별화되는지, 그런 차별화된 논의가 필요한 이유에 대해 여쭙고 싶습니다.
“지금까지 논의된 탈성장은 자본주의와 얼마나 대치하는지가 모호했습니다. 하지만 기후 위기에 도전하기 위해서는 자본주의를 발본적으로 바꿔야 합니다. 또한 현재 경제 시스템을 유지한 채 탈성장을 하면 오히려 격차는 확대되어 버립니다. 탈성장을 하게 된다면 지금 있는 ‘부(富, wealth)’를 다 함께 더 공유(share)해야 할 것입니다. 이런 것이 제가 말하는 ‘커먼(common, 공공재)’의 사고방식이며, 그런 커먼에 기초한 사회가 ‘코뮤니즘’입니다.”
(옮긴이 주: 현재 경제 시스템에서 탈성장을 하면 경제 격차가 확대된다는 사실은 코로나 팬데믹이라는 이례적인 경제 침체 상황에서 전 세계 초부유층의 자산이 단기간에 기록적으로 증대한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결국 ‘커먼’의 확대와 함께하지 않는 탈성장은 경제 격차를 줄일 수 없으며, 그래서는 부유층이 주도하는 이산화탄소 배출도 줄일 수 없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반대로 코뮤니즘의 역사적이거나 시대적인 맥락에서도 탈성장 논의가 꼭 필요한 이유와 배경에 대해서도 간략한 정리를 부탁드리고 싶습니다.
“지금까지 마르크스주의는 사회주의를 실현하면 더더욱 경제 성장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해왔습니다. 하지만 새로운 마르크스 엥겔스 전집(MEGA·이하 ‘메가’)’ 덕에 만년의 마르크스 사상을 재해석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 책에서 저는 그 재해석 결과 마르크스가 만년에 탈성장을 받아들였다고 주장합니다. 즉, ‘탈성장 코뮤니즘’은 중국이나 소련과 완전히 다른 것입니다. 탈성장 코뮤니즘이 목표하는 것은 경제 성장 주의에 빠지지 않고 지금 있는 ‘부’를 더욱 민주적인 방법으로 관리하는 것입니다.”
책 속에서 지은이는 일본 밖에서는 젊은 세대들이 ‘좌파 포퓰리즘'을 지지하는 경향이 커지고 있지만 일본 내부에서는 그렇지 못하다는 사실을 짚는다. 또 그 배경 가운데 하나로 구세대로서 ‘단카이' 세대에 대한 취업 빙하기에 놓은 젊은 세대(MZ·이하 엠제트 세대)의 반감이 있다고도 지적한다. 이는 한국에서 80년대 사회운동의 주된 세력이었던 ‘86세대'에 대한 ‘엠제트’ 세대의 반감을 떠오르게 한다.
—일본에서 단카이 세대가 주도한 탈성장론은 어떤 것이며, 어떤 영향을 낳았다고 볼 수 있을까요?
“한국에도 책이 출간된 우에노 지즈코와 우치다 다쓰루는 ‘일본은 더 이상 경제 성장을 하기가 어려우며 앞으로는 완만하게 쇠퇴해야 한다’는 취지의 발언을 했습니다. 하지만 현재 70세가 넘은 그들은 일본의 고도 경제 성장과 거품 경제의 덕을 톡톡히 보았던 세대입니다. 그런 이들이 일선에서 물러난 뒤에 ‘더 이상 성장할 수 없으니까 다들 힘내봐.’ 하는 식으로 읽힐 수 있는 발언을 해버렸고, 일본에서 ‘로스트 제너레이션’이라 불리는 취업 빙하기 세대는 그런 발언에 강하게 반발했습니다. 그 결과 일본에서는 탈성장에 대한 인상이 나빠졌습니다. 다만, 이 책은 취업 빙하기 세대보다 더욱 어린 세대가 탈성장을 제기하여 새로운 바람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옮긴이 주: 일본의 취업 빙하기 세대-잃어버린 세대 또는 로스트 제너레이션-란 거품 경제가 붕괴하고 약 10년 동안 구직 활동을 한 세대를 가리킨다. 대략 1970~1982년에 태어난 사람들이 해당하며, 1987년생인 사이토 고헤이는 그들보다 다음 세대다.)
—다른 나라와 달리 일본의 젊은 세대에서 자본주의 시스템에 대한 의문이나 비판이 그리 크지 않은 이유는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까요?
“자본주의를 대체할 사회를 상상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상상력을 널리 퍼뜨리려면 이론이 필요합니다. 저는 이 책을 쓰면서 젊은이들이 자본주의에 의문을 품는 계기가 되길 바랐습니다.”
—한국 학계와의 교류도 활발히 해오신 것으로 아는데, 혹시 일본과 비슷하면서도 다른 한국의 상황에 대해 알고 계신 것이 있다면, 이에 대한 의견도 부탁드리고 싶습니다.
“저와 알고 지내는 한국 학자 중에는 민주화 운동 세대인 분도 있습니다. 지금 활발히 활동하는 세대에 그처럼 사회를 근본적으로 바꾼 경험이 있는 이들이 있다는 건 무척 부럽습니다. 또한 ‘촛불혁명’ 등을 보면 그 경험이 젊은 세대에게도 계승된 것 같습니다. 그런 저력이 기후 변화 대책으로 향한다면 탈성장 코뮤니즘도 싹틀 수 있지 않을까요.”
최근 한국에서도 ‘메가’ 번역본이 첫 출간되는 등 마르크스 사상의 전모를 파고들 새로운 계기가 마련되고 있지만, 그의 생태학적인 연구나 생산력 지상주의에 대한 태도 변화 등은 아직 그리 잘 알려져 있지 않다. ‘메가’ 편집위원으로도 활동하고 있는 사이토 교수는 이 분야의 전문가로 꼽힌다.
—마르크스의 탈성장 코뮤니즘에 대한 근거로, 크게 ‘크게 자술리치에게 보낸 편지’, <고타 강령 비판> 등을 언급하셨습니다. 혹시 이외에도 ‘메가’ 연구 등에서 발견할 수 있는 마르크스의 탈성장 코뮤니즘을 보여주는 구체적인 조각들을 조금 더 소개해주실 수 있을지요?
“‘메가’로 간행되고 있는 자료에는 마르크스가 만년에 작성한 발췌 노트가 대량 있습니다. 그 노트들에는 ‘자술리치에게 보낸 편지’와 <고타 강령 비판>을 쓰기 위해 준비한 과정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특히 자연과학 관련 노트를 읽어보면 마르크스가 ‘생산력을 키워서 기술을 발전시키면 무한한 부를 소비할 수 있다’는 발상을 지니지 않았다는 게 명백히 드러납니다. 오히려 마르크스는 농예화학, 식물학, 광물학, 지질학 등을 연구하면서 인간이 자연환경으로부터 얼마나 제약을 받고 있는지 강조했습니다. 또한 마르크스는 무한한 가치 증식을 꾀하는 자본주의는 자연의 제약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그 때문에 자연과 인간의 물질대사에 심각한 균열을 만들어낸다고 경고했습니다.
그런 전제에서 마르크스는 미래 사회의 양상을 다시 구상하는데, 게르만족 공동체와 러시아의 촌락공동체를 공부하면서 ‘사회적 평등’과 ‘지속 가능성’이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인식하게 됩니다. 마르크스는 공동체 사회가 정상형(定常型) 경제임에도 불구하고 경제적 우월성이 있음을 인정한 것입니다.”
—커먼즈의 중요성, ‘부정의 부정’, 사용가치와 가치 등 마르크스가 다듬어온 코뮤니즘의 기본 아이디어 자체들은 새로운 발견은 아닙니다. 여기에 '탈성장'을 덧붙여 강조하는 것을 통해 어떤 새로운 변화를 꾀할 수 있는 것인지 궁금합니다.
“예컨대 사람들은 <고타 강령 비판>에 ‘부정의 부정’으로 이룩되는 미래 사회에 ‘부가 넘쳐흐른다’고 쓰여 있다고 했습니다. 그 구절은 지금까지 무한한 부를 모두가 소비할 수 있는 사회라고 해석되었습니다. 그 때문에 환경 제약이 중시되는 오늘날 마르크스의 코뮤니즘은 전혀 터무니없는 19세기의 사상이라고 치부되었습니다.
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마르크스를 재해석하여 알게 된 것은, 마르크스가 자연 제약을 인정했고, 그 제약 속에서 ‘풍요로운 부’를 회복시키려 했다는 것입니다. 자본주의의 독점 논리에 저항하여 부를 커먼으로 삼아 공동 관리를 했을 때 생겨나는 풍요야말로 마르크스가 그렸던 ‘풍요로운 부’입니다. 그것은 사용가치를 무한하게 추구하는 것과 다른, 현재 점점 중요해지고 있는 ‘근본적(radical) 풍요’입니다.”
—책 속에서는 자본주의가 낳은 문제로서 코로나19를 언급하셨는데, 코로나19 팬데믹과 이에 대한 경험이 탈성장 논의에 어떤 영향을 미칠 수 있을지 궁금합니다. 예컨대 코로나19는 기존의 불평등과 모순을 심화시키는 한편, 그에 대한 반작용으로 노동시간 단축이나 필수노동, 특히 돌봄노동 중시 등의 필요성을 다시 한 번 일깨우는 계기가 됐다는 시각도 있습니다.
“책에도 썼듯이 팬데믹은 인신세의 위기입니다. 인신세(인류세)는 지질학 개념으로 인류의 경제 활동이 지구 전체를 뒤덮은 시대를 가리킵니다. 즉, 인류가 지구의 삼림을 베어버리고, 자원을 캐내고, 농장을 확장하는 것이 인신세의 원동력인 것입니다. 하지만 그런 일을 계속하면 지금 같은 팬데믹이 일어날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기후 변화 역시 인신세의 위기입니다.
저는 팬데믹을 겪으며 지금 같은 시대에 더욱 경제 성장을 추구하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지 확신했습니다. 오늘날의 위기는 기술 혁신만으로는 뛰어넘을 수 없습니다. 우리는 근본적으로 발상을 전환해야 합니다. 팬데믹이라는 위기 상황에서 드러났듯이 상호 돌봄과 지구 돌봄을 중시하는 경제로 전환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그린 뉴딜’과 같은 기획들이 그 실효성과 무관하게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던 배경에는, 그것이 생활 속에서의 구체적인 실천 지침들(플라스틱을 줄여라, 자전거를 타라 등)을 제공하는 데 성공했다는 사실도 있다. 반면 탈성장론은 아직까지 ‘인기 있는’ 대안으로 자리잡았다고 보긴 어렵다.
—좀 더 많은 사람들(3.5퍼센트에 이르도록)이 탈성장 코뮤니즘을 절박한 대안으로 받아들이게 하기 위해선 어떤 실천들이 필요할까요?
“위기와 마주하여 우리는 먼저 지금까지 했던 생활이 불합리하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합니다. 기후 위기 앞에서 지금의 생활을 지켜주는 개혁은 받아들이기 쉽겠지만, 문제를 본질적으로 해결하지는 못합니다.
탈성장을 하기 위해 커다란 생활 전환이 필요한 것은 사실입니다. 그렇지만 한번 생각해보면 좋겠습니다. 정말로 24시간 편의점이, 패스트패션이, 대형 쇼핑몰이 지금처럼 많이 필요할까요? 한국 역시 눈에 띄게 경제가 성장했지만 여전히 많은 청년들이 불행하고, 그 스트레스를 쇼핑과 스마트폰으로 해소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임시 방편은 머지않아 한계와 맞닥뜨리게 마련입니다. 젊은 사람들이 들고일어나야 사회를 크게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일본에서는 책이 출간되고 1년 정도 지났습니다. 그 사이에 ‘탈성장 코뮤니즘’을 향해 새로운 움직일이 일어났을까요?
“이를테면, 자민당과 입헌민주당 같은 커다란 정당의 정치가들이 이 책의 문제 제기에 전적으로 동의한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대기업에도 그런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지금까지 오랫동안 환경운동과 사회운동에 매진했던 수많은 사람들이 이 책을 계기로 자신들이 해왔던 일들의 의의를 재확인하고 운동에 박차를 가하고 있습니다.
이 책의 가장 큰 성과는 지금껏 뿔뿔이 이뤄지던 운동들이 하나로 연결될 수 있는 커다란 틀(기후 변화 대책)을 제시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옮긴이 주: 자민당의 후쿠다 야스오 전 총리는 한 인터뷰에서 “현실을 인식하는 데 있어 매우 인상적인 책이다.”라고 평가했다. 마찬가지로 자민당의 이시바 시게루 전 간사장은 한 잡지와 인터뷰에서 이 책에 깊은 관심을 드러냈으며, 잡지 <선데이 마이니치>의 특집 기사로 사이토 고헤이와 대담을 갖기도 했다. 입헌민주당의 오가와 준야 의원 역시 사이토 고헤이의 주장을 적극적으로 지지하며 대담을 가졌고, 같은 당의 하치로 요시오 의원은 참의원 환경위원회의 발언에서 직접적으로 이 책을 인용했다.)
—삶의 다양한 방면에서 일으키는 사회운동은 여전히 필요하지만, 이를 촉진하기 위한 정치적 기획도 필요할 것 같습니다. 탈성장 코뮤니즘에 대응하는 정치적 기획으로는 어떤 것이 있을까요?
“이 책의 제8장에도 적었지만 현재 유럽에서는 바르셀로나를 중심으로 그린 뉴딜과 다른, 탈성장형 사회에 가까운 모델로 도시를 만들려는 시도가 이뤄지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파리에서는 자동차의 주행 속도가 시속 30킬로미터 이하로 제한되었습니다. 자동차 중심 사회에서 자전거 중심 사회로 전환하는 것은 시민이 도로라는 커먼을 되찾고 지속 가능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 꼭 필요한 일입니다.
일본과 한국에서는 아직 이런 제안을 받아들이지 못할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지방자치단체 수준에서 변화를 일으키는 것은 충분히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그처럼 풀뿌리 운동이 일어나야 비로소 국정 선거에서도 자본주의에 대담한 제약을 걸고 탈성장으로 전환하는 것이 중심적인 주제가 될 수 있습니다.
앞길이 험난하지만, 시작부터 고난 앞에서 타협적인 길을 고르면 2050년까지 탈탄소화를 할 수 없습니다. 필요한 것은, 좌파가 대담한 선택지를 현실적이고 매력적이며 모두를 위한 개혁으로 주창하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지속 불가능 자본주의> 출간에 부쳐 한국의 독자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부탁드립니다.
“한국에서는 마르크스와 코뮤니즘에 대한 이미지가 일본 이상으로 안 좋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지금의 사회에서 괴로움을 느끼며 의문을 품고 있다면, 그럴수록 이 책을 손에 들어주었으면 합니다. 제가 최신 연구에 기초해서 제시하는 마르크스의 모습은 분명 여러분이 상상하던 것과 전혀 다를 것입니다. 그리고 이 책을 읽으면 저와 함께 탈성장 코뮤니즘 실현을 위해 행동하고 싶어질 것이라 생각합니다. 한국에 한 사람이라도 많은 동료가 늘어나길 바랍니다.”
최원형 기자
circle@hani.co.kr, 번역 김영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