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체 디자이너가 바라본 세상 이모저모
한동훈 지음 l 호밀밭 l 2만5000원 ‘글자’는 우리 주변에서 흔하게 볼 수 있지만, 대부분 그 뜻을 생각할 뿐 글자 그 자체에 주목하는 경우는 많지 않다. <글자 속 우주>는 서체 디자이너가 일상 속 마주치는 글자들의 디자인적 특징, 사회·문화적 의미 등을 해석해 담은 책이다. 지은이는 역대 대선 포스터를 살펴보다 한 가지 ‘징크스’를 발견한다. 1987년 대통령 당선자 노태우는 포스터에서 후보명 ‘노태우’ 세 글자를 레터링(필요한 몇 글자를 디자인한 것)으로 썼고, 1992년 당선자 김영삼은 기성 폰트(동일한 모양을 가진 글자 세트)를 썼다. 그 뒤 김대중 당선자는 레터링, 노무현 당선자는 폰트, 이명박 당선자는 레터링, 박근혜 당선자는 폰트, 문재인 당선자는 레터링을 사용했다. 이 징크스대로라면 내년 치러질 대선의 당선자는 폰트로 후보명을 쓰는 사람일 것이다. 엉뚱하지만 사물이나 사건을 ‘글자’라는 창을 통해 바라보는 지은이답다. 지은이의 눈길이 닿는 곳은 분야를 가리지 않는다. 상표 라벨, 자동차 로고, 레코드 앨범 커버, 카메라 셔터 다이얼 같은 각종 소비재 속 글자나 동네 가게 간판, 광고판, 건물 정초석, 전철역 표지판, 아파트 브랜드처럼 길거리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글자들은 기본이다. 스포츠팀 유니폼, 예능 프로그램 자막, 군복 명찰, 교과서 글자, ‘야민정음’(한글 자음과 모음을 모양이 비슷한 것으로 바꾸어 만드는 신조어)까지 종횡무진이다. 생활 속 익숙한 글자들이 대상이고 옛 이야기와 관련 사진이 곁들여 있어 읽고 보는 재미를 주지만, 각종 폰트의 이름 등 타이포그래피(글자를 이용한 디자인)의 기본을 알면 더 즐길 수 있는 책이다. 안선희 기자 shan@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