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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한국사회의 후진성을 한번에 넘고 싶었던 혁명시인

등록 2021-08-30 04:59수정 2021-08-30 07:57

[거대한 100년, 김수영] ⑮ 혁명

김수영 시 170여편 중
‘혁명’ 들어간 시는 여덟 편
4·19 진압된 뒤
시적 실천은 더 혁명적

김수영에게 혁명은
일회적 사건 아닌
삶과 시에서 지속되는 것
김수영 시 ‘육법전서와 혁명’ 초고 첫 장. 처음 공개되는 것이다. 김현경 제공
김수영 시 ‘육법전서와 혁명’ 초고 첫 장. 처음 공개되는 것이다. 김현경 제공

김수영을 말하면 거의 자동적으로 참여시인이나 저항시인이라는 수식이 따라붙는다. 하지만 과연 그런 상투적 수식이 김수영의 삶과 문학의 실체적 진실과 얼마나 부합하는가는 조금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참여’를 사르트르의 ‘앙가주망’ 개념의 번역으로 본다면 사회정치적 문제에 개입함으로써 자기 실존의 정체성을 구성해 나가는 것을 말한다. 김수영이 당대 한국과 세계의 정치사회적 문제들에 매우 민감했던 것은 사실이지만, 엄밀히 말해 그는 사회정치적 문제에 적극적·실천적으로 개입한 사람은 아니었다. 그의 일부 시들이 과격하거나 과격한 것처럼 보이는 것은 오히려 그의 정치사회적 실천이나 직접적 저항의 과소 혹은 소극성에 대한 자기반성이 불러온 일종의 ‘풍선효과’라고 하는 게 더 적절할 것이다. 게다가 김수영이 직접적인 정치사회적 투쟁 대신에 시를 통해 그 투쟁을 수행했느냐 하면 그런 것도 아니다. 정치사회적 문제들을 언급하고 그 문제 해결에 직접 개입한 시들은 4·19 이후 1년 동안에 쓴 ‘우선 그놈의 사진을 떼어서 밑씻개로 하자’를 비롯한 대여섯 편을 넘지 않는다. 그의 참여와 저항은 직접적 실천의 형태로 이루어졌다기보다는 이를 글쓰기 속에서 세계에 대한 정신적 태도나 관점의 문제로 승화시키는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다시 말하자면 김수영은 마야콥스키나 브레히트, 유진오나 김남주, 송경동 같은 이들처럼 정치사회적 투쟁에 온몸을 던져 자기를 희생한 투사형의 시인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의 말년에 자신의 옹졸함과 비겁함을 통매한 시 ‘어느 날 고궁을 나오면서’는 과장이 아니라 사실에 가깝다.

김수영 시 ‘어느 날 고궁을 나오면서’를 부인 김현경 여사가 원고지에 정서했다. 김현경 제공
김수영 시 ‘어느 날 고궁을 나오면서’를 부인 김현경 여사가 원고지에 정서했다. 김현경 제공

그렇다면 김수영과 혁명은 어떠할까. 그를 혁명시인이라고는 부를 수 있을까. 혁명은 참여나 저항과 다르다. 참여나 저항은 기성의 어떤 것에 대응한 행동이라는 점에서 아무리 격렬하다고 해도 근본적으로 수동적인 것이다. 하지만 혁명은 기성의 것에 대응하는 것이 아니라 이를 파괴·부정하고 넘어서기를 지향한다는 점에서, 보다 창조적이며 능동적인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곧 시의 본질과도 통한다. 김수영이 흔히 신동엽과 묶여 4·19 혁명이 낳은 시인으로 불리듯 그의 삶과 시는 4·19라는 일회적 역사사건과 분리될 수 없지만, 동시에 그것을 넘어서는 일종의 ‘영구혁명’의 과정에 속해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그런 점에서 굳이 그에게 ‘○○시인’ 같은 수식을 붙인다면 참여시인이나 저항시인보다는 오히려 혁명시인 쪽이 더 어울릴지도 모른다.

전쟁포로의 신분에서 돌아와 본격적인 시인의 삶을 시작했던 1950년대 내내 그는 “취할 순간조차 마음에 주지 않”(‘폭포’)고, 나아가 “죽음 위에 죽음 위에 죽음을 거듭”(‘구라중화’)해야만 가능한 치열한 속도에 집착한다. 그러한 속도에의 집착은 당대 한국 사회의 비참한 후진성을 한꺼번에 넘어서고 싶었던 혁명적 충동의 다른 이름이라 해도 좋을 것이다. 또한 4·19 혁명이 지속됐던 1년여의 시간이 마치 우연처럼 잠깐 열렸다 닫히는 천국의 문처럼 그 추상적인 혁명적 충동과 한국 사회의 구체적 현실이 직결된 혁명의 현실적 이미지를 보여준 시간이었다면, 5·16 쿠데타 이후 그가 타계할 때까지의 7년의 시간은 그 혁명의 좌절과 실망으로 점철된 시간이자 이를 다시 미래의 승리로 되살리고자 한 시적 모험의 시간이었다고 할 수 있다.

<자유문학> 1961년 1월호에 발표된 김수영 시 ‘육법전서와 혁명’. 맹문재 제공
<자유문학> 1961년 1월호에 발표된 김수영 시 ‘육법전서와 혁명’. 맹문재 제공

김수영이 남긴 170여 편의 시 중에서 ‘혁명’이라는 단어가 들어간 시는 ‘기도’, ‘육법전서와 혁명’, ‘푸른 하늘을’, ‘중용에 대하여’, ‘그 방을 생각하며’, ‘쌀난리’, ‘사랑의 변주곡’, ‘꽃잎’ 등 여덟 편이다. 이 중에서 ‘기도’에서 ‘쌀난리’까지의 여섯 편은 4·19 혁명이 지속되던 1960년 봄에서 1961년 봄 사이의 고양된 혁명적 분위기에 힘입어 충분히 나올 수 있는 작품들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그로부터 7년을 뛰어넘은 1967년에 쓴 ‘사랑의 변주곡’과 ‘꽃잎’에서도 여전히 혁명이 운위되고 그것이 실패한 과거의 4·19 혁명에 대한 기억이나 회고가 아니라 오히려 다가올 미래의 것으로서 유토피아적 지평 위에서 되살아나고 있다는 것은 김수영에게 혁명은 지나가버린 일회적 사건이 아니라 그의 삶과 시에서 지속되고 환기되는 매우 중요한 어떤 것이었음을 말해 준다.
&lt;사상계&gt; 1961년 1월호에 발표된 김수영 시 ‘그 방을 생각하며’. 맹문재 제공
<사상계> 1961년 1월호에 발표된 김수영 시 ‘그 방을 생각하며’. 맹문재 제공

물론 4·19 혁명이라는 구체적 역사사건을 떠나서 김수영과 혁명을 논할 수는 없다. 그 사건은 김수영과 혁명의 깊은 관련성이 시작되는 단초이자 구체적 토대이기 때문이다. 4·19 혁명은 이승만 독재체제의 정치경제적 부정부패와 장기집권 음모에 대한 저항에서 비롯되었지만 2차 대전 이후 제3세계 국가들에서 일어난 반제 반봉건 민족민주혁명들과 맥락을 같이하는 세계사적 의미를 가지며, 특히 한국에서는 냉전체제 극복과 평화통일이라는 과제와도 직결된 사건이었다. 김수영도 4·19의 이런 역사적 의의를 잘 알았기 때문에 4·19 혁명에 대한 기대를 쿠바혁명에 빗대어 표현하기도 하고(산문 ‘저 하늘 열릴 때’), 미국과 소련의 철수를 주장했으며(‘가다오 나가다오’), 민주당 정권에 의한 혁명의 배신에 분노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나아가 그는 비록 정치적으로 사회주의자는 아니었지만, 이 혁명이 단순한 민족민주혁명을 넘어 자본주의체제를 넘어서는 새로운 선택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는 생각도 없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중용에 대하여’, ‘연꽃’).

1960년 4·19혁명 당시 교수들의 행진 모습. &lt;한겨레&gt; 자료사진
1960년 4·19혁명 당시 교수들의 행진 모습. <한겨레> 자료사진

이처럼 4·19 혁명이 발발하던 그 시점부터 혁명의 역사적·현실적 의미를 잘 알고 있었지만 동시에 그 혁명이 단순한 정치적 사건이 아니라 자신의 문학은 물론 자신과 모든 사람들의 삶을 근본적으로 바꾸는 어떤 총체적 변혁의 시작이어야 한다고 생각했고 이런 생각이야말로 김수영을 동시대의 다른 모든 시인들과 구별해 주는 가장 특별한 징표였다. 그리하여 그 혁명이 단 1년 만에 5·16 군사쿠데타에 의해 진압되고 좌절되었을 때도 그는 오래도록 상실감에 빠져 자학과 냉소의 수사학 속을 헤매기도 했지만, 이를 계기로 그의 사상과 시적 실천은 훨씬 더 근본주의적으로, 곧 더 깊이 혁명적인 것으로 발전되어 나갔다.
1960년 4·19혁명을 촉발시킨 고등학생들의 시위 장면. &lt;한겨레&gt; 자료사진
1960년 4·19혁명을 촉발시킨 고등학생들의 시위 장면. <한겨레> 자료사진

4·19 혁명 직후인 1960년 7월7일 발표된 ‘푸른 하늘을’에는 ‘혁명은 고독한 것이자 고독해야 하는 것’이라는 유명한 명제가 나온다. 정치사회적 개념으로서의 혁명은 기본적으로 연대나 단결로 요약될 집단성을 전제로 하는데 거기에 고독이라는 매우 개인적인 형질을 기본값으로 부여하는 것은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쉽지 않다. 이 시에 대한 자평이 들어 있는 1960년 6월16일의 일기에서 그는 고독이 창조의 원동력이며 “혁명이란 위대한 창조적 추진력의 복본(複本, counterpart)”이라고 쓰고 있다. 즉 혁명은 답습도 보완도 개량도 아닌 그야말로 기존의 것을 완전히 뒤집어엎고 새로운 것을 창조하는 일이기 때문에 어떠한 인용도 참조도 불가능한 고독한 작업이고 그래야 마땅하다는 것이 이 명제의 진짜 의미이다. 이로써 그는 목전에서 막 일어나고 있는 4·19 혁명이라는 사건을 정치사회적 차원에서 사유함과 동시에 그에게 닥쳐온 하나의 정신적 사건으로 받아들이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그에게 이는 곧 시를 쓰는 일의 본질과 다르지 않았다. 시가 그 어떤 기성의 것에도 의존하지 않는 창조적인 일이라고 할 때 그것은 곧 혁명과 등가를 이루는 것이며, 그에게 시를 쓰는 일은 조금 과장하자면 한 편 한 편이 곧 혁명적 실천과 같은 무게를 지니게 되는 것이다.

이 혁명이라는 시어는 1961년 5·16 쿠데타 이후 한동안 사라졌다가 1967년에 쓴 ‘사랑의 변주곡’과 ‘꽃잎’에 다시 등장한다. ‘사랑의 변주곡’에서 그 혁명은 한 번의 눈뜸으로 그 존재를 감지했지만 다시 오래도록 눈을 감고 있어야 하는 기나긴 부재와 기다림의 형식으로만 존재하는, 하지만 복사씨와 살구씨처럼 언젠가는 필히 꽃을 피울 수밖에 없는,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나서야 비로소 완성되는 거대한 사랑으로 인식되었다. 나아가 ‘꽃잎’에서 그것은 그 오랜 기다림의 힘으로 인해 작은 꽃잎 한 장이 떨어져 큰 바위를 뭉개버리는 것과도 같은 무서운 중력가속도를 획득하는 불가사의한 비전으로까지 현현한다. 좀처럼 혁명이 되지 않는 현실과 시와 자기 자신에 맞서서 끝까지 혁명의 가능성과 희망을 밀어붙였던 김수영, 그가 지금도 뜨겁게 읽힌다는 것은 그 오랜 희망이 아직 다 잠든 것은 아니라는 뜻일까.

김명인 교수.
김명인 교수.

김명인 문학평론가, 인하대 국어교육과 교수

육법전서와 혁명

기성 육법전서를 기준으로 하고
혁명을 바라는 자는 바보다
혁명이란
방법부터가 혁명적이어야 할 터인데
이게 도대체 무슨 개수작이냐
불쌍한 백성들아
불쌍한 것은 그대들뿐이다
천국이 온다고 바라고 있는 그대들뿐이다
최소한도로
자유당이 감행한 정도의 불법을
혁명정부가 구육법전서를 떠나서
합법적으로 불법을 해도 될까 말까 한
혁명을―
불쌍한 것은 이래저래 그대들뿐이다
그놈들이 배불리 먹고 있을 때도
고생한 것은 그대들이고
그놈들이 망하고 난 후에도 진짜 곯고 있는 것은
그대들인데
불쌍한 그대들은 천국이 온다고 바라고 있다

그놈들은 털끝만치도 다치지 않고 있다
보라 항간에 금값이 오르고 있는 것을
그놈들은 털끝만치도 다치지 않으려고
버둥거리고 있다
보라 금값이 갑자기 8,900환이다
달걀값은 여전히 영하 28환인데

이래도
그대들은 유구한 공서양속(公序良俗) 정신으로
위정자가 다 잘해 줄 줄 알고만 있다
순진한 학생들
점잖은 학자님들
체면을 세우는 문인들
너무나 투쟁적인 신문들의 보좌를 받고

아아 새까맣게 손때 묻은 육법전서가
표준이 되는 한
나의 손등에 장을 지져라
4·26 혁명은 혁명이 될 수 없다
차라리
혁명이란 말을 걷어치워라
하기야
혁명이란 단자는 학생들의 선언문하고
신문하고
열에 뜬 시인들이 속이 허해서
쓰는 말밖에는 아니 되지만
그보다도 창자가 더 메마른 저들은
더 이상 속이지 말아라
혁명의 육법전서는 ‘혁명’밖에는 없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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