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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왜 이토록 쓸모없는 일이 많아질까

등록 2021-09-03 05:00수정 2021-09-03 10:04

종사자조차 존재 이유 못 찾는 ‘불쉿 직업’ 증가
타인에게 이로운 일 할수록 보수는 더 적어져
“기본소득 도입, 생계만을 위한 노동 없앨 것”

불쉿 잡

왜 무의미한 일자리가 계속 유지되는가?

데이비드 그레이버 지음, 김병화 옮김 l 민음사 l 2만2000원

‘불쉿’(bullshit)은 ‘빌어먹을’ ‘젠장’ ‘엿 같은’ ‘엉터리’ 정도의 의미로 쓰이는 영어 비속어다. <불쉿 잡>의 지은이는 ‘불쉿 잡’(불쉿 직업)을 “유급 고용직으로 그 업무가 무의미하고 불필요하고 해로워서, 그 직업의 종사자조차도 그것이 존재해야 할 정당한 이유를 찾지 못하는 직업 형태”로 정의한다. 또한 이런 쓸모없고 무의미한 직업이 현대 자본주의 세계에 광범위하게 존재하고 심지어 점점 증가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지은이 데이비드 그레이버는 미국의 인류학자이자 무정부주의 운동가다. 2011년 ‘월가를 점령하라’ 시위를 주도하기도 했던 그는 런던정경대(LSE)에서 교수로 일하다 지난해 세상을 떠났다. <불쉿 잡>(원서는 2018년에 출간)은 <부채, 그 첫 5000년>(2011년)과 함께 그의 주요 저서로 꼽힌다. 2013년 한 잡지에 기고한 ‘불쉿 직업이라는 현상에 관하여’라는 짧은 글이 센세이션을 일으키고 많은 독자들이 이에 공감한다는 ‘고백’을 해오자, 지은이는 자신의 논지를 더 발전시키고 독자들의 경험담을 덧붙여 이 책을 쓴다. 한 여론조사 업체는 영국인을 대상으로 ‘당신 직업은 세상에 의미 있는 기여를 하는가’를 묻는 설문 조사를 실시했는데 37%가 아니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네덜란드에서 행해진 조사에서는 노동자의 40%가 자신의 업무가 반드시 존재해야 하는 뚜렷한 이유가 없다고 답했다.

지은이는 비유적 표현들을 사용하며 불쉿 직업을 다섯 가지 유형으로 나눈다. ‘깡패’는 “공격적 요소가 있는 직업의 종사자이지만 결정적으로는 다른 누군가가 채용해야만 존재하는 그런 부류의 사람들”이다. 로비스트, 광고·마케팅·홍보 전문가, 텔레마케터, 기업 변호사 등이 포함된다. “옥스퍼드 대학은 정말 일류대학이라는 사실을 대중에게 납득시키기 위해 열두 명이 넘는 홍보 전문가를 채용”하고 있다. ‘임시 땜질꾼’은 방치되고 있는 조직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고용인이다. 무능한 상사들이 야기한 문제를 처리하거나, 자동화될 수 있는 업무를 일일이 손으로 작업하는 직원들이 예다. ‘형식적 서류 작성 직원’은 어떤 조직에서 “하지 않는 일을 하고 있다고 주장할 근거를 마련하기 위해 고용된” 사람들이다. 해니벌이라는 디지털 컨설턴트는 제약회사의 의뢰를 받아 글로벌 전략 회의 때 발표할 보고서를 써줬지만, 그 보고서는 회의 때 논의되지도 않았다. ‘작업반장’은 업무를 배당하는 일만 하는 사람들이다. 벤이라는 중간 관리자는 “내 밑에서 일하는 사람이 열 명 있지만, 그들 모두 내 감독 없이도 업무를 볼 수 있고 (…) (업무도) 충분히 직접 배분할 수 있다”고 말한다. ‘제복 입은 하인’은 누군가를 중요하게 보이게 하기 위해 존재하는 직업이다. 엘리베이터 운전수, 접수계원, 비서 등이다.

불쉿 직업 종사사들은 대부분 좌절감과 공허함을 느낀다. 그레그는 마케팅 업체에서 웹사이트의 배너 광고 만드는 일을 2년 동안 했다. 하지만 웹사이트 방문자들은 광고를 거의 클릭하지 않았다. 그레그는 “그 업무는 내게 무의미함이 스트레스를 더 심화시킨다는 걸 알려 주었다”고 말한다. 그는 결국 퇴사하고 다른 직업을 찾았다.

지은이는 불쉿 직업이 늘어나는 이유 중 하나로 금융 자본주의의 발전을 꼽는다. 이 부문은 “먼저 (대출을 통해) 돈을 만들고 그 돈을 흔히 지독하게 복잡한 방식으로 다양하게 움직여, 모든 거래에서 조금씩 자기 몫을 챙긴다. 그 결과 은행직원들은 (…) 전체 업무가 하나같이 무의미하다고 느끼게 된다.” 지은이가 ‘경영 봉건제도’라고 부르는 현상도 있다. 1970년대까지 노동 생산성이 증가하면 노동자들에 대한 보상이 증가했다. 하지만 이후에는 증가된 생산성으로 얻은 이윤의 대부분이 투자자, 사장, 전문 경영인 등 최고위 1% 부자들에게 흘러가는 한편, 상당 부분이 전문 관리직 일자리를 만드는 데 들어갔다. 봉건주의하에서 영주가 농민과 장인 들이 생산한 것을 빼앗아 그 일부를 부하, 하인, 전사 들에게 나눠준 것처럼.

지은이는 한발 더 나아가 좀더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우리가 수행하는 일의 절반이 지워져도 전체 생산성에 큰 영향이 없다는 것이 사실이라면, 왜 나머지 절반의 일을 재분배해서 모든 사람이 하루 네 시간만 일하지 않을까?” 이는 현대 문명이 노동 그 자체를 목표이자 의미로 간주하는 가치관을 토대로 형성돼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 지은이의 대답이다. 어떤 일을 하든 아무 일도 하지 않는 것보다는 더 낫다고 여긴다는 것이다. 여기에 더해 우리 사회는 어떤 일이 타인에게 이로울수록 보수가 더 적어지는 상황을 정상으로 받아들이기까지 하고 있다. 만약 간호사, 버스 운전기사, 기계 정비공, 소방수, 교사 등이 갑자기 사라진다면 사회는 즉각 혼란에 빠질 것이다. 그러나 정치 컨설턴트, 로비스트, 기업 변호사, 금융업 종사자 등은 없어져도 사회는 큰 문제 없이 흘러갈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더 많은 보수를 받는 쪽은 후자다.

지은이는 진정한 ‘가치들’은 “전통적인 상호 창조와 돌봄의 과정”에 있다고 강조하고, 정책적 대안으로 ‘보편적 기본소득’을 제시한다. 기본소득이 지급되면 단지 생계 때문에 일해야 하는 상황이 사라지고, 불쉿 직업의 상당수도 더 이상 존재하지 않게 될 것이다.

지은이의 불쉿 직업의 정의는 스스로도 말하고 있듯 주관적이고 모호한 측면이 있다. 지은이가 제시하는 가장 중요한 기준은 종사자가 그렇게 느끼느냐 하는 것이다. 40% 가까이 된다는 불쉿 직업의 규모도 엄밀한 방법에 의해 측정됐다고 보기는 힘들다. 하지만 지은이의 불쉿 직업에 대한 주장에 동의하느냐와는 별개로, 무정부주의자답게 다소 급진적이지만 근본적인 지점까지 파고드는 노동에 대한 성찰은 귀 기울여볼 만하다. 그의 말처럼 “이 책의 핵심은 진정한 자유 사회가 어떤 모습일지 생각하고 논의의 장을 여는 데 있”기 때문이다. 안선희 기자 sh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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