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생의 마지막 다이어트
권여름 지음 l &(앤드) l 1만4000원
욕구와 감정. 삶의 구성단위를 이렇게 나누어도 무리는 없을 것이다. 무엇을 원하는가, 무엇을 느끼는가. 욕구와 감정이 만나는 가장 생생한 장소가 바로 몸이라는 사실을 황홀하게 보여주는 소설이 탄생했다. 권여름의 <내 생의 마지막 다이어트>. 욕구가 타의에 의해 오염되었을 때, 삶이 어떻게 빛을 잃는지를 매섭게 포착하는 데까지 이 소설은 번쩍이며 뻗어간다.
건강하게 살을 빼준다는 ‘구유리’ 원장의 단식원에 입소한 여성들의 서사가 뼈대다. 먼저 ‘양봉희’. 여자상업고등학교에서 전교 1등이었음에도 은행 취직은 미인대회 출신이 한 날, 담임 선생으로부터 이런 말을 들었다. “봉희야. 빼라 그랬잖아, 좀.” 99.8㎏으로 입소했지만 몸무게 절반을 뺀 뒤, 이제 다른 입소자의 다이어트를 돕는 코치로 변신했다. 처음으로 번듯한 직업을 가진 것이다.
그리고 ‘소운남’. 대학 축제 때 “무돼(무대를 부순 돼지)”라는 별명을 얻고, 비만이라는 이유로 비건 동아리에서 박대받았다. 대학을 자퇴하고 단식원에 들어와 봉희의 팀원이 된 운남. 무시무시한 절제력으로 극적인 감량을 이뤄내며 단식원 홍보의 최적임자로 낙점된다.
그런데 먹은 게 없으니 토할 것도 없어야 하는 그가 변기를 잡고 구토한 밤, 봉희의 세계에 “미세하고 분명한 균열”이 생기기 시작한다. 안전하고 건강한 세계라 여겼던 이 단식원에 대한 맹목적 믿음에 오싹한 실금이 그어진다. 운남이 사라져버렸다. 의문의 알약 하나를 남기고서….
권여름 작가가 지난 24일 오후 서울 마포구 공덕동 한겨레신문사에서 ‘몸’에 대한 탐구와 변화 과정을 그려낸 작품 <내 생의 마지막 다이어트>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장철규 선임기자 chang21@hani.co.kr
소설가 권여름은 이 작품으로 3천만원 상금의 제1회 넥서스 경장편 작가상 대상에 심사위원 만장일치로 선정되며 데뷔했다. 지난 24일 오후 서울 마포구 한겨레신문사에서 만난 그는 “살면서 가장 많이 고민한 주제가 몸이었다. 감정을 가장 좌우하는 게 몸이었기 때문에 첫 장편소설에서 몸을 다뤄보고 싶었다”고 말했다.
‘몸 소설’을 쓰기 위해 참고하거나 영향을 받은 책은 거의 없다는 대답이 인상적이었다. 그러나 쓰는 사람에겐 “물음표 모양의 쇠고리가 탁, 하고 걸려서 견고해지는 상태”로 만들어주는 누군가의 문장이 있게 마련이다. “철학자 김영민의 책 <동무론>에 이런 문장이 있어요. ‘몸은 의도를 하염없이 비껴간다.’ 그리고 시인 이성복의 책 <무한화서>에서 발견한 문장 ‘우리는 어차피 다 망하게 되어 있어요.’(같이 웃음) 내가 내 몸의 주인이 되는 건 이렇게 힘든 거구나, 인정하고 이야기를 풀어가는 게 (책보다) 도움이 됐어요.”
그는 ‘82년생’이다. 여성이라는 정체성이 글쓰기에 미친 영향도 분명하다고 했다. “10대 때부터 다이어트를 했어요. 날씬한 몸을 강요하는 억압이 있었겠죠. 20대 때 단식원에 들어가 본 적도 있어요. 드라마틱하게 살을 빼고 나면 몸무게가 다시 돌아오는 경험을 두 번 정도 했어요. 내가 내 몸을 왜 이렇게 혹사시키는가, 왜 이렇게 자유롭지 못할까, 줄곧 질문하게 됐지요. 거기서 다양한 사람을 봤고요.”
다양한 사람 중에 가장 의외의 인물은, 몸무게가 정상이거나 날씬해 보이는 사람이었다. “날씬한 사람이 단식원에 있어야 하는 세상은 뭐지? 싶은 거죠. 저는 현재 중학교 국어 교사인데요. 졸업사진 촬영이 연기되었을 때, 여학생뿐 아니라 남학생조차 너무 자연스럽게 ‘몸 만들어야지, 다이어트해야지’ 그래요. 여전히, 어쩌면 저희 때보다 더 요즘 아이들이 몸에 대해 높은 기준을 가지고 있는 것 같기도 해요.”
권여름 작가가 지난 24일 오후 서울 마포구 공덕동 한겨레신문사에서 ‘몸’에 대한 탐구와 변화 과정을 그려낸 작품 <내 생의 마지막 다이어트>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장철규 선임기자 chang21@hani.co.kr
봉희 팀의 또 다른 입소자 ‘홍안나’. 가수 데뷔를 앞둔 16살 연습생이다. 보통 체구지만 45㎏이 돼야 음반을 내주겠다는 소속사 뜻에 따라 억지로 단식원에 왔다. 운남이 토했을 때 단식원 규칙을 어겼다고 생각한 봉희는 화가 나 운남의 멱살을 잡았지만, 안나에겐 다르다.
“누군가에 의해 안나의 몸이 너무 쉽게 디자인되고 조절되지 않기를 바랐다. 그것이 더욱 건강하고 아름다운 결과를 만들어낸다고 해도, 그것은 결코 사람에게, 이 세계에 기여하는 일이 될 수 없다고 느꼈다.” 사라진 운남의 흔적을 뒤쫓으면서 비로소 자신을 둘러싼 세계를 의심하는 존재가 되어갔기 때문이다. “존중받는 몸이 되기 위해서는 그 시간도 존중받으며 통과해야” 했다.
몸을 존중하지 않는 세상을 대변하는 인물이 구유리다. “부모님들, 지금 부끄러워하셔야 돼! 딸자식이 몸부림치다가 제 발로 여길 온 건데. 그동안 뭐 했어요, 것도 모르고? (…) 요즘 세상에서 살찐 몸으로 사는 게 얼마나 비참한 일인 줄 아세요?” 딸이 사라진 걸 알고 혼비백산 찾아온 운남 부모한테, 늘 하던 대로 수치심을 자극하며 가스라이팅을 퍼붓는다.
운남 엄마가 지지 않고 내놓은 대답은 참 깨끗하다. “요즘 세상이 그러믄, 그냥 내 세상에서 살면 되는 거지. (…) 딸들아, 집에 가. 여기서 뭐 하는 거여. 못써.” 외부로부터 밀려온 욕망의 물결이 감정에 닿지 않고, 비로소 우리 영혼이 잔잔해지는 순간이다. 또한 이 소설이 몸에 존중을 표하는 선언이기도 하다. 정작 운남은 엄마의 이 말을 끝까지 직접 들어보지 못한 채, 서늘한 반전 속에서 단 한 번 모습을 드러낸다. 운남, 봉희, 안나. 서로를 구하려는 세 여성이 만나는 유일한 장면.
스릴 있는 전개만큼이나, 영화를 보는 듯 시각적으로 강력한 표현도 감탄할 만하다. 예컨대 이런 대목. 봉희가 굶다 지친 안나에게 물을 건네자 못마땅한 “구유리는 억세게 봉희의 어깨를 잡았다. 그녀의 손톱 하나가 봉희의 맨살을 날카롭게 눌러 아렸다.” “봉고차의 시동을 켰다. 엔진이 덜덜 돌아가며 좌석을 흔들자 봉희의 몸도 흔들렸다. 그 자리에서 탈탈 털려 물방울처럼 작아져 증발해버리고 말 것 같은 기분.” 권여름 작가 핸드폰 케이스에는 영화감독 봉준호의 모습이 크게 새겨져 있었다. “영화를 정말 좋아하거든요. 언젠가 시나리오, 연출도 공부해볼 생각이에요.”
석진희 기자
ninano@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