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년대의 저녁 하늘에 길을 내던 긴 문장
아파트 노인정 뒤뜰에 우뚝하다
등대 같은 몸 주위로 옹기종기
길 잃은 새들이 모여 지친 날개를 쉬고 있다
개별난방에 밀려 지하 보일러가 멎고
십수 년 연기가 피어오르지 않는다
매운 언어를 부리던 시절은 가고
깊게 말문을 닫은 채 사랑이 떠난 몸처럼 식었다
캄캄한 시대를 온몸으로 살아온 뜨거운 수사
낡은 이데올로기를 걸친 노인처럼
세상으로부터 잊힌 채 쓸쓸하다
-시집 <불이론>(천년의시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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