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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기계와 생명 뒤섞인 시대, 새로운 이론과 실천을 묻다

등록 2021-09-10 04:59수정 2021-09-10 09:48

기계이거나 생명이거나
이찬웅 지음 l 이학사 l 1만7000원

과학과 기술의 발전은 갈수록 생명과 기계의 경계선을 흐릿하게 만들고 있다. 철학, 예술, 과학 사이의 관계에 관심을 두고 질 들뢰즈와 현대 프랑스 철학을 연구해온 이찬웅 이화여대 이화인문과학원 교수는 새 저작 <기계이거나 생명이거나>에서 날로 혼란스러워지는 기계와 생명 사이의 경계선을 짚어보고, 아직까지 근대적 관점에 갇혀 있는 인간성의 한계를 점검한다. 이를 위해 서양 철학사 속 기계와 생명에 대한 다양한 사유들의 궤적과 이른바 ‘포스트휴머니즘’의 대표적 입장들을 한눈에 볼 수 있도록 펼쳐 보여주기도 한다.

생명은 나눌 수 없는 개체가 아니라 분산적이고 분자적인 요소들의 네트워크로 이해되고 있는 한편 기계는 점차 복잡하고 자율적인 시스템이 되어, 둘은 서로를 향해 수렴해가고 있다. 이는 “일하고 살아가고 말하는” 인간에게 특권을 부여했던 기존의 관점에서 벗어나 ‘인간 이후’를 새롭게 사유해야 할 필요성을 제기한다. 들뢰즈와 가타리는 자연의 모든 존재자를 “욕망하는 기계”로 파악했는데, 연결성·작동성의 관점에서 실제로 인간과 기계는 같은 평면 위에 놓이게 되었기 때문이다. 미셸 푸코가 ‘인간의 종말’을 언급한 것처럼, 노동, 생명, 언어는 이제 더이상 인간만의 것이 아니다.

출처 게티이미지뱅크
출처 게티이미지뱅크

지은이는 비판적 포스트휴머니스트 캐서린 헤일스가 의미 작용의 세 가지 체제를 구분했던 데 착안해, 생명과 기계를 구분하는 세 가지 관점을 제안한다. 의미와 동일성을 향유하는 말하기, 기표들과는 미끄러지며 은유를 통해 다의적인 의미를 전달하는 글쓰기, 일의적이고 명료한 명령의 전달에 해당하는 코드 체계 등이다. 이들은 각각 철학적 사유, 문학적 서사, 공학적 실행에 대응한다. 예컨대 우리는 생명이라는 실재는 결코 알지 못한 채, 은유적인 차원에서 생명체들에 대한 서사를 만들어내고 있는 것일 수 있다. 적어도 작동의 차원에서 더이상 생명과 기계는 구분할 수 없으며, 우리는 그 사실을 우리 시대의 새로운 조건으로 받아들이고 그 조건에서 실천적인 과제를 새롭게 설정해야 한다. 세 가지 관점은 총체적인 하나로 묶이지 않은 채 공존하며, 영역별로 또 국지적으로 저마다의 효과를 발휘할 것이다.

지은이는 우리 시대의 혼란이 그리 부정적이라 보지 않는다. ‘기계이거나 생명이거나’란 책 제목은 들뢰즈가 말한 ‘이접적’(離接的) 종합을 염두에 둔 것으로, “오늘날 인간을 포함한 모든 존재가 때로는 기계로, 때로는 생명으로 경계를 오갈 수 있는” 상황을 반영한다. 굳이 인간만의 구별되는 특성을 따져 묻는다면, 그것은 “의지의 영역에 속하는 어떤 것”일 거라고 지은이는 말한다. 만약 인공지능이 인간과 구분되지 않을 정도로 시(詩)를 써낸다면, 우리는 그 결과물을 시로 판단하기 위해 그것을 생산한 주체가 가진 욕망이 무엇인지 따져 물어야 할 것이다. 스스로 존재가 되려는 의지, 곧 “자기 생성의 의지”를 확인할 수 없다면 그 생산물은 단지 데이터 처리의 결과와 다르지 않을 것이란 얘기다. ‘조금 더 괜찮은 존재’가 되려는 의지가 있다면, 그에겐 굳이 인간이란 명칭이 필요하지 않을 것이라고도 말한다.

최원형 기자 circl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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