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덕수 포스터북 나는 이렇게 쓰였다
리덕수 지음 l 알마 l 3만8000원
누굴까. ‘남한의 북한 선전화가’ 리덕수(Redux). 책의 마지막 장 ‘작가 소개’엔 “냉전의 무대, 분단의 희생자, 실향 2세대로 남북한의 공존을 상상하며 활동 중”이라는 간략한 설명만 있다. 그가 이전에 참가한 미술 전시회에서도 마찬가지 설명이 나온다. 수소문해보니, 미술판에서도 ‘주목받는 신인 작가’라고만 알려져 있을 뿐 고향, 출신 학교는 물론 얼굴도 모르는 이가 태반이라고 했다.
아무튼 “북한 이탈 주민은 아니”라는 리덕수는 생산을 독려하고 의식 개조 등을 촉구하는 북한의 정치 포스터를 분홍·파랑·노랑색으로 단순화하고, 사회주의 체제 선전구호를 남한의 일상과 맞닿는 기묘한 방법으로 헤집어 놓는다. 가령 “민족 해장의 날/ 내 몸을 잘 보호관리하자” “일심단결하여 취업을 끝까지 완성하자” “택배 수송을 용감 민첩히 하자” “원두를 단호히 분쇄하자” 같은 식이다. 서문을 쓴 출판평론가 장은수의 말대로 이는 “북한 예술정치의 가지를 잘라서 남한 상품미학의 대지에 이식하는 일”이자 “적대하는 두 세계를 하나의 장 속에서 만나게 하는 일”이다. 리덕수의 손을 거쳐 몽환적 파스텔 삼원색으로 뭉개진 프로파간다의 날선 모퉁이는 남북 두 세계의 공통된 주술(“원하는 대로 이루어질 거야”)을 초월한다.
이 책엔 리덕수의 작품 60점, 평론가 정연심의 비평 외에 고영범의 단편 소설 ‘필로우 북-리덕수 약전’과 “끝남과 시작, 반복하는 것에 의미를 담은” 서연후의 시 5편이 실렸다. 포스터를 통해 실존을 입증했음에도, 소설과 시로 재변주된 리덕수는 다시 처음의 질문을 되돌린다(Redux). 대체 리덕수는 누구인가.
이주현 기자
edigna@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