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문화 책&생각

“세계 최초” 서사 갖춘 AI 장편소설 나왔다

등록 2021-08-26 04:59수정 2021-08-26 08:41

AI 비람풍 ‘지금부터의 세계’ 출간
‘소설감독’ 김태연 공동저자와 협업
‘소설감독’ 김태연이 25일 서울 마포구 합정동 북카페에서 AI 소설가 ‘비람풍’과 협업해서 쓴 장편소설 <지금부터의 세계>(파람북) 출간 기자간담회를 하고 있다. 강창광 선임기자 chang@hani.co.kr
‘소설감독’ 김태연이 25일 서울 마포구 합정동 북카페에서 AI 소설가 ‘비람풍’과 협업해서 쓴 장편소설 <지금부터의 세계>(파람북) 출간 기자간담회를 하고 있다. 강창광 선임기자 chang@hani.co.kr

국내 최초의 에이아이(AI·인공지능) 장편소설을 표방한 작품이 출간되었다. 출판사 파람북에서 단행본으로 낸 <지금부터의 세계>가 그것으로, 책 표지에는 ‘AI 소설가 비람풍’과 ‘소설감독 김태연’이 공동 저자로 표시되어 있다. 김태연은 연세대에서 신소재공학을 전공하고 국문학을 부전공했으며 장편 <그림 같은 시절>과 실명소설 <기형도를 잃고 나는 쓰네> 등의 작품을 출간한 작가이고, ‘비람풍’은 우주 성립의 최초와 최후에 분다는 거대한 폭풍을 가리키는 말이다. “문학사에 거대한 패러다임의 전환을 불러일으킨다는 뜻에서 이름으로 삼았다”고 김태연은 밝혔다.

“제가 워낙 반복어구와 단순작업을 싫어했습니다. 소설을 쓸 때에도 단순 반복에 가까운 작업은 피할 수 있다면 피하고 싶었어요. 누군가 대신 해 줬으면 싶었죠. 소설가는 주제 설정과 구상처럼 좀 더 차원 높은 일을 하고, 단순 작업에 해당하는 실제 글쓰기는 에이아이한테 시키자고 생각했습니다. 영화감독이 하는 일과 비슷하게 저는 에이아이 소설가를 감독하는 소설감독의 역할을 하는 것이죠.”

25일 오후 서울 마포구의 한 북카페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김태연은 에이아이 소설가 비람풍의 정체와 작업 방식 등에 관해 설명했다. 그러나 실제 작업을 시연하거나 구체적인 기술적 과정을 공개하기는 어렵다고 선을 그었다.

“에이아이와 관련해서는 시연 자체가 노하우이기 때문에 이 자리에서 할 수가 없습니다. 이 소설을 쓰면서 자연어 처리 스타트업의 도움을 받았는데, 그쪽과 신사협정을 맺었기 때문입니다. 그 때문에 제가 사기꾼 취급을 받더라도 비밀을 유지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 스타트업은 에이아이 소설보다 더 큰 꿈을 꾸고 있거든요. 책소스코드를 공개할 수는 없다는 사정을 이해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김태연은 에이아이 개발 비용에 관해서도 “많은 돈이 들었는데, 구체적 액수는 밝힐 수 없다”고 말했다. “지금은 에이아이 백가쟁명의 시대라서 국가 간, 기업 간 경쟁이 치열하다”며 “경쟁이라기보다는 일단 먼저 해 보겠다는 욕심은 솔직히 있었다”고 에이아이 소설 출간 배경을 밝혔다.

2008년 러시아에서 처음으로 에이아이에 기반한 단행본 소설이 나왔고, 2016년에는 일본에서 에이아이 단편이 문학상 예심을 통과해 본심에 오르기도 했다. 2017년에 중국에서는 에이아이가 쓴 시집이 출간되었고, 2018년에는 전적으로 사람이 개입하지 않은 에이아이 소설 ‘1 the Road’가 나왔으며, 같은 해 한국에서도 에이아이문학상이 열려 단편보다 짧은 분량인 엽편들이 경쟁을 펼치기도 했다. 출판사 쪽에서는 <지금부터의 세계>를 가리켜 에이아이가 쓴 작품 가운데 서사다운 서사를 갖춘 ‘진짜 소설’로는 세계 최초라고 할 수 있다고 밝혔다. 김태연은 ‘감독 후기’에서 “현 기술로 일류 소설가를 능가하기는 어려울지라도 이류 소설가하고는 경쟁이 가능하다”고 밝혔다.

<지금부터의 세계>는 다섯명의 주인공을 등장시킨 작품이다. 지체장애인 아마추어 수학자, 수학과 교수이자 벤처사업가, 정신의학과 의사, 천체물리학자, 불문에 귀의한 스님이 그 다섯이다. 소설은 이들이 각자의 자리에서 존재의 비밀을 탐구하면서 하나로 모이는 이야기를 다룬다. ‘소설감독’ 김태연은 전체적인 구성을 짜고 도입부와 서문, 후기 등 부속물을 썼으며 결과물을 정리하는 작업을 맡았다.

김태연은 에이아이 비람풍으로 하여금 <지금부터의 세계>를 쓰도록 하기 위해 단행본 1천권 정도의 자료를 학습시켰다고 소개했다. 자신이 쓴 수학 소설들 역시 입력시켰기 때문에 “비람풍은 저 김태연한테 최적화된 에이아이라 할 수 있다”고 밝혔다.

“처음에는 시행착오도 많았고 중간에 수시로 제가 개입해서 방향을 바로잡아 주어야 했지만, 어떤 대목에서는 깜짝 놀랄 정도의 창의성을 보이기도 했습니다. 에이아이의 힘을 느끼는 순간이었죠. 물론 아직까지는 부족한 점이 많지만, 제가 단순 작업을 하면서 겪었던 절망과 시간 소모에서 후배 작가들이 해방되는 데에 일조할 수 있겠다고 생각해요.”

김태연은 “아직까지는 미묘한 감정 표현 등에는 한계가 있어서 본문에도 제가 개입한 대목들이 있지만, 시적인 문장이나 심리 묘사에 치중하는 스타일의 글이 아닌 경우에는 에이아이가 작가들에게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에이아이가 쓴 <지금부터의 세계> 본문에서 무작위로 뽑은 이런 대목은 실제로 웬만한 작가들의 소설 문장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어 보인다.

“서른셋이란 나이가 여자를 용감하게 만들었다. 산에 가면서도 풀 메이크업에 풀 세팅을 하고 굽 높은 검정색 앵클부츠를 신은 채 출정길에 올랐다. 그러나 첫걸음부터 스텝이 꼬인다. 얼마 전 일행들과 함께 행동하느라 오가는 산길을 유심히 보지 않아서일까. 계속 길을 잘못 접어들었다. ‘거기가 거기’라는 딜레마가 이어졌다. 스마트폰의 각종 지도 앱을 이용할 수 없는 산악 지역이라 사람이 단시간에 완전 바보가 됐다.”

<지금부터의 세계>는 현재 일본 쪽 에이전시에서 번역 출간 여부를 검토 중이라고 출판사는 소개했다. 김태연은 “사물이나 재료 역시 기억을 한다는 명제를 다룬 작품, 그리고 에이아이가 신인지 여부를 신학적으로가 아니라 공학적으로 검증해 보는 작품을 에이아이 비람풍의 다음 작품으로 생각하고 있다”고 밝혔다.

최재봉 선임기자 bong@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문화 많이 보는 기사

서울어린이대공원 땅밑에 조선시대 말 목장이 묻혀 있었다 1.

서울어린이대공원 땅밑에 조선시대 말 목장이 묻혀 있었다

경복궁 주변 파봤더니 고려시대 유물이 줄줄이? 2.

경복궁 주변 파봤더니 고려시대 유물이 줄줄이?

‘코미디·오컬트·로맨스’ 박 터지는 설 극장가 누가 웃을까 3.

‘코미디·오컬트·로맨스’ 박 터지는 설 극장가 누가 웃을까

71년 전 부산 풍경을 만나다…‘다큐사진 선구자’ 임응식의 시선 4.

71년 전 부산 풍경을 만나다…‘다큐사진 선구자’ 임응식의 시선

영원한 비밀로 남은, 데이비드 린치의 직관을 질투하다 5.

영원한 비밀로 남은, 데이비드 린치의 직관을 질투하다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