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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민속주점서 태동한 ‘김치 학파’

등록 2006-02-09 18:48수정 2006-02-12 15:56

인터뷰/정년퇴임 기념 <김치, 위대한 유산> 펴낸 한홍의 교수

“김치는 우리 모두의 위대한 유산입니다. 본래의 옛맛이 1970년대 이후 김장독 없는 아파트와 공장김치에 밀려 사라지고 있는데 이젠 과학적으로 복원해 우리 김장김치의 맛과 과학성을 되찾아야 합니다. 중국·일본 김치가 이렇게 밀려들어, 몇 년 지나지 않아 우리 전통의 김치가 공장김치에 묻혀 사라지진 않을까 걱정입니다.”

지난 20여년 동안 분자생물학을 통해 김치 유산균의 생리를 연구해온 한홍의 인하대 교수(65·미생물학)가 최근 김치에 관해 쓴 글을 모아 <김치, 위대한 유산>(한울 펴냄)을 펴냈다. 새 책을 냈지만 마음은 헛헛하다. 이제 드넓은 김치의 미생물 생태계에 눈이 트이니 벌써 정년…. 이달 퇴임식에 참석하곤 분자생물학으로 김치를 연구했던 김치연구실을 떠난다. “연구자가 떠나니 연구실도 더 존재하지 않겠죠”라고 말하는 그의 말에 아쉬움과 안타까움이 배어 있다.

이번 책은 그의 정년퇴임에 맞춰 나왔다. 2년여 동안 자신의 김치 학술 홈페이지(kimchitech.com)에 마련된 ‘김치산책’이란 칼럼에다 써온 에세이들을 추리고 다듬고 엮었다. 어떤 건 김치 연구 초기의 소동에 관한 추억이고 어떤 건 유산균의 생리에 관한 전문지식이다. 어떤 건 미생물학이고 어떤 건 식품공학이다. 김치의 과학적 우수성은 무엇인지, 김치 유산균엔 어떤 게 있는지, 김치 연구는 무엇을 하는 건지 따위의 물음들에 대해 김치 과학자로서 답하는 형식이 됐다.

한 교수가 김치와 인연을 맺은 건 20여년 전 교수로 부임하고 얼마 지나지 않은 1984년. 우연한 시작이었다. “제자들은 분자생리학의 디엔에이 연구를 어렵고 따분해 했지요. 어느날 연구를 마치고 대학 부근 민속주점에서 학생들과 술을 마시다 ‘너희들이 정말 하고싶은 게 뭐냐’고 물었다가, 나온 답이 우연하게 김치였습니다. 딱 2년만 하자고 했는데, 그게 지금까지 이어졌습니다.”

그 사이에 한 교수와 연구생들은 독보적인 김치 미생물 연구자가 됐다. ‘류코노스톡 김치아이’ ‘류코노스톡 인하에’라는 신종 유산균이 이 연구실에서 처음 발견돼 이름이 붙여졌다. 민속주점의 제자들은 이제 여러 분야에서 활약하고 있다. 김치맛을 양념과 손맛으로만 여기던 인식에서, 김치 안에 사는 무수한 유산균들의 생태계를 이해하려는 인식이 우리사회에 생겨난 것도 이런 노력과 과정 덕분이었다.

‘김치 생태학’은 그의 지론이다. 김치 세계는 “마치 우리의 사회생활과 같다. 이를 알기 위하여 제일 먼저 김치에 어떤 유산균이 살고 있고, 이들끼리는 서로 무슨 관계를 맺고 있으며, 어떻게 발전해 가는지, 그리고 환경인자와는 어떤 상호작용을 하고 있는지를 알아야 한다.”(187쪽) 김치를 ‘초미세 생태계’로 보아야만 김치를 제대로 이해할 수 있다는 얘기다.


정년퇴임 이후엔 쉬겠다고 한 그의 말을 계속 듣다보면 한 교수에겐 사명감 같은 게 언뜻언뜻 엿보였다. 그건 전통의 옛 김장김치 맛을 과학적으로 제대로 복원해 자신의 연구에 결말을 내는 일이다. “한국전쟁 전의 학술논문에서 우연하게 당시 김치는 지금의 약산성과 달리 약알칼리성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지금 채소는 산성화하고 있고, 게다가 공장김치는 김장김치의 옛맛을 저버리고 있으니 서둘러 우리 전통의 맛을 복원해야 합니다. 과학자로서, 그걸 하고 싶어요.”

글 오철우 기자 cheolwoo@hani.co.kr, 사진 김진수 기자 js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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