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들은 무슨 꿈을 꾸었기에 비참하게 죽은 걸까
손홍규 지음 l 문학사상 l 1만4500원 두 번 놀랐다. 처음은, 책의 지도 격인 ‘차례’를 보았을 때. ‘1895년 4월24일. 1956년 7월19일. 2009년 5월23일. 2014년 4월16일.’ 각 연월일은 전봉준, 박헌영, 노무현, 세월호 승객들이 세상을 떠난 날을 가리킨다. 아, 이렇게도 소설을 쓸 수 있구나. 격통에 가까운 상실들을 한 소설로 엮어낼 수 있는 작가구나. 다음은, 이 묵직한 소설이 무게 잡지 않고 노래하고 있음을 깨달았을 때다. 모두 열두 개의 장으로 이루어진 이 소설은, 네 개의 날짜가 세 번 반복되는 ㄱ-ㄴ-ㄷ-ㄹ-ㄱ-ㄴ-ㄷ-ㄹ-ㄱ-ㄴ-ㄷ-ㄹ 형태다. 돌림노래처럼 흐른다. 소설이 노래한다는 더 강력한 증거는, 호흡으로 이완된 문장이었다. 충실한 자료와 밀도 높은 통찰로 군더더기는 낄 틈조차 없는 문장에 숨 쉴 곳은 많아서, 400쪽에 이르는 분량을 ‘힘들게’ 읽을 필요가 없다. 힘보다 호흡이 독자를 가볍게 밀어준다. 경직되어 호흡이 모자란 몸에선 노래가 나오지 않는다. 그리고 노랫말을 잊기 힘든 것처럼, 노래는 기억을 오래 유지시켜준다. 손홍규의 여섯 번째 장편소설이 나왔다. <예언자와 보낸 마지막 하루>. 119년이란 시간을 넘나들며 한국 근현대사의 결정적 순간들을 마주하는 소설이다. 서울로 압송된 뒤 교수형을 기다리는 동학농민군 대장, 마흔한 살 전봉준. 북한 부수상을 지냈으나 수상(김일성)의 제거 대상이 되어 지하감옥에 갇힌 남로당의 거두, 쉰일곱 살 박헌영. 검찰 조사를 받고 돌아와 봉하마을 ‘지붕 낮은 집’을 서성이는 예순넷의 노무현 전 대통령, 제주도행 배를 타러 인천으로 향하는 고등학생 ‘해원’. 죽음을 앞둔 이들의 마지막 시간이 실감 나게 복원된다. 치밀하게 직조된 역사적 사실은 기본이고, 이들의 “마음”과 “꿈”마저 헤아림으로써 실감은 거의 실체에 가까워지는 듯하다. 왜 다른 누구도 아닌 전봉준, 박헌영, 노무현, 세월호 아이인가. 손홍규 작가는 지난 1일 <한겨레>와 서면 인터뷰에서 이렇게 설명했다. “전봉준과 박헌영은 실패한 혁명가이지요. 노무현도 실패한 민주주의자이고, 세월호는 이유도 모른 채 생존에 실패한 참사였지요. 그리고 전봉준은 실패했지만 근대의 출현을 앞당겼고, 박헌영은 실패했지만 남북이 등한시한 가치를 돌아보는 계기가 되어주기도 합니다. 노무현도 실패했지만 민주주의는 쟁취하는 것만큼 지켜내는 것도 중요함을 일깨웠고, 세월호는 우리 시대가 어떤 가치를 지향해야 하는지를 돌아보게 합니다. 이들 모두가 저에게 주는 화두는 ‘대체 무슨 꿈을 꾸었기에 그들은 비참하게 죽어야 했는가’였어요. 혁명, 민주주의, 인간의 존엄성, 이렇게 쉽게 요약하는 대신 무엇이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 꿈인지, 인간적인 꿈이 과연 가능한지 알고 싶었어요. (…) 내가 진짜 알아야 하는 게 무엇인지를 알고 싶었어요.”
등단 20년차 소설가 손홍규. 최근 펴낸 여섯 번째 장편소설 <예언자와 보낸 마지막 하루>를 그는 이렇게 표현했다. “글쓰기를 돌아보고 어디로 더 갈 수 있는지 확인하고 싶었다. 기착지에 이른 지금, 전환점이 되어준 소설이다.”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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