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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모두의 땅과 숲을 훔친자는 누구인가?…진짜 도둑을 묻다

등록 2021-10-15 04:59수정 2021-10-15 15:34

[한겨레book]

미국 역사가…자본주의로 사유화된 삼림·강 등 ‘공통장’ 문제 천착
1970년대~2008년 금융위기 직후 쓴 글 묶음…공통장 저항의 역사

도둑이야!
공통장, 인클로저 그리고 저항
피터 라인보우 지음, 서창현 옮김 l 갈무리 l 2만2000원

“법은 사람들을 가두어 놓지/ 공통장에서 거위를 훔치는 사람들을./ 하지만 더 나쁜 놈들은 풀어주지/ 거위에게서 공통장을 훔치는 놈들을.”

잉글랜드가 산업혁명을 바탕으로 식민지배를 확대하던 17세기 아일랜드에서는 이런 익명의 시가 널리 알려졌다. 자본주의는 사람들이 경계 없이 누리던 땅과 물, 산림 등(‘공통장’·commons)에 울타리를 쳐 사적 소유의 경계를 세우고(‘인클로저’), 울타리를 넘는(‘저항’) 이들은 범죄자가 되어 처벌을 받도록 세상을 바꾸어 놓았다. 토지와 바다, 숲과 강을 훔친 사람과 거위를 훔친 사람 가운데 우린 누구에게 “도둑이야!” 소리쳐야 할 것인가?

<도둑이야!>(원저는 2016년 출간)는 미국의 역사가 피터 라인보우(79)가 1976~2013년에 걸쳐 쓴 열다섯편의 글을 모은 책이다. 대부분은 2008년 금융위기 이후에 쓴 것이다. 지은이는 18세기 영국의 사형제도와 범죄의 역사를 다룬 <런던 교수형>, 17~19세기 대서양 자본주의 속 ‘다중’의 저항을 다룬 <히드라>, ‘마그나카르타’(대헌장)의 잘 알려지지 않은 짝인 ‘삼림헌장’의 의미를 새긴 <마그나카르타 선언>, 메이데이에서 ‘적색’뿐 아니라 ‘녹색’의 기원까지 읽어낸 <메이데이> 등 여러 저작에서 일관되게 공통장과 인클로저, 그리고 이에 대한 저항의 역사를 천착해왔다.

‘공통장’을 연구해온 역사가 피터 라인보우. 위키미디어 코먼스
‘공통장’을 연구해온 역사가 피터 라인보우. 위키미디어 코먼스

이번 책은 여러 편의 독립적인 글들을 모았기에, 지은이는 더욱 다채로운 역사적 사실들을 뒤적이며 공통장을 회복하기 위한 저항의 역사들을 펼쳐놓는다. 예컨대 2011년 전지구적으로 벌어진 점거운동을 두고, 지은이는 감옥(법), 은행(화폐), 항구(상품)에 높다란 벽을 쌓았던 200년 전 런던과 이를 탈취하려 했던 아일랜드 혁명가 에드워드 마르쿠스 데스파르드 등 도시와 공통장의 오랜 역사를 되새긴다. “공통장은 자원과 민중의 조합, 사물이 아니라 관계”이며, 인클로저는 “투옥과 사유화 두 가지 방식으로” 이를 파괴했다. 지은이는 잉글랜드의 ‘기계-파괴자’로부터, 북아메리카 선주민의 전쟁, 농민 반란, 노예제 폐지 투쟁 등 역사의 거의 모든 페이지에 면면히 새겨져 있는 이 진실을 드러내 보여준다.

청년 카를 마르크스가 정치경제학과 계급투쟁에 관심을 갖게 된 결정적인 계기로 꼽히는 ‘목재 절도’ 연구를, 공통장에 입각해 풀이하는 대목도 흥미롭다. 19세기 초 프로이센은 라인강 유역의 삼림을 엄격히 통제하고 농민들의 삼림 범죄에 대한 처벌을 강화했는데, 그 결과 1836년 프로이센에서 제기된 전체 20만여건의 기소 가운데 15만건이 목재 절도 등 삼림 범죄에 관한 것일 정도였다. <라인신문> 기자였던 마르크스는 이 문제를 다섯편의 기사로 다뤘지만, 당시로선 그 정확한 의미를 꿰뚫어볼 수 없었다고 한다. 그것은 독일에서 자본주의적 발전이 본격적으로 “이륙”하기 위해, “시대에 역행하는 환경”(공통장) 안에 머무르고 있는 농촌과 농민들을 ‘고르는’ 작업이었다는 풀이다.

최원형 기자 circl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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