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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코로나와 기후위기 시대에 안부를 묻는 일

등록 2021-09-03 04:59수정 2021-09-03 15:44

어떻게 지내요

시그리드 누네즈 지음, 정소영 옮김 l 엘리 l 1만5000원

미국 작가 시그리드 누네즈(70·사진)는 1995년에 첫 장편소설을 내기 시작해 지금까지 장편 여덟을 발표했지만, 한국에 소개되기는 지난 5월 수전 손택 회상기 <우리가 사는 방식>이 번역 출간된 것이 처음이었다. 이어서 7월에는 2018년 전미도서상 수상작 <친구>가 한국어본을 얻었고, 내처 최신작 <어떻게 지내요>(2020)가 나오면서 짧은 기간에 그는 한국 독자들에게 친숙한 이름이 되었다.

<어떻게 지내요>는 말기암 진단을 받고 안락사를 결심한 친구한테서 ‘동행’ 요청을 받은 중년 여성 ‘나’를 중심으로 진행된다. 처음엔 완강히 거절하던 그는 고민 끝에 친구의 곁을 지키기로 한다.

소설 도입부는 친구의 문병을 갔던 ‘나’가 마침 그 지역에서 열리는, 전 남자친구의 강연을 듣는 장면이다. 강연의 취지는 지구온난화로 인류는 종말을 앞두고 있으며, 그것은 돌이킬 수 없는 사태여서 이제 우리가 할 일은 “어떻게 작별 인사를 할지 배우는” 것뿐이라는 것. 종말이 분명한 세상에 아이를 불러내는 일에 대한 회의를 피력하는 말로 강연을 마친 그에게 다수의 청중은 불쾌한 반응을 보이는데, 그것은 “공격적이고, 오만하고, 자기 잘난 맛에 사는 남성 언론인”이라는, ‘나’의 친구의 평가와 통한다.

소설은 친구의 개별적 죽음과 인류 전체의 종으로서의 죽음을 병렬시키며 그 죽음들에 대한 마땅한 애도의 방식을 고민하는 과정을 중심으로 짜인다. 그렇지만 소설은 주제를 향해 효율적으로 직진하기보다는 다양한 이야기들로 해찰을 부리듯 우회하는 구조를 보인다. ‘나’와 친구는 둘 다 문학에 종사하는 이들로 그려지는데, 그 때문에 숱한 소설과 책들이 거론된다는 점은 전작인 <친구>에 이어지는 면모라 하겠다. 말과 문학에 대한 언급은 두 사람의 관심사일 뿐만 아니라 작가 자신의 고민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어떻게 지내요?’ 이렇게 물을 수 있는 것이 곧 이웃에 대한 사랑의 진정한 의미라고 썼을 때 시몬 베유는 자신의 모어인 프랑스어를 사용했다. 그리고 프랑스어로는 그 위대한 질문이 사뭇 다르게 다가온다. ‘무엇으로 고통받고 있나요?’”

소설 제목에 관한 설명을 담은 이 대목에 책의 주제 역시 담겨 있다. 타인의 안부를 묻고, 가능하면 그들의 고통에 동참하는 것. 코로나와 기후위기 시대에 더욱 절실한 삶의 태도라 할 수 있지 않을까.

최재봉 선임기자 bong@hani.co.kr, 사진 위키미디어 코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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